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둑어둑 하루가 저뭅니다. 어질어질 또 한 해가 갑니다. 하루, 한 주, 한 달은 그닥 빠르지 않건만, 한 해 한 해 쏜살입니다. 빨리 어른이 되고 싶던 시절엔 사십 리 밖 신태인역 완행열차가 칙칙폭폭 느려터졌었지요. 기적도 없이 또 한 해의 종착역입니다. 칸 칸 대나무 마디 같은 세월을 뒷전으로 밀어내야 할 시간입니다.
발자국은 바른지, 길 구불거리지는 않았는지 노을 스러지기 전에 돌아봐야겠습니다. 멈춘 듯 흘러가는 저 강물, 홍안의 소년이 어느새 강변 억새처럼 머리가 세었습니다. 돌아본다는 것, 아침에 뜬 해를 저녁에 다시 띄우려는 것이 아닙니다. 흘러간 물로 물방아를 돌리려는 것이 아닙니다. 잠시 나를 떠나 나를 보자는 말입니다. 소싯적 연살을 깎으며 보았습니다. 대나무 마디 속에 고막 같은 흰 막이 있었습니다. 깜깜한 적막 밀려오기 전에 내 안의 소리 들어야겠습니다.
아직 희미한 내 발등 보일 때 발자국과 길을 돌아보겠습니다. 서산을 넘던 해도 잠시 가빴던 날들을 돌아보고 있습니다. 바다로 가는 강물도 잠시 한숨 고릅니다. 허공에 발자국 찍으며 철새 두엇 날아가네요. 한 해의 마디를 묶는 것은, 발자국 잘못 찍었거든 행여 길 잘못 들었거든 새해 다시 시작하라는 의미일 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