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뚜레에 걸쳐진 줄은 용수철처럼 딴딴하고 팽팽하다. 조교사들은 금방이라도 튕겨 나갈 듯한 줄을 잡고 용을 쓰며 끌어당긴다. 곧이어 두 소의 머리를 맞대고 코뚜레의 줄을 빼내는 순간, 이내 싸움은 시작된다. 거칠게 숨을 몰아쉬고 혓바닥에서 연신 거품이 흘러내린다. 단단한 근육으로 뭉쳐진 네 개의 발은 땅바닥에 단단하게 고정해 상대방의 힘에 밀릴지언정 제 발로 물러서지는 않는다. 목덜미를 앞으로 수그린 채 하늘을 찌를 듯 솟구친 뿔을 부딪치면서 상대 소에게 굴복해 절대로 밀리지 않기 위해 안간힘을 쓰는 녀석들의 커다랗고 순한 눈알에서는 이제 지금까지와는 사뭇 다른 전의가 불타오른다. 상대 소는 800Kg 이상의 제일 무거운 체급인 갑종 싸움소 중 청도에서 정읍까지 벌써 4연승을 달리는 갑짱이다. 그렇게 15분여가 흐른 뒤, 갑짱을 상대로 창해의 적극적인 뿔걸이 공격이 시작된다. 창해의 뿔이 갑짱의 뿔을 걸어서 목을 왼편으로 꺾는다. 갑짱은 혓바닥을 땅에 끌릴 듯 길게 늘어뜨리고, 연신 가쁜 숨을 몰아쉰다. 창해는 뿔 기술뿐만 아니라 머리 밀기, 목 감아 돌리기, 들어 밀치기, 배치기 등 어느 기술 하나 나무랄 데 없이 정말 싸움을 하려고 태어난 소 같다. 창해의 지능적인 싸움 앞에서 호흡이 불안해진 갑짱의 눈빛에 긴장한 기색이 뚜렷하다. 곧이어 창해가 뿔걸이 상태로 갑짱의 육중한 몸을 밀치기 시작한다. 밀리지 않기 위해 버티는 갑짱의 앞발이 점차 땅바닥을 파헤치며 뒤로 끌린다. 그러나 창해의 뚝심 있는 밀치기 앞에서 갑짱은 도무지 어찌해볼 도리가 없다는 듯 몸을 돌려 싸움을 포기하고 만다. 자신보다 100kg은 더 나가는 갑짱을 이긴 뒤, 창해는 머리에 시퍼런 멍이 들고 뿔에 찢겨 피가 흥건한 상황에서도 갑짱을 뒤쫓아 가지 않는다. 관중들의 환호를 들으며 싸움장 한가운데에 콧바람만 씩씩거리면서 자리를 지킨 채 서 있는 창해의 당당한 눈망울. 당신은 논두렁 길에 우두커니 서서 창해의 맑고 선했던 그 눈망울을 떠올리며 심란해지는 마음을 애써 추스른다.
잔뜩 성이 나서 논배미 위를 휘감아 돌던 바람이 발정 난 수캐처럼 덤벼든다. 조만간 겁나게 심헌 비라도 퍼부어대면 인자 포도시 뿌리 내리고 여물어가는 벼 모가지들이 제대로 버틸랑가, 라고 당신은 멀리 먹물이 번지듯 하늘을 뒤덮은 채 몰려드는 구름을 보며 걱정스레 혼잣말을 한다. 그 구름이 터지면서 내뿜기라도 하는 듯 거칠고 강한 바람이 푸른빛으로 물들어가는 나락을 훑으면서 쏟아져 내린다. 바람은 이내 시누대처럼 가늘고 구부정한 당신의 허리를 세차게 훑는다. 당신은 찢어진 창호지가 되어 금방이라도 바람에 실려 공중으로 날아갈 듯 위태로운 발걸음으로 유모차를 밀면서 논두렁을 걸어간다. 굳이 새로 난 포장된 길이 아닌 좁은 논두렁 길을 택해 걷는 이유를 도통 알 수가 없지만, 당신이 매일 이렇듯 비좁은 길로 마을회관에 오고 갔음을 나는 오늘에서야 알게 된다. 잠시 가던 걸음을 멈추고 당신은 이삭이 막 피어오르기 시작한 벼를 자식들 머리카락을 빗겨주듯이 어루만진다. 당신의 손가락 마디에 내 입김이 닿을까 싶어 세차게 내려앉아 보지만, 당신은 그저 두 손에 더욱 힘을 주고서 흔들리는 유모차의 손잡이를 부여잡고 걸어간다. 당신은 젊은 시절 같았으면 몇십 초면 될 마을회관까지의 그 짧은 거리를 한참이나 걸려 어렵게 도착한다. 저 멀리 마을 입구에서는 동물방역단 통제관과 동물위생시험소 소속 가축방역관, 방역팀 등이 분주히 움직이고 있고, 회관 앞 공터에 모인 사람들에게 군청에서 나온 조사관이 보상 문제를 설명하고 있다. 근방에서 소, 돼지 등을 키우는 집은 5가구 정도인데 생각보다 많은 사람이 모여있다. 열대여섯 중에서 이장을 비롯한 서너 명의 60대를 제외하면 대부분 70, 80대 노인만 있을 뿐 조사관 또래의 50대 아래로는 보이지 않는다. 이제 머지않아 이 사람들조차 하나둘 떠나고 나면 마을은 잡초와 바람만 무성한 채 느리게 시간을 보내게 될 것이다.
“이번에 살처분한 가축들 현시세대로 보상비도 받고, 거기다 위로금까지 더 보태주니 오히려 축산 농가에게는 이득이죠. 그리고….”
“에끼! 고런 느자구 없는 야그를 할라문 그냥 우리들까정 다 한꺼번에 묻어 불라고 하쇼. 우리가 키우는 돼아지, 소가 어디 그냥 가축이간디. 맨날 빈 항아리에다 우물물 붓드끼 사룟값도 안 나올 거 뻔히 알면서도 몸이 뽀사져라 지금껏 애지중지 키운 것은…고것들이 우리헌티는 어찌 되었든간에 귀허디 귀헌 자식새끼 같은게 그리 안 했겄소.”
조사관이 설명을 다 마치기도 전에 이장이 금방이라도 멱살이라도 잡아챌 것처럼 눈을 부라리며 잔뜩 부아가 치민 목소리로 말을 던진다. 그는 아침부터 해장술이라도 했는지 눈알이며 얼굴이 불그레하다.
“하따! 그렇게 귀헌 자식새끼 같으믄 백신도 잘 맞히고 허지 좀…….”
올봄 이장 선거에서 떨어진 뒤 서로 말도 잘 섞지 않는 낙근 씨가 이장에게 비아냥대면서 말을 받는다. 이번 동물 전염병 사태는 바로 이장이 기르던 소가 처음으로 1급 전염병 판정을 받은 뒤 시작되었기에 사람들은 은근히 이장이 미안하다는 표시라도 해주기를 기대했다. 하지만, 그는 마을 축산 농가에게 고개 한번 숙이지 않을 정도로 당당했다.
“저짝은 고작 3마리밖에 안되는디, 거그서 300미터 떨어진 나는 20마리란 말요. 글고 아, 솔직히 말혀서, 3년 전, 전국적으로 그 생난리를 쳤던 구제역 파동 때도 병으로 죽은 소가 어디 있었다요? 다들 예방 차원에서 수만 마리나 살처분해 불었제.”
낙근 씨가 이장 쪽으로 손가락질을 하더니 조사관을 향해 말을 이어간다. 이장은 은근히 자신에게 책임을 묻는 태도에 화가 치밀어 오르는 것을 삭이려고 잠시 숨을 고르더니 담배 한 개비를 꺼내 문다. 먼 친척이면서도 두 사람은 무엇이든 서로를 이겨야만 직성이 풀리는 사람들이라 결국 이장 선거 때는 삿대질까지 하면서 언성을 높이더니 얼마간 왕래를 끊기까지 했다. 당신은 사람들이 왜 모여있는지, 당신이 여기에 왜 왔는지도 모르는 사람처럼 유모차를 한곳에 삐딱하게 버려둔 채로 ‘백계리 마을회관’이란 팻말이 붙여진 현관을 지나쳐 바로 옆 당산나무 앞으로 걸어간다. 오매, 지지리 복도 없는 년! 태어날 때부텀 망태기로 퍼 담을 맹키로 차고 넘치는 복을 원허지도 않았는디 …. 당신은 느닷없이 땅바닥에 철퍼덕 주저앉더니 신세 한탄을 쏟아낸다. 마을 사람들은 또 시작이라는 듯이 하나둘 그런 당신에게서 시선을 돌린다. 군청 직원이 줄을 선 사람들에게 조사서를 나눠주면서 힐끗 당신을 한번 쳐다보았을 뿐, 당산나무를 향해 연신 절을 하면서 주저리주저리 뱉어내는 당신의 말에 관심을 두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그 나무와 처음 마주하던 날, 낯선 곳에서 시작될 새로운 생활에 대한 두려움과 호기심이 섞인 표정으로 나를 바라보던 어리고 귀엽기까지 하던 당신의 모습과 지금의 당신은 도무지 겹치지 않는다. 신부 화장을 곱게 하고 수줍은 얼굴로 가마에서 내리던 당신은 그때도 당산나무를 보고 손을 모은 채 절을 했었다. 그 당산나무는 이제 곳곳이 썩고 생채기가 나서 몸통만 유독 만삭의 아낙네 배처럼 부풀어 오르고 위쪽으로 가지들은 앙상하게 말라 있다. 몇 년 전부터 시름시름 앓더니 몸 곳곳에 영양제를 찔러대고 보수를 해주어도 도무지 예전의 풍성한 잎들을 드러내지 못한 채 죽어가는 중이다.
당신이 여기 백계리로 시집을 온 것은 막 스물다섯 살 생일을 보낸 며칠 뒤였다. 열 살도 되기 전에 아버지가 세상을 등지는 바람에 엄니 혼자서 위로 오라버니 셋, 아래로 여동생 둘까지 육 남매를 키우다 보니께 울 엄니 손바닥은 늘 가뭄에 갈라진 논바닥맹키로 상처가 아물 날이 없었고, 삼시 세끼 때만 되면 자식들 목구멍에 풀칠이라도 할 생각에 걱정이 가실 날이 없었당게요. 그래서 울 엄니가 나를 열한 살 때 광주에 있는 고모 댁으로 식모살이를 보냈제. 그때는 서러운 마음에 눈물이라도 한 방울 나올지 알았더만, 엄니 고생을 덜어준다고 생각허니께…. 오매, 거 아예 속이 시원섭섭허드랑게. 그때부텀 난 나중에 시집가더라도 울 엄니처럼 시골 사는 남자하고는 상종도 안할 것이라고 속으로 각오를 해불었제. 그런디도 뭔 놈의 팔자가 이리 배암이 똬리 튼 것 맨키 배배 꼬인 것인지 먼 친척 되는 아재가 중매를 서서 여그 백계리까정 안왔겄소,
첫날 밤, 당신의 옷고름을 풀어주기도 전에 술에 취해 곯아떨어진 내 머리맡에 앉아 당신은 앞으로 펼쳐질 이곳에서의 생활을 뻔히 아는 사람처럼 방바닥이 꺼지라 한숨을 토하며 혼잣말을 해댔다. 당신이 시집을 온 백계리는 이름처럼 하얀 닭 머리 모양의 산 아래 위치해서인지 돌산이 절반을 차지하고 기껏 논이라고 해봤자 갯물을 먹어서 나락을 심어도 한 마지기에 겨우 서너 가마니밖에 안 나와 농사짓기에도 젬병인 그런 동네였다. 그 논에다 거름 져 나르고 땅심을 북돋아가면서 한 해 한 해 힘겹게 농사를 짓다 보니 기름진 농토가 되었고, 또 밤낮으로 쇠스랑이며 곡괭이로 파내고 일구다 보니 그 많던 돌산에 지렁이가 바글거리고 심는 족족 씨알이 굵은 곡식들이 자라는 밭이 생기게 되었다. 참말로 그때만 하더라도 논밭이 아니면 세상에 먹고 사는 길이 없는 줄 알고 당신이나 나나 눈에 쌍심지 켜고 죽어라 일만 했다.
“꼭 송충이마냥 겁나게 징그럽더만, 고것이 인자는 맥없이 좋소잉.”
소쩍새 한 마리가 뒤안 대숲에 앉아서 울고 있었다. 곤히 잠들어 있는 어린 것들이 깰새라 당신은 이불을 돌돌 말아 몸에 감더니 코 먹은 소리로 나를 보며 그랬다. 송충이처럼 떡하니 자리 잡은 눈썹을 보면서 처음에는 징그럽다고 하던 당신은 이상하게 시간이 지날수록 내 얼굴에서 눈썹이 사내답고 강하게 보여서 유독 좋다고 했다.
“남우세스럽구만 잉.”
“워매, 고것이 뭣이 남우세스러운 일이다요. 젊을 적에사 밥 먹다 말고도 눈 맞아서 자빠뜨리고 자빠지고 다 그리함서 새끼들 낳고 허는 것이제.”
마당에 덕석 깔고 콩 타작을 할 때면 도리깨를 들어 올릴 적마다 내 눈썹이 위아래로 꼼지락대는 걸 보다가 ‘오매, 참말로 가슴을 콩닥거리게 허요’,라며 당신은 내 팔을 잡아당기고는 했다. 당신과 나는 아직 몸이 젊을 때라 밭에서 일하다 말고 풀밭에 쓰러져 함께 뒹굴기도 여러 번이었고, 논두렁에서 피 뽑다 말고 내 우악스런 손아귀에 못 이기는 척 논 옆 비닐하우스에 들어가서 그런 적도 부지기수였다. 그렇게 큰아들놈 낳고 둘째까지 낳아 오직 자식놈 뒷바라지하는 것이 전부라고 생각하면서 평생을 살았다. 새벽부터 저녁 늦게까지 남의 집 품앗이 다니고, 하루 일 년이 어떻게 가는지도 모르게 뼈가 부서지도록 바쁘게 살다 보니 어느덧 두 마지기였던 논이 네 마지기로 늘었고, 밭도 기름지고 볕 좋은 놈으로 서너 마지기를 장만할 수 있었다. 나는 땅문서에 찍힌 도장밥이 마르기도 전에 당신을 안고 좋아 죽겠다는 마음을 숨기지 못했다.
“오매, 이녁은 몸뚱이는 째깐해도 뭔 일을 혀도 각단지게 허는구만. 그동안 겁나게 고생해 불었네.”
“으째 근다요. 나는 암시랑도 안해라. 이쁜 우리 아그들 덕분에 신간은 겁나게 편했당게요.”
나는 그런 당신이 얼마나 귀여웠던지 내 몸쪽으로 바짝 당겨서 안고, 밤이 새도록 탐했다. 자식들도 자기 부모 힘들게 일하는 거 보면서 이런 촌구석 아이들 같지 않게 공부도 잘해주고 아무런 말썽도 부리지 않으면서 잘 커 주었다. 큰아들이 그 어렵다는 서울에 있는 대학에 떡하니 합격했을 때 당신은 얼마나 신이 났던지 마을 입구에는 현수막 걸고, 당산나무 아래엔 덕석 깔고서 동네 사람들 다 불러 놓고 돼지도 잡고 떡도 해서 크게 잔치를 열었다. 다들 아시지라? 그날 진안댁이 막걸리에 취해가꼬 먼저 죽은 자슥놈 생각난다고 울고불고 난리를 치는 바람에 잔치판이 난장판이 되질 않았습디요. 근디 자식 놈들을 그렇게 애지중지함서 키웠는디 그라문 뭣헌다요, 당신의 말은 또 이쯤에서 끊긴다. 당신은 빙판길에서 쓰러진 뒤로 고관절 수술을 두 번씩이나 했다. 그 뒤로 당신은 말투가 어눌해지고 행동거지는 생각대로 되지 않아 늘 마음과 말이 엇박자를 놓았다. 큰아들 명호가 베트남 비행기에 오른 그해 겨울, 눈에 파묻힌 마을은 무섭도록 아름다웠다. 당신의 증상도 아마 그날부터 더욱 심해졌을 것이다.
다랑이 논 사이로 드문드문 베트남 전통가옥인 냐산의 삼각뿔형 지붕이 들어서 있다. 논두렁 위, 시커먼 털과 크고 뾰족한 뿔을 가진 물소에 올라탄 채 까맣게 얼굴이 그을린 중년의 아들이 활짝 웃고 있다. 그 옆에 대나무로 만든 뾰족한 논라를 머리에 쓰고 붉은색 아오자이를 곱게 입은 채, 아직도 앳돼 보이는 트엉이 수줍은 듯 서 있다. 마을을 떠난 지 한 달이 넘어서야 보내온 사진 속에서 아들과 트엉은 행복해 보였다. 당신은 아들이 보내온 사진을 나에게 들키기라도 할까 봐서 몰래 감춰두고 수시로 꺼내 보는 눈치였다. 하지만, 나는 당신이 마실 가고 없을 때면 몇 번씩 훔쳐보고는 했기에 아들이 중국과 국경을 나란히 한 베트남 북부 농촌 마을에서 살고 있다는 걸 알고 있었다.
“그나저나 날이 저리 개러가꼬 어쩔까이? 아무래도 올해 장마는, 몰아치는 바람이며 몰려드는 시커먼 구름떼가 시피 볼 것이 아니구만요. 그랴도 작년처럼 징헌 물난리는 없어야 쓰겄는디.”
언제 왔는지 당신과 그나마 각별하게 지내는 금평댁이 작년 물난리 이야기를 꺼내며 자꾸만 과거 속으로 빨려 들어가는 당신의 생각을 토막 낸다. 정말이지 작년에는 염병할 놈의 태풍이 초복이 한참 지나서야 뒤늦게 몰려들더니 근 열흘 동안 내리퍼붓던 장대비 때문에 저수지 둑이 무너져 성수네 논이며, 금평댁 수박밭이 죄다 물에 잠겨버렸다.
“어따 성님, 저거 쪼까 보랑게요. 저런 오살헐 놈의 시궁창물이 우리 목심줄 겉은 수박들을 다 아작 낸 것도 모자래서 시방 동동거림서 나를 약 올리는 거 맞지라잉. 오매 징한 거! 저 아까운 것들 우짠단가.”
그 금싸라기 같은 수박들이 물 위로 동동 떠내려가는 걸 망연한 눈빛으로 쳐다보면서 금평댁은 힘이 빠진 목소리로 그랬다. 그리고 그날 이후, 금평댁도 당신과 마찬가지로 유모차를 앞세우지 않고서는 제대로 바깥출입을 할 수 없게 되었다. 그런데 올해는 장마가 오기 전부터 징글맞게 궂은일들만 무시로 들이닥쳐서 당신은 애간장이 다 녹아버릴 듯 힘들 때가 부지기수다. 애써 마음을 추스른 채 금평댁의 유모차를 따라 당신과 당신의 유모차는 사람들 쪽으로 향한다. 조사관 앞에서 자기 차례를 기다리는 사람들을 밀치고 당신이 맨 앞으로 끼어들어도 누구 하나 막아서지 않는다. 근디 우리 소는 다르단 말요, 라고 시작되는 당신의 넋두리는 당신이 굳이 다음 내용을 말하지 않아도, 회관 앞에 모인 사람들은 당신이 무슨 말을 할 것인지 모두 잘 알고 있다. 하지만, 당신은 개의치 않는다. 벌써 사흘째, 당신은 매일 같은 시간에 그곳에서 똑같은 말을 되풀이하는 중이다.
긍게로 이런저런 사정 다 따져서 암만 생각혀도 제일로 불쌍한 것은 우리집 양반이랑게. 우리집 양반이 그 많던 농사는 등한시 하고 날마다 싸움소에 정신이 저러코롬 환장하게 된 게 벌써 십몇 년이 넘었지라. 아들놈들도 어지간한 송아지 열 마리 값을 암시랑도 안하드끼 지불허고 고작 싸움소 될 성싶은 송아지 한 마리만 덜커덩 사오는 즈그 아부지가 제정신이 아니라며 등을 돌리다시피 했당게. 근디도 기언코 우승시키겄다고, 그 양반이 정성을 기울인 내막을 내가 여그서 다 말하는 것은 어림 택도 없을 것이여. 그동안 우시장마다 돌아댕김서 쓸 만한 송아지를 사다가 금이야 옥이야 해감서 보약 다려 멕이고, 타이어 매달고 들로 산으로 끌고 다님서 훈련시킨다고 쏟아 부은 돈만 허드라도 논 열댓 마지기는 족히 넘을 것이요. 근디, 이 양반이 농사일까정 내팽개쳐 감서 그렇게 송아지부텀 온갖 정성을 다해서 키워 어느 정도 자라 코뚜레하고 고생고생 해가꼬 훈련을 시키면 뭣한다요. 이놈의 것들을 비싼 운반 트럭에 태워가꼬 그 먼 곳까지 데리고 가서 조교사까지 붙여 싸움장에 내려놓기만 하면 출전 호명과 함께 잔뜩 긴장을 해가꼬는 상대방 소 한번 들이받지도 못한 채 엉덩이를 빼고 줄행랑을 치기 일쑤였당게. 근디 창해는 고것이 아니드란 말요.
싸움소, 창해!
창해는 흔히 볼 수 있는 누렁소가 아니라 그런 싸움소 중에서도 보기 힘들다는 호랑이 털빛 같은 얼룩 문양을 가진 칡소였다. 정읍 우시장을 수십 번을 다니며 발견한 놈이었고, 태어난 지 석 달밖에 안 된 송아지인데도 목이 드럼통처럼 굵직하고 가슴팍은 단단하면서도 넓으며 등과 뒷다리가 척 봐도 힘깨나 쓰게 생겼었다. 거기다 꼬리는 말 꼬랑지같이 길고, 눈과 귀가 작은 것이 간이 커서 싸움판에서 쉽사리 물러서지 않을 듯 보였다. 당신은 싸움소에 대해 잘 아는 듯이 창해 등짝을 매만지면서 자랑삼아 말했다. 여보! 이놈은 말여, 무엇보다 뿔이 맘에 든당게. 여그를 좀 보소. 아직 삐져나오지는 않았지만 여그 뿔 자리가 하늘을 향해 있는 모양새가 분명히 노고지리 뿔이여. 인자 이놈이 싸움판에 나서기만 해보라제. 뿔치기, 뿔걸이에서 이놈을 당할 소는 없을 것인게.
창해가 소싸움을 마치고 마을로 돌아올 때면 마을회관에서는 늘 당신 덕에 잔치가 열렸다. 멀리 경상도 김해에서 열렸던 소싸움 대회의 갑종 부문에서 창해가 우승했을 때도 그랬고, 전국에서 난다 긴다 하는 싸움소 120마리가 모인 창녕 소싸움 대회 결승전에서 목치기 한판승으로 이겼을 때도 당신은 마을 사람들과도 이 기쁨을 같이 해야 한다며 기필코 상금 800만원 중에서 200만원씩이나 턱하니 잔칫상 차리는데 내놨다. 만약에 매일같이 그런 잔치만 있었다면 당신이 말하듯 ‘가슴팍 한구녕에 애리게 박아 놓은 상처’는 좀 누그러졌을까.
당신이 둘째를 낳고, 겨우 산후조리를 마친 그 날밤, 나는 읍내의 허름한 선술집 김 양의 진한 분 냄새에 취해 있었다. 지금 생각해도 나는 정신이 회까닥해버린 상태였다. 당신은 그 어둡고 먼 밤길을 손전등 하나만 달랑 들고서 한 시간을 넘게 걸었다. 산짐승과 풀벌레 소리에 잠식되어 어디쯤인지 분간도 하기 힘든 길 위로 눈을 똑바로 못 뜰 정도로 무시로 바람이 덮쳐 왔다. 당신은 고갯길을 두 개나 오르고 바람도 잦아들고 해서 잠시 쉬느라 바위 위에 앉아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하늘 가득 별들이 마치 화롯불에서 활활 타오르는 숯덩이를 마당에 확 흩뿌려 놓은 것처럼 요상스럽게 빛을 뿜어대고 있었다. 그리고 어느 순간, 그것들이 가슴팍으로 아리게 파고들더니 불안한 마음의 잉걸불이 되어 버렸다. 불안은 인제 의심 덩이가 되어 가슴팍에다 쉼 없이 풀무질을 해대고 맥없이 눈물마저 쏟아져 내리기 시작했다. 당신은 담박질로 읍내까지 가서 기어코 두 눈으로 확인을 하고야 말았다. 부뚜막 아궁이에 집어넣고 장작 때기를 겹으로 쌓아 불을 싸질러도 시원찮을 연놈들이 방구석에서 이불을 뒤집어쓴 채 저승사자 보듯이 당신을 보고 있었다. 하지만, 당신은 눈앞에서 그 광경을 쳐다보고 있으면서 온몸에 있는 기운이 실타래 풀어지듯 스르르 땅바닥으로 꺼져 들어가는 것 같았다. 그리고 한참 주저앉아 있다가 그 문짝이 부서지라 닫아버리고 뒤돌아서 터벅터벅 집까지 걸어갔다. 그날, 당신이 나를 원망하거나 죽일 듯이 달려들었다면 아마 나는 당신을 따라서 그 밤길을 걸어 집으로 돌아오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그 이후, 당신은 부아가 치밀어 오르는 일이 있으면 나를 쏘아보며 ‘씨는 못 속인당게. 꼭 그런 것만 저그 아부지를 탁했응게로. 서방 복 없는 년이 뭔 놈의 자식 복을 바란디야.’라며 사금파리처럼 예리한 한 마디를 남편인지 아들인지 모르는 상대에게 쏘아붙이고는 했다.
“한탕주의나 부추기는 소싸움이 무슨 놈의 전통이고 민속이라고. 솔직히 불쌍한 동물을 학대하는 거죠. 이제 고만 좀 하세요.”
싸움소에게 먹일 쇠죽에다 미꾸라지며 인삼을 갈아서 넣고 있을 때였다. 아들은 외양간 앞에 삐딱하게 선 채 비꼬는 말투로 이제 막 3살이 되는 창해를 팔자고 했다. 몸이 부들부들 떨리며 하마터면 왼손에 들고 있는 솥뚜껑을 놓칠 뻔했다. 서울의 그 좋다는 대학 나와서 착실하게 회사 생활하면서 아파트도 한 채 있겠다, 거기다 많이 배운 마누라 얻어서 떵떵거리면서 잘 살던 아들이었다. 그런데 주식이며 부동산 투자한답시고 눈알이 핑 돌더니 밑 빠진 독에 양수기로 물을 퍼 담아 날라도 차지 않을 만큼 맨날 돈을 꼬라박기 시작했다. 결국, 아파트를 처분한 돈과 회사 퇴직금까지 날리고 이혼까지 당하더니 빈털터리가 된 채 집으로 돌아왔다. 아들은 싸움소가 돈이 된다는 소리를 어디서 들었는지 사업자금으로 쓸 돈을 해달라고 보챘다. 그건 가당치도 않았다. 당신과 나에게 창해는 그저 사고팔 수 있는 짐승이 아니었다. 그러더니 아들은 동업자인 친구 상현이가 보증을 서준 덕분에 농협에서 빚을 내 콤바인과 트랙터 등의 농기계를 사 왔다. 둘은 이 마을 저 마을 돌아다니며 기계로 수확해주는 일을 시작했다. 노인들이 대부분인 농촌에서 그나마 몇 안 되는 젊은 사람들인지라 어느 정도 사업이 성공한 듯 보였다. 늦게나마 정신을 차리고 성실하게 살아주는 그런 아들의 모습에 괜히 마음이 아려오기까지 했다. 아직 한창인 창해를 싸움소에서 은퇴시킨 것도 몸이 늙고 병이 와서라기보다는 아들에 대한 미안한 마음이 앞서서였는지도 모른다.
럼피스킨병! 당신에게는 화성이니 명왕성처럼 도무지 가늠하기도 어렵고, 발음조차 하기 힘든 낯선 이름의 병명을 방역관들은 아무렇지도 않게 내뱉었다. 전염성이 강한 병이라고 했다. 같은 마을의 소는 물론이고 돼지들 전부 살처분 대상이라고 했다. 살처분이라는 말이 아무짝에도 쓸모없는 쓰레기 더미를 처리하는 것처럼 너무도 대수롭지 않게 느껴졌다. 당신은 그저 창해 발굽에 조그마한 물집이 잡히고 고열이 있으면서 며칠간 침만 질질 흘리고 먹지도 않아 걱정스러워했을 뿐이다. 창해는 은퇴한 지 벌써 5년이 되었지만 비실비실한 일반 소와 달리 싸움소 출신이라 그런 병에 쉽사리 걸리지 않을 것이란 자신도 있었다. 하지만, 가축방역관들은 인근 500미터 근방의 모든 소는 살처분 대상이라며 막무가내로 창해에게 마취제를 찔러 넣었다. 마취제를 맞더니 힘이 빠진 채 두 눈을 끔뻑이며 당신을 뻔히 쳐다보는 고것 눈에서 굵은 눈물이 주루룩 흘러내리는 걸 당신은 분명히 보고 말았다, 아직 숨이 완전히 끊어지지 않은 창해를 매몰지까지 싣고 온 굴착기는 아무 일도 아니라는 듯이 구덩이에다 쳐 박아넣고 흙으로 덮어 버렸다. 당신은 자기 몸이 굴착기의 삽으로 난도질당하고 파묻히기라도 하는 것처럼 가슴이 녹아내릴 듯이 아프고, 발길이 허청대며 제자리에 발붙이고 서 있을 수가 없었다.
고혈압 땜시 크게 쓰러지고 난 뒤로는 죽을 날만 기둘리며 몸할라 지대로 움직이지도 못하는 양반이 창해가 있는 외양간으로 기다시피 가더니만 꽥꽥거림서 나옵디다. 내가 야그를 마치기도 전에 이 양반이 울부짖음서 창해가 묻힌 땅을 손가락으로 파내는디 오매, 손톱이 빠지기라도 혔는지 그 양반 손가락 살점들이 찢겨져 피가 흥건해지고 세상 다 망했다는 듯이 눈물을 흘리면서 꺼억꺼억 소리 내어 통곡까정 허더랑게요. 그리고 그날 저녁부텀 시름시름 앓더니만 인자는 저렇게 영영 못 일어나는 신세가 안되야 부렀소. 하이고, 우리 영감 불쌍혀서 어짠단가. 저 양반, 소를 지 자식새끼보다 더 애지중지함서 키웠는디. 좋은 것 많이 멕임서 죽을 때까정 호강시키겄다고 벼르고 있었는디. 말 못 허는 짐승이야 그렇다 치고, 시방 자기할라 이 시상 뜰라고 저래 숨을 꼴딱거리고 있응께 인자는 배겨낼 재간이 없는갑소, 말꼬리를 늘어뜨리며, 당신은 이제 거의 눈물 콧물 범벅인 채로 땅에 털썩 주저앉아 부지깽이처럼 말라비틀어진 손으로 땅바닥을 내리치며 울부짖기까지 한다. 군청에서 나온 조사관이 재빨리 체크리스트를 넘기면서 무엇인가를 찾는다. 그리고 당신과 이장을 번갈아 쳐다보더니 부러 한마디 던진다.
“그건 너무 걱정마세요. 분명 일반소와 싸움소 가치를 달리해서 보상할 테니까요.”
“음마! 누가 보상비 바라고 이라요? 거, 좋은 방법으로다 안락사라는 것도 있는디 뭣땀시 애먼 것들을 그리 숭악허게들 생으로 죽이느냐 이 말이제.”
금평댁이 당신의 손을 잡아 일으키면서 조사관을 앙칼지게 쏘아보며 한 마디 내뱉는다.
“시간과의 싸움이니까요. 지금 저희도 동물방역당국과 협조하에 현장 통제와 소독, 역학 조사를 벌이느라 밤낮없이 많은 사람이 고생하고 있습니다. 최대한 해당 동물들 고통 없이 처리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고 있으니 너무 염려치 마세요.”
“그라요? 그라문 하다못해 마취제를 쓰든가 아님, 가스를 쓰든가 해야 쓸 것 아니요. 몇 년 전에 전국적으로 구제역 돌 때는 시간 아낀다고 애먼 근육 이완제를 쓴 거 다 아요.”
담배만 연신 뿜어대던 낙근 씨가 갑자기 나서면서 3년 전에 전국의 축산업을 위기로 몰았던 구제역 파동으로 이야기를 돌려댄다. 그때는 너무 긴박하고 어려운 상황이라 동물 사체처리반 중에서도 과로사하는 사람이 나올 정도였고, 워낙 많은 수의 살처분이 진행되었기에 근육 이완제만 주사하고 바둥거리는 동물을 곧바로 매몰시키는 경우도 다반사였다. 조사관은 곤란한 표정이 역력한 얼굴로 서류를 신경질적으로 넘겨댄다. 당신은 조사관이 입술 꼬리를 한쪽으로 말아 올리며 인상을 쓰는 모습을 보면서 어쩐지 아들 명호의 그것과 닮아있음을 느낀다.
상현에게 국제결혼을 부추긴 것은 명호였다. 어릴 때부터 소아마비를 앓아서 몸이 불편했던 상현은 나이가 들어서도 연애 한번 제대로 해보지 못했다. 명호는 그런 상현에게 사내로 태어났으면 결혼도 한번은 해보는 게 좋을 거라며, 내켜 않는 그를 꼬드겨 부득불 베트남까지 동행했다. 그렇게 스물다섯 살의 트엉은 낯선 땅에서 신부가 되었다. 트엉은 눈이 솔방울처럼 크고 금방이라도 눈물이 쏟아질 듯 그렁그렁한 눈동자가 사람을 끌어당기는 매력이 있었다. 가느다란 허리와 어딘지 여리게만 보이는 얼굴은 보호본능을 자극하고 서툰 한국말로 인사를 할 때의 목소리는 상냥했다. 얼마간 결혼 생활은 순탄하게 흘렀다. 그러나 소아마비로 한쪽 다리를 절고, 말이 어눌한 것이 늘 상처로 남아있었던 상현이는 툭하면 술에 취해 아내가 자신을 무시한다며 행패를 부려댔다. 낯선 한국에 아직 적응도 되지 않은 채 나이도 어리고 마음마저 여렸던 트엉에게 이제 의지할 사람은 명호밖에 없었다. 그리고 그런 그녀에게 명호가 빠져든 것은 어쩌면 시간문제였다. 명호는 상현이 몰래 농기계를 처분한 돈과 그의 아내인 트엉까지 챙겨서 폭설로 버스마저 끊긴 마을을 도망치듯 떠나갔다. 그날 이후, 매일 술에 취해 동네를 배회하고, 집에 찾아와 명호의 행방을 묻던 상현이는 갈수록 폐인처럼 변해갔다. 겨울이 끝나갈 무렵, 상현이가 베트남 비행기에 올랐다는 소문이 들려왔다. 그리고 이듬해 봄이 되어서야 베트남에서 돌아온 상현이는 형사들에게 둘러싸여 손에 수갑이 채워진 상태였다. 느자구 없는 놈! 하루 점드락 모가지 빠지라 기둘려도 편지 한 장 안 보낸디야. 당신은 우체부가 돌아서는 대문간에서 매일같이 항공우편을 기다렸다. 하지만, 당신이 기다리는 그 편지가 더 이상 오지 않으리라는 사실을 나는 차마 아직껏 말하지 못했다.
꽃상여라? 참말로 벨시럽소잉. 나는 마지막 힘을 짜내어 당신에게 꽃,상,여,라고 말했고, 당신은 웬 뚱딴지같은 소리냐는 듯 뜨악한 표정으로 나를 내려다보았다. 군청 장례식장이나 병원 장례식장에서 치르면 손님 맞이하기도 훨씬 쉽고 오시는 문상객들에게도 편리할 것이다. 그런데 뜬금없이 장마철을 앞두고 꽃상여를 태워 보내달라고 하니, 당신은 분명 영감탱이가 죽을 때까지 참말로 주책없이 군다고 생각했을 것이다. 하지만, 내 마지막 가는 길은 그랬으면 했다. 옛날엔 비록 어렵고 힘들게 살았지만, 동네 사람들이 못줄을 치고 한 줄로 서서 타령 불러가며 모내기를 하고 나락도 함께 베었다. 세상 살기 좋고 편해졌지만, 나는 그때 기억들이 뭉실뭉실하면서 간절해질 때가 있었다. 한 세상 궂은일만 징그럽게 하다가 저세상 가는 마당에 온 동네 사람들이 우리 집 마당에 널찍한 차양치고 넉넉하게 차려진 음식 먹어가면서 시끌벅적하게 웃고 떠들고 하는 것 보면 저세상 가는 게 심심치는 않을 것이다. 간짓대에 걸린 꽃술이 깔끄막부터 온 동네에 휘휘 날리며 저세상 가는 길을 훤히 밝혀 주고, 창해가 맸던 워낭을 요령 삼아 앞소리꾼이 메기고 상두꾼들이 받아주는 상엿소리를 들으며 동네 사람들 모두 다 나와서 잘 가라고 손이라도 한번 흔들어주면 북망산천도 꽃구경 삼아 갈만 할 것이다.
마을 사람들이 바닥에 퍼질러 앉은 당신을 내려다본다. 당신은 바닥에서 천천히 몸을 일으킨다. 금평댁이 다시금 당신의 몸을 부축해 유모차의 손잡이를 잡게 도와준다. 당신은 한 손으로는 유모차의 손잡이를 잡고, 또 다른 손으로는 코를 팽하고 풀어서 바지춤에 쓱쓱 닦는다. 그리고 이제야 사람들에게 전할 말이 생각난 듯 조금은 가볍고 경쾌한 목소리로 말한다. 어짤라요? 내 홍어 무침도 허고 된장 푼 물에 애 넣고 시원허게 홍어국도 끓일 것인디. 거그다 술까정 푸짐허니 준비헐틴게, 여그 계신 양반들 다들 오실 거지라? 나는 인자 싸게싸게 집으로 가봐야 쓰겄소. 오매, 근디 오늘 저녁에는 저놈의 하늘이 기언시 비를 뿌릴랑가 참말로 날씨 한번 미친년 널뛰드끼 요상시럽구만 잉. 당신 것일 수도 있고, 내 것일 수도 있는 목소리에는 끊어질랑 말랑 엿가락처럼 늘어났다 줄었다 박자가 있다. 당신의 유모차는 그 박자에 맞춰 느릿느릿 논두렁 길을 지난다. 그러다가, 당신에게 손짓하며 더 너른 바다를 향해 나아가는 나를 쫓는 듯이, 박자는 점차로 달음박질을 치기 시작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