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 아침을 여는 시] 미안한 것들에게-김고원

어린 시절 가장 힘들었던 것은 남원에서도 

얼마를 덜컹거리며 올라야 하는 여원재, 

올라서야만 겨우 닿았던 나의 집

 

 떠나는 이에게 잠깐 

 기다려줄 수 없냐고 묻지 않았고

 길게도 울먹이던 편지에 한 줄 답장도 안 했고

 장마로 전주천이 넘실댈 때나 겨우, 

 그이를 길게 생각하는 우두거니가 되었다

 

 나이 들어 영업을 접었을 때

 무너지는 담장 밑에서 뽑아버려야 했던 늙은 향나무

 덩달아 고향으로 보내버린 누렁이

 

 나 시 쓰기 잘했다

 미안해 미안해 쓸 수 있어서

 낮아진 산능선이 너머 고향 친구 찾아가리라. 

 

△ 삶의 굴곡에서 마음을 흔드는 양심의 파토스가 깔린 아름다운 시다. 맑은 계곡물에 단픙 든 낙엽의 가난하고 슬픈 생의 물결 소리 같다. 폭풍과 폭우를 견디어 온 사시나무가 눈물로 엮은 사연이다. 참회하는 기도였다. 시를 쓰려고 기억을 더듬어 본 화자는 ‘미안해 미안해’만 방황하는 고뇌가 뇌리를 스쳐갈 뿐이다. 사랑의 색이 미안함으로 고스란히 묻어나는 시인의 고백이다./이소애 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