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이 주렁주렁 열려있는 가을 풍경은 모든 이들의 마음을 포근하게 한다.
담쟁이 옆 마당 한가운데에 놓인 감나무가 붉게 물들고 있다. 감 나뭇가지 위에 덩그러니 달린 주홍빛 속에 어머니의 얼굴이 떠오른다. 가을이 깊어져 가는 시월이면 떠오르는 얼굴, 그립고 보고 싶은 얼굴이다. 항상 밝게 웃고 계시는 어머니 모습이기도 하다.
어머니는 늘 과일을 즐겨 드셨다. 그 많은 과일 중에서도 항상 감을 너무 좋아하셨다.
그러한 어머니는 계절중에 감들이 풍성한 가을을 더욱 좋아하셨던 것 같다.
나이가 들면서 단감보다는 홍시를 좋아하셨는데, 감이 많이 나올 즈음에는 몇 박스를 구입해서 베란다에 넓게 펼쳐놓고 익어가기를 기다리며 한 개씩 드시며 즐기셨다.
그러시면서도 이웃에게 주고 싶은 마음이 앞서 항상 모두에게 골고루 나눠줬다. 남은 홍시는 냉동고에 넣어 놓고 여름 내내 얼어있는 감을 꺼내어 믹서로 갈아서 시원하게 자식들에게 주는 재미를 느끼며 살았던 분이기도 하셨다.
매년 가을이 되면 어머니를 만나기 위해 친척 이모들이 모이게 되는데, 찾아올 때마다 어머니을 위한 선물을 한아름 가져오시곤 한다. 그럴 때마다, 가져온 보자기를 풀어보면 단감, 홍시, 곶감 등 모두가 같은 감으로 선물한 것이다. 그 모습을 보고 우리들은 이모들과 서로 얼굴을 마주 보며 함께 함박웃음을 짓곤했다
우리는 앞에 놓인 감들을 보고, 어색한 모습으로 어머님께 물어보시면 그는 너무 기쁜 마음으로 이모들께 연신 고맙다고 인사를 건네며 행복해하는 모습으로 대답을 대신한다. 그리고 친척들이 가실 때면 어머니는 모두가 당신을 생각하는 마음에 감사와 감동으로 뜨거운 눈물을 글썽이기도 한다.
하지만 그렇게 정정하시고, 건강하시던 분이 갑자기 백내장 수술이 잘못되었는지 시력을 점점 잃어가면서 몇 년을 요양병원에 계시다가 돌아가셨다. 너무 슬픈 일이다.
자식들이 있어도 각자의 삶이 바쁘기 때문에 어찌하지 못하고 요양병원에 모시게 되어 너무 죄송스러운 마음으로 지낸 자식들이다. 지금도 가을에 주렁주렁 열리는 감만 보면 늘 보고 싶은 그리운 어머니가 생각이 난다.
코로나가 심각하던 시절, 그렇게 그리웠던 어머니를 보고 싶어도 한 3년 동안은 면회가 잘되지 않던 때에 우리들은 어찌할지 몰라 발을 동동거리기도 하며 면회 시간을 애타게 기다렸다.
어머님이 돌아가시고 나서 생각해 보니, 그때 차라리 집에서 모시지 못한 아쉬움에 지금도 그때를 생각하면 눈시울을 적신다.
어머니는 비가오나 눈이 오나, 바람이 불어도, 우리 모두를 지극 정성으로 키우셨다. 아무리 힘들어도, 진자리 마른자리 가리시며, 아들 딸이 시집 장가갈 때까지도 보살피고 키우신 어머니를 생각하니 더욱 죄송스럽고 송구한 마음뿐이다.
여러 자식이 있어도 한 부모를 못 모신다는 옛말의 뼈 아픈 교훈이 있음을 알면서도 어머니 한 분을 보살피지 못한 죄스러움에, 그때를 생각하면 지금도 온몸이 몸살을 앓을 때가 오곤한다
하지만 어머니 돌아가신 후 후회한들 무엇 하랴, 살아계실때 잘해야 했는데...
불효를 저지른 나는 꿈에서라도 뵐 수 있을까? 문득 손꼽아 기다려 본다. 이젠 그리운 어머니를 뵐 수 있는 기회가 현실로는 이루어 질 수 없는 일이 되어 버렸지만, 올해도 주홍빛으로 물들어가는 감 하나 하나에 모두 어머니 얼굴로 보이는 것은 영원히 잊지 못하는 추억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어머니가 너무 보고싶기 때문일 것이다.
감이 풍성하게 열리는 시월이 되면, 어머니가 좋아하시는 단감, 홍시, 곶감 등을 가지고 산소에 꼭 인사를 하러 가야겠다.
이번엔, 마음으로만 달려가는 것 보다 혼자 어머니를 찾아가서 큰 소리 내어 울어보고도 싶다.
△이종순 수필가는 문학박사이다. 월간 종합문예지<문예사조>와 <시조문학>을 통해 수필가와 시인으로 등단했다. 호원대 유아교육과, 우석대 교육대학원 유아교육과 겸임교수로 활동하고 있다. 현재 창의 숲 프로젝트 연구소 대표와 아이가 크는 숲 예솔 대표를 맡고 있으며 전주 걸스카우트 연맹 부회장으로 활동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