헌법재판소가 지난 2019년 낙태죄 처벌에 대해 헌법불합치 결정을 내린 후 5년이 지났지만, 국회는 아직도 관련 입법을 마무리하지 못하고 있다. 이로 인해 임신중절 수술에 대한 법적 처벌 근거는 사라졌고, 의료현장에서는 혼란이 가중되고 있다.
이러한 ‘입법 공백’ 상태에서 임신중절이 필요한 임신부들은 안전한 의료 시스템에 의해 보호받지 못하고 있어 국회와 보건복지부 등 관련 당국이 명확한 가이드라인을 제시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13일 전북일보 취재를 종합하면 전북지역 산부인과 병원들도 임신중절 수술에 대해 각기 다른 기준을 내세우고 있어 임신부들이 겪는 혼란은 더욱 커지고 있는 상황이다. 적절한 의료조치를 받지 못하는 임신부들은 불법 유통되는 낙태약을 찾는 등 음지로 손을 뻗고 있다.
기자가 도내 17곳의 산부인과에 무작위로 통화 연결을 시도해본 결과 임신중절 수술이 가능하다고 답한 병원은 6곳이었다. 이들 병원은 대체로 임신 초기인 5주에서 8주, 혹은 9주 이내라면 수술할 수 있다고 했다. 나머지 병원 중 6곳은 상담 후 수술 여부를 결정하겠다고 응답했으며, 5곳은 수술하지 않는다고 명확히 밝혔다.
이처럼 병원마다 임신중절 수술에 대한 입장이 다른 이유에는 법적 공백으로 인한 불확실성 뿐만 아니라 윤리적, 종교적 이유 등도 크게 작용하고 있다.
각각의 병원은 생명윤리 문제를 들어 수술을 거부하기도 하고, 종교적인 신념을 이유로 들기도 했다.
이러한 이유로 병원이 수술에 소극적인 모습을 보이면서 문제가 되고 있는 것은 불법 유통되는 낙태약의 확산이다.
불법으로 유통되는 임신중절 약물이 SNS와 온라인 사이트 등에서 암암리에 거래되면서, ‘임신중절이 점점 더 음지화돼 가고 있는 것이 아니냐’는 우려도 나오고 있다.
낙태죄 처벌 조항이 효력을 잃었다고 해도 '먹는 낙태약'을 판매하는 건 여전히 처벌 대상이다. 임신중절을 어느 범위, 어떤 방식으로 허용할지 등을 규정하는 법이 아직 없고, 국내에서는 낙태약 유통이 불법이기 때문이다.
전문가들은 태아가 보호받지 못한다는 것이 가장 큰 문제라고 꼬집었다. 여성 건강을 위한다면 낙태를 광범위하게 허용하는 것은 도움이 되지 않을 것이라는 제언도 내놨다.
홍순철 고려대학교 안암병원 산부인과 교수는 “피임약 등 낙태 허용이 광범위해진다면, 피임을 원하지 않은 이들에 의해 여성 건강이 위협받을 수 있고 (임신 여성이) 낙태를 강요받을 가능성도 커진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지금의 상황은 법이 없어서, 처벌 규정이 없는 것을 오히려 방치하고 있는 것이 아닌가 하는 의구심이 든다”며 “(뱃속의) 아이들이 투표권이 있었으면, 이 대접은 안 받았을 것”이라고 비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