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8월15일은 79번째 광복절이었다.이날은 한번쯤 일본의 존재에 대한 의문을 던질법도 하다 .오랜 한일교류에도 그들이 남긴 과거 상처가 그리 간단치가 않다 그동안 과거사와 관련돤 일본 정치인들의 심심찮은 망언들이 생각난다, 한반도 침략과, 위안부, 독도문제를 향한 어이없는 망언들 말이다 .일본 침략은 결국, 한국의 근대화에 이바지 했고 위안부 동원은 없었던 일이며 있었다해도 강제성은 없었던 것이며 독도는 샌프란시스코 평화조약에 의거, 일본 땅이라는 억지 주장들 말이다.
그러나 그들도 일말의 양심은 있다는것인지 가끔 사죄 발언을 했던 정치인들도 있었다.특히 1984년, 아키히토 전 천황은 “양국간 불행한 과거가 있었던 것은 참으로 유감이며 반복되어서는 안된다”고 했고 더 나아가 말하길 “귀국의 국민이 맛본 고통을 생각하니 통석의 념을 금할수 없다”고 까지 했다.그 전에 1983년에는 나카소네 야스히로 전 총리는 “양국간 불행한 역사를 엄숙히 받아들이지 않으면 안된다고 생각한다”고 하여 일본의 잘못을 토로한바 있다.
그후 1993년에는 자만당에서 민주당으로 정권교체가 된후 총리가 된 호소가와 모리히로는 “나 자신은 일본의 침략전쟁이었고 잘못된 전쟁이었다고 생각한다”고 실토한바도 있다. 그후 몇 달 지나서는 더 구체적으로 “창씨 개명과 위안부 징용등의 여려 형태로 괴로움과 슬품을 준것에 가해자로써 진정으로 반성한다”고도 했다. 그러나 반대로 일찍이 총리를 지낸 아소 다로는 2005년 영국 옥스퍼드 대학교 강연에서 “일본에서는 경제재건이 최우선 과제 였는데 운 좋게도 조선에서 6 .25전쟁이 발발해서 그 덕분에 일본 경제 재건에 가속도가 붙었다“고해서 약을 올린적도 있다.
몇 년전에 암살당한 아베 신조 전 총리의 망언들은 지면 부족으로 생략한다. 신기히게도 사죄 발언을 했던 일본 수상들의 공통점은 전부가 일본 관동지방 즉 도쿄에 가까운 일본 동부지방 출신이라는 점이다. 그러나 망언을 일삼었던 아소 다로 전 총리나 아베 신조 전 총리는 일본의 서부 지방 출신이다 일본은 동부 지방과 서부지방의 정치 색깔이 차이가 있음을 알아둘 필요가 있겠다.
도쿄를 중심으로 해서 동부 지방은 임진왜란이 끝난후 우리 조선과 우호적인 관계를 260년간이나 맺었던 도쿠가와 이에야스가 만든 에도 막부 정부의 중심지 였다 그들은 대외 관계에 있어서 평화주의자였으나. 그후 메이지 유신을 성공시켰던 정치세력은 일본의 서부 지방 즉 조수번 (지금의 야마구치현),이고 서쪽의 규슈섬에 있는 사쓰마번(지금의 가고시마현) 출신으로서 대외 침략주의 세력들이다. 아소 다로는 규슈 출신이고 아베 신조의 선거구가 바로 야마구치현이고 이곳이 바로 그 유명한 안중근 의사의 저격 대상이었던 이토 히로부미의 고향이기도 하다.
일본 보수와 우익의 개념은 상당히 혼란스러우나 한국에 귀화한 일본인 교수 호사가 유지의 설명은 간단 명료하다. 보수는 샌프란 시스코 강화 조약을 수용하는 세력을 말하는데 샌프란시스코 강화조약이란 태평양 전쟁이 끝난후 전후 처리를 위해서 1851년 미국과 일본을 포함한 48개국이 샌프란 시스코에서 만든 조약을 말한다.
호사가의 설명에 의하면 일본 보수는 기본적으로 세가지 특징을 갖는다고 하는데 첫째는 일본이 침략국가이자 전범국가였다는 것을 인정하는 것 둘째는 1946년 제정한 헌법조항 9조에 일본은 전쟁을 포기하고 군대를 가질수 없다는 일종의 평화헌법을 지키자는 것이다.셋째는 미국과 친교를 유지해야한다는 것이다, 보수의 데표적 인물은 요시다 시게루라는 정치가 였다. 일본 우익이란 보수속의 비주류로서 평화헌법을 개정해서 일본도 전쟁을 할 수 있는 국가로 만들것을 주장하는 정치세력을 말한다. 대표적인 인물이 일본 총리를 8년을 했던 아베 신조 였으며 그의 외할아버지가 A급 전범이었던 기시 노부시케였다. 이처럼 일본 보수와 우익은 대외정책에 큰 차이를 보여주고 있다.
/장세균 중국 상해 복단대학 한국학 연구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