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년 이장이 떴다] "죽기 전에 꼭"⋯75년 만에 날아온 '편지 한 장'

'청년 이장이 떴다' 신문 보고 연락한 아흔 살 국민학교 동창
"살아 있어 다행이야"⋯ 한참 통화한 끝에 꼭 만나기로 약속

화정마을 조재신 할머니가 75년 만에 동창에게 온 편지를 보여 주고 있다. 박현우 기자

지난주 조재신(89) 할머니가 화정마을 경로당에서 어르신들과 이야기를 나누던 '청년 이장' 취재진에게 말을 걸었습니다. 할머니는 "시방, 누가 우리 집으로 편지를 보냈어. 이장님들이 내 주소를 알려 준 겨?"라고 물었습니다. 깜짝 놀란 취재진은 "할머니 개인 정보인데 누구한테 알려 드려, 큰일 나요!"라고 대답했습니다.

혹시 모를 상황에 대비해 편지를 확인하러 함께 할머니 댁으로 이동했습니다. 할머니는 일기장 깊숙이 넣어 놓은 편지 봉투를 꺼내셨습니다. 색이 다 바랜 우표가 붙은 봉투 속에는 한 글자 한 글자 정성껏 눌러쓴 글씨가 빼곡히 적힌 편지가 들어 있었습니다.

"고산면 화정리 조재신 할머님께. 나는 비봉면 죽산마을에 살다가 전주로 이사 간 조재영입니다. 오늘 아침 전북일보 신문을 보고 본 서신을 드립니다."

누가 봐도 나이가 지긋하신 어르신이 쓴 편지 같았습니다. 조 할머니는 "처음에 보낸 사람이 누군지도 몰랐당게. 근데 시방, 나랑 같이 국민학교 다닌 양반이더라니께. 신문 보고 편지 썼디야. 우리 집도 모를 텐디 어떻게 알고 보냈는지 모르겄어"라고 말했습니다.

"75년 전 비봉국민학교 제17회 졸업생이시면 반갑게 인사 올립니다. 졸업한 지 75년이 되었지요. 졸업 사진 보고 얼굴도 기억했습니다. 조 여사님 건강하시고 잘 계셔요!"

알고 보니 두 분은 열다섯 살 때 같은 반이었던 겁니다.(옛날에는 국민학교를 18살에 졸업하는 일도 있었죠.) 먹고 사느라 바빠 친구가 살았는지 죽었는지도 모른 채 지냈는데 본보 신문(1월 20일·2월 3일 자 각 2면)을 보고 75년 만에 연락한 것입니다.

할머니도 편지를 읽고 너무나 반가워서 할아버지에게 전화를 걸었습니다. 그리고 두 분은 한참을 통화하다가 약속했죠. 죽기 전에 꼭 만나자고요.

이후 취재진은 사무실로 돌아와 편지를 몇 번이고 읽어봤습니다. 75년 만에 닿은 연락이라⋯. 편지의 내막이 궁금해 바로 할아버지에게 전화를 걸었습니다.

할아버지는 "동창들이 다 죽은 줄 알았는데 친구를 보니까 반갑더라니까. 아버지·어머니 산소 갈 때 아들들이랑 가기로 했어요"라며 만남을 기약하셨습니다. 꼭 두 분이 만나는 날이 오기를 바랍니다.

디지털뉴스부=박현우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