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적공원의 아우성!

한수영 고고문화유산연구원 원장

불과 20여년 전만 해도 서부신시가지 일대는 마전들이 넓게 펼쳐진 한적한 도외지역으로 황방산 자락에 막혀 길도 외통수였고, 시내버스 종점이 있던 곳이었다. 마전마을을 가려면 전주천을 넘어 들어가야 했는데, 비가 많이 오면 마전 일대에 사는 친구들은 스쿨버스를 타고 먼저 집에 가곤했다. 수업 몇 시간 안하고 일찍 가는 친구들이 너무나도 부러웠던 기억이 아직도 생생하다. 그런데 그 마전이 서부신시가지 개발로 말 그대로 천지개벽했다. 그 과정에서 전주의 고대 역사 한 페이지가 새롭게 쓰여졌으니, 바로 마전 고분군이다.

구릉의 능선을 따라 직경 20m 내외의 고분 5기가 줄지어 축조된 마전고분군은 경주의 대릉원과 같은 전주의 상징적인 유적이다. 무덤이 만들어진 5~6세기는 고구려에서 장수왕과 문자왕이 한반도 역사상 최대 영토를 일군 때이며, 백제는 웅진으로 천도한 후 동성왕과 무령왕이 백제중흥을 도모했던 시기이다. 우리가 배운 바로는 마전고분이 당연히 백제 무덤으로 생각되지만, 고분 안에서 출토된 유물과 다양한 형식의 무덤은 백제가 전주 일대를 직접 통치하기 이전, 마한(馬韓)의 문화전통을 보여주고 있다. 따라서 마전고분군은 마한에서 백제로 넘어가는 우리지역 고대문화를 알려주는 매우 중요한 유적이다. 

이렇게 중요한 유적이 발굴되자 당시 문화재청에서는 유적을 보존해야 한다는 주장이 심도 있게 논의되었지만, 신시가지 개발에 밀려 현지보존은 불가하였고, 이전복원이 결정되었다. 마전고분군을 이전해 놓은 곳이 바로 황강서원 옆에 조성된 문학대공원이다.  

우리 주변에는 이렇게 소중한 문화유산을 현지보존하거나 이전복원한 유적공원이 제법 있다. 전주 송천동 자이아파트 앞에 위치한 송천어린이공원에는 만경강유역에서 처음으로 마한의 대규모 마을이 발굴되어 유적의 일부를 공원으로 꾸며 놓았다. 전북혁신도시 농업과학원 앞에 조성된 는들근린공원에도 혁신도시에서 발굴된 초기철기시대부터 삼국시대에 이르는 찬란했던 문화유산의 흔적들이 남아 있다. 그러나 자랑스러운 문화유산을 보고자 공원을 찾아 간다면, 십중팔구는 유적을 제대로 분간조차 할 수도 없으며, 찾았다 하더라도 볼썽사나운 모습만 마주할 것이다. 

하나같이 데크는 깨져 있고, 유적 안내판은 여기저기 파손되어 있으며, 사진은 색이 바래 있다. 유구를 보호하기 위해 씌워 놓은 유리는 부옇게 변해 내부를 볼 수도 없고, 공원(公園)이 아닌 공원(恐園)은 혹여 아이들이 다칠까 우려스러울 정도이다. 수백수천 년 전의 유적이 훼손되지 않고 그대로 남아 있는 경우도 드물고, 또 유적을 찾아내어 발굴하기도 정말 어렵다. 하물며 그 역사적 중요성을 어떻게 말로 표현하랴! 

우리 조상들이 물려준 문화유산의 가치를 제대로 빛내는 일은 우리의 몫이다. 상당수 유적공원은 설계된 지 족히 20년이 넘었다. 하루가 다르게 변하는 지금, 20년 전의 컨셉은 이제 낯설기만 하다. 물론 가끔씩 정비를 하고 있지만, 20년 전 설계 그대로 복구하는 것에 급급하지 유적을 활용하려는 새로운 방향성은 전혀 보이지 않는다. 

전주시 홈페이지에는 지역특색을 반영한 문화관광콘텐츠를 시대흐름에 맞게 산업화하여 경제발전의 신성장동력으로 만들겠다고 적혀 있다. 문화유산의 가치를 살리기 위해서는 지속적인 관심과 투자가 더더욱 필요한 것이다. 죽어 있는 공간이 아니라 나들이도 가고, 동네 행사도 하고, 체험 프로그램도 개발해서 모두가 같이 나눌 수 있는 살아있는 문화유산이 되기를 희망해본다. 

/한수영 고고문화유산연구원 원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