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것은 소름이었다. 대한민국 작가가 최초로 노벨문학상 수상자로 선정되었다는 소식을 듣는 순간, 기대고 있던 몸을 일으켜 두 주먹을 쥐고서 방안을 서성거렸다. 나도 모르게, 1901년 제1회 노벨문학상을 프랑스 시인이 받은 이후 몇 년이 흘렀는지를 계산하고 있었다. 지면과 영상으로 보았던 그녀의 모습이 필름처럼 스쳐 지나고 나직한 목소리에 담긴 무거웠던 느낌들이 되살아났다.
대한민국 소설가의 노벨문학상 소식이 발표된 이후 우리는 꿈같은 순간들을 맞고 있다. 다음 날 아침 중앙지의 1면은 온통 한국문학 노벨상 수상 소식으로 가득했다. 길게 줄을 선 사람들이 한 권씩 들고 서점을 나가는 작가의 소설이 클로즈업되고 이내 품절을 알리는 게시대가 올라왔다. 부지런히 돌아가는 파주출판단지 인쇄 업체의 기계 소리와 제본되어 쌓이는 소설책의 모습은 마치 딴 세상을 만난 듯하다.
어제와 오늘이 이렇게 달라졌다. 책 읽는 유튜버들도 연일 작가의 소설을 읽고 있다. 라디오와 TV에서는 신속하게, 구성한 자료와 소식 등을 모아 대담을 기획하고 예전 영상 등을 모아 특집을 구성하였다. 새롭고 놀라운 뉴스가 쏟아지는 가운데 ‘한국문학’이라는 세 글자가 특별하게 눈에 띈다. 신문을 읽는 것이, 뉴스를 보는 날들이 요즘처럼 즐거운 적이 있었던가 싶다.
한국문학이 노벨상을 품은 올해 가을은 따가운 햇볕마저 고맙다. 그런데 오히려 한강 작가는 “나는 평화롭고 조용하게 사는 것을 좋아한다. 글쓰기에 집중하고 싶다.… 나는 조용히 있고 싶다. 세계에 많은 고통이 있고, 우리는 좀 더 조용히 있어야 한다.”라고 말한다.
시를 닮은 소설, 한강의 소설은 시를 읽고 있다는 착각을 하도록 한다. 그의 시작은 시였다. 대학 시절 그의 시에는 ‘신들린 느낌’이 있었다고 들었다. 1993년 시인으로 등단한 한강은, 등단 20년 만인 2013년에 시집 『서랍에 저녁을 넣어 두었다』를 출간했다. 노벨상 수상자 한강에 대하여 아버지 한승원 소설가는 “시적인 감수성을 가진 좋은 젊은 소설가”라고 한다.
이 가을이 다 가기 전에 ‘한강’을 읽자. 지금이 한강의 글을 다시 읽을 시간이다. 기억을 기억으로 마감하지 않고 문학 작품에 담아 세상에 펼쳐 내는 일이 바로 문인의 사명이다. 스웨덴 한림원은 ‘역사적 상처에 직면하고 인간 삶의 취약성을 노출하는 한강의 시적 산문’을 이유로 그에게 노벨문학상을 수여한다고 밝혔다. 폭력이 인간을 지배함으로 인해 황폐해진 현실에서 역사의 피해자를 대신해 목소리를 낸 소설로, 대한민국에 노벨문학상을 선물한 그녀의 고통에 우리는 한없이 기쁘고 즐겁다. ‘그의 문장은 악몽마저도 서정적인 꿈처럼 느끼게 만든다.’고 한다.
시대와 상황을 넘어 인간의 보편성을 지향하고, 진실을 향해 걸어가는, 한강의 문학에 담긴 소중한 인간의 가치를 깊이 생각해야 한다. 구도자의 시선으로 상처 입은 영혼을 문장에 담아 저 밝은 빛을 향해 길을 열어 주는 것은 작가의 중요한 사명이다. /조미애 표현문학회 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