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성덕 시인의 '풍경']섣달그믐

안성덕 作

 

어떤 이는 첫 절기인 입춘을 한 해의 시작이라고 합니다. 또 어떤 이는 낮이 점점 길어지는 기점인 동지를, 태양력인 그레고리력 1월 1일을 한 해의 시작이라고 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우리 대다수는 음력 정월 초하루가 설날 즉 한 해의 시작이지요. 그러니 섣달그믐이 마지막 날입니다.

 

‘섣달’도 시린데 ‘그믐’까지 코앞이니 자꾸 웅크려집니다. 익숙할 만하건만 살얼음판 위를 걷는 듯 조심스럽습니다. 몸도 마음도 더 정갈히 살펴야겠습니다. 무던했던 한 해 감사하고, 행여 갚을 빚 미루지 말아야겠습니다. 마지막 날 섣달그믐을 지나면 어디에 가 닿을까요? 

 

저 벌판에 커다란 문이 있네요. 열린 문으로 오늘이 들어가면 내일일까요? 내년은 올해와 다른 바람이 불까요? 뒷물에 밀려나는 앞 장강물처럼 나도 저 강물도 흘러가 버리고 없을까요? 여기 문밖은 어디고 저기 저 문 안은 어딜까요? 해가 갈수록 모든 게 자꾸 두렵습니다.

 

저 문, 헛 매듭일 겁니다. 문에 들어도 그 바람 그 강물 그 세월일 겁니다. 섣달그믐도 매한가지겠지요. 갑진년(甲辰年)과 을사년(乙巳年)이 다르지 않을 겁니다. 저 문에 갇히지 않고 벌판을 건너는 바람처럼, 도도한 강물처럼 섣달그믐을 지나 초하루로 가겠습니다. 한 마리 푸른 뱀처럼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