사람은 사는 모양새가 다 다르니 내가 사는 방향과 속도는 알아서 나아가야 한다 생각했다.
그래서 그 길에서 만나는 사람들은 딱히 내 인생에 중요하지 않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게 아니라는걸 깨닫는데는 오래 걸리지 않았다.
20살, 고등학교 졸업 후에 나는 독립을 했다.
아버지의 술주정이 심해 이사를 자주 했던 난 마지막 초등학교로 전학갔을 때 만난 괜찮은 친구들을 어머니가 보신 후 더 이상 전학을 가면 안된다고 생각하신 거 같다. 고등학교를 졸업하자마자 아버지는 기다렸다는 듯이 다른 지역으로 어머니와 이사를 갔고 난 살던 동네에 남아 다니던 학원에 보조강사로 취업해 독립했다. 아버지 술주정 때문에 어머니가 걱정되긴 했지만, 아버지가 만들어놓은 지긋지긋한 집구석에서 벗어날 수 있다는 해방감에 뭔가 좋기도 했다. 그곳에서 벗어났으니 하루빨리 내 스스로 성공해서 어머니를 모셔야겠다 생각했었다. 하지만, 아버지의 주정을 안보면서 생긴 안도감일까, 안쓰러운 어머니를 자주 못보면서 무뎌진 독함이었을까. 방울만 달리고 독은 다 잃어버린 방울뱀처럼 성공을 위한 이야기만 뱉어낼뿐 아무런 행동을 하지 않는 나태하기 짝이 없는 나였었다. 그렇게 군대를 가게 됐다. 전역할때쯤에는 이미 친구들은 대학 졸업을 앞두고 취업을 위한 준비에 바빴었고 휴가때마다 뵙는 어머니는 갈수록 늙어가는게 눈에 보였었다. 많은 복기를 한 뒤에 전역할때는 다시 난 독기를 품을 수 있었다.
26살에 대학교를 신입생으로 다시 들어갔다. 내가 좋아하는 그림으로 꿈에 다가갈 수 있는 마지막 기회라고 생각했기에 수업이든 학과생활이든 후회없게 열심히 학교를 다녔다. 그러던 중에..일이 터졌다.
1학년 방학 전 쯤에 아버지 전화로 전화가 왔었다. 음주로 아버지가 운전하는 차에 어머니도 동승을 하셨고 큰 사고가 나서 어머니가 많이 위독하다는 전화였다. 하던 기말고사 과제는 내팽겨치고 택시를 타고 어머니가 계신 병원으로 갔었다. 도착한 병원 응급실에서 어머니는 거의 정신을 차리지 못하고 계셨고 아버지는 조금 떨어진 병원침대에서 아직 술에 취해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고 있었다. 수술에 들어간 어머니는 결국 다리를 하나 잃으셔야 했다.
이 후에는 모든게 다 무너졌다. 그냥 난 나를 지웠다. 그냥 돈이나 벌어야겠다고 생각했다.
해봤던 일이 학원강사일이니 일했던 미술학원 강사일을 다시 시작했다. 그곳에 먼저 있던 만화반 동료강사인 형이 있었다. 그 형은 나에게 계속 이야기를 했다. 네가 아깝다. 네 작품을 시작도 안해보고 꿈을 놓기에는 너무 아깝다. 라고.
처음에는 그냥 위로를 받는다 생각하고 넘겼다. 그렇게 한해,두해가 지나도 형은 사석에서
만화이야기를 나눌때면 그 얘기를 꼭 나에게 말해줬다. 그리고는 웹툰제작을 위한 디지털 작업방법도 많이 알려줬다. 그러면서 용기를 얻었던거 같다. 죽어가던 나에게 만화가가 되고 싶단 불씨에 바람을 불어줬다. 그렇게 형과 함께 공모전을 준비하고 대상을 탄 뒤 웹툰작가가 될 수 있었다.
생각해보면, 꿈으로 가는길엔 형의 도움이 젤 컸지만 사는데 여러번의 좌절에서 친구들에게도 많은 긍정적인 에너지를 얻을 수 있었다.
자생1에서 나를 인정하고 그에 어울리는 무기가 될만한 숙련도가 필요한 이야기였다면 이글에선 나의 모자른걸 가르쳐주고 채워주는 인생의 동료가 한명이라도 있으면 그래도 살만한 인생이지 않을까란 이야기다.
/홍인근 웹툰작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