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자가 몸 담고 있는 크립톤은 국내에서 가장 오랜 기간 활동해온 액셀러레이터이다. 액셀러레이터는 투자와 육성을 통해 초기 스타트업의 성장을 지원하는 전문가 집단을 말한다. 자동차의 핵심 부품인 액셀과 같은 단어를 사용하는데 자동차에서는 엔진을 가속하는 역할을 한다면 기업에서는 성장을 가속하는 역할을 한다. 크립톤은 지역소멸과 지역경제 붕괴의 심각성에 주목하면서 2018년 액셀러레이터 중 가장 먼저 지역창업생태계 활성화를 주창했고 독자적인 전략을 수립해 역량을 투입해오고 있는데 전략의 첫 번째 단계가 ‘지역의 역사와 맥락에 부합하는 산업을 설정’하는 것이다. 다행히도 지금은 전국의 많은 지자체가 지역창업을 육성하기 시작했지만 아쉬운 점은 AI, 방산 등 당장 유행하는 산업에만 관심을 가진다는 것이다. 그러나 유행은 언젠가 끝나기 마련이다. 그래서 크립톤은 지역에 축적된 역사와 맥락에 기반한 산업을 선택해야 한다고 말하고 있다. 아예 기반이 없다면 무에서 유를 창조하는 접근도 필요하겠지만 어느 정도라도 축적이 이루어진 산업을 선택하는 게 당연히 성공 가능성이 높다. 그 산업이 유행에 민감하지 않고 지속적으로 성장할 수 있는 것이라면 더없이 좋을 것이다.
크립톤이 전북을 주목하기 시작한 2022년까지만 해도 창업생태계에서 전북의 존재감은 미약했다. 창업생태계를 활성화시키는 데는 많은 시간이 필요하기 때문에 이런 상황에서는 존재감을 빠르게 만들어내는 전략이 필요하다. 전략과 상황을 고려하여 크립톤은 먼저 전주에 콘텐츠 창업생태계를 조성하는 작업을 시작했다. 전주는 전북 내에서 가장 많은 트래픽이 발생하고 조선 창건의 역사, 한옥마을 등 많은 문화유산을 가지고 있었을 뿐 아니라 국제영화제, 세계소리축제 등을 통해 콘텐츠 자산을 계속 축적하고 있는 도시였기 때문이다. 축적의 힘을 작동시킬 수 있다고 보았고 1910년대 형성된 할리우드를 기반으로 LA가 미국을 대표하는 콘텐츠 창업생태계로 성장했듯 전주가 대한민국의 LA가 될 수 있다고 판단했다. 2024년부터는 전북특별자치도청의 도움을 받아 지역 내 콘텐츠 스타트업 리스트를 작성하고 팁스(TIPS) 등 기술창업 육성 프로그램을 통해 가능성 있는 기업을 발굴해 투자하고 있다. 55억원 규모의 중기벤처부 글로컬 상권 사업을 유치해 스타트업을 지원하고 전문가들을 지역과 연결시키고 있으며 매월 커피챗을 통해 창업가들의 고민을 듣고 해법을 제안하고 있다. 동시에 성장 가능성이 큰 수도권의 스타트업의 본사를 전주로 이전시키는 작업도 진행하고 있다.
지난 1년은 기초를 놓았고 올해는 그 기초 위에서 활성화를 촉진할 것이다. 내년이 되면 전국이 주목하는 의미있는 성과가 나올 걸로 기대한다. 5년 안에는 전주가 성장시킨 콘텐츠 스타트업이 코스닥에 상장할 수도 있을 것이다. 이런 노력을 지속한다면 전주는 10년 내에 명실상부하게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콘텐츠 창업생태계의 도시가 될 거라 믿는다. 그래서 바란다. 전주의 창업가들이 스스로를 한계 짓지 말고 대한민국을 석권하겠다는, 글로벌로 진출하겠다는 대단한 목표를 설정하고 끝까지 해내는 결기를 가져주기를. 콘텐츠 분야에서 성공을 꿈꾸는 스타트업들이 전주를 주목해주기를. 도전해보겠다면 크립톤은 전문성, 네트워크, 투자를 제공할 준비가 되어 있고 전주시와 전북특별자치도 역시 호응할 준비가 되어 있다.
양경준 (주)크립톤 대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