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스 오를 때마다 '악 소리'⋯ 어르신 몸 체험해보니

집 앞까지 운행되는 버스는 고작 6대, 배차 간격마저 4시간
걸어 다닐때마다 땀 뻘뻘⋯ "혼자만의 싸움 끝에 외출 가능"

 

지난 1월 말 '청년 이장' 취재진과 처음 만난 화정마을 주민이 툭 던진 말이 있습니다. "면허 있어? 시골짝에서 살고 싶으믄 차부터 사야 혀." 그때는 속도 없이 웃어넘겼습니다. 시간이 지날수록 그 말이 이해되기 시작했습니다.

화정마을에는 그 흔한 마트, 구멍가게도 없어 읍내에 나가야만 합니다. 문제는 그나마 가까운 봉동읍으로 가려 해도 버스가 없다는 것입니다. 하루에 운행되는 버스는 6대뿐. 배차 간격은 짧으면 1시간, 길면 4시간에 달합니다. 주변에 버스가 많이 다니는 정류장도 있습니다. 그러나 화정마을에서 성인 기준 도보 20분 걸리는 거리에 있죠. 보행기에 의지하는 어르신에겐 버거운 거리입니다.

택시를 타면 되지 않냐고요? 화정마을에서 자동차로 5분 거리인 봉동읍에 가려면 왕복 1만 2000원을 내야 합니다. 이것도 운이 좋았을 때입니다. 시골 벽지에 있어 택시가 안 잡히면 1만 4000원까지 낼 때도 있습니다.

 

지난 12일 화정마을 어르신들이 다리가 돼 주는 보행 보조기를 밀고 있다. 김지원 기자

 

그러다 보니 어르신들은 아플 때도 참는 게 일쑤입니다. 병원이 있는 읍내로 향하는 택시비가 부담스럽고 거동이 불편한 어르신들은 보행 보조기가 필수인 탓에 버스를 타는 것도 쉽지 않거든요.

 

 

"버스는 1500원만 내믄 타. 근디 내가 다리가 아퍼, 마음대로 버스를 못 탕게 택시로만 가야 허는데 비싸잖여. 아파도 두 번 갈 거 고냥 한 번에 갈라고 참지."

손가락부터 무릎, 어깨까지 성한 곳이 없는 이장순(90) 어르신은 계단을 올라가는 큰 버스를 타지 못해 택시를 주로 이용합니다. 문제는 돈, 병원비보다 택시비가 더 나가는 탓에 아파도 참는 게 일상이 됐습니다.

화정마을을 비롯한 시골마을은 다 똑같은 문제를 겪고 있습니다. 읍내에 나갈 일은 많아도 버스가 없어서, 택시비가 비싸서, 거동이 불편해서 한 번 나가려면 혼자만의 싸움 끝에 외출하는 것이죠. 교통이 불편한 건 여러 보도를 통해 접해서 익히 알고 있었지만 직접 겪어보지 않으면 모른다는 말이 있습니다.

 

지난 12일 '청년 이장' 취재진이 노인 체험 보조 기구를 입고 봉동읍내를 걸어다니고 있다. 김지원 기자

그래서 청년 이장이 도전했습니다. 전북특별자치도사회서비스원 전북노인보호전문기관에서 노인 체험 보조 기구를 대여해 준다는 말에 문의했습니다. 허리를 빳빳하게 고정하는 허리 보조기, 온몸을 무겁게 만드는 모래 주머니, 손과 다리 움직임을 제약시키는 관절제한보조기구까지. 모든 기구를 착용해 봤습니다.

지난 12일 '청년 이장' 취재진이 노인 체험 보조 기구를 입고 계단을 올라가고 있다. 김지원 기자

 

온몸이 마비된 듯합니다. 무게 중심을 잡으려면 허리를 숙여야 했고 지팡이를 짚지 않으면 걷기도 힘들었죠. 그냥 길을 걷기도 힘들었죠. 양손과 발목에 찬 모래 주머니 때문에 숨까지 가빠졌습니다. 마치 땅이 온몸을 끌어당기는 듯했죠. 평소에 아무렇지 않게 하던 행동이었지만 노인의 몸으로는 하나하나 계산해야만 가능했습니다.

 

지난 12일 '청년 이장' 취재진이 노인 체험 보조 기구를 입고 버스를 기다리고 있다. 김지원 기자

 

버스가 왔습니다. 막상 버스 앞에 서자 계단이 커다란 벽처럼 느껴졌습니다. 장순 어르신 말대로 버스 위로 다리를 올리지 못했습니다. 땅과 버스 높이는 고작 30cm 남짓한 계단, 노인의 다리는 그 높이를 견디지 못했습니다. 저도 모르게 '악!' 소리를 질렀죠. 버스에서 내리는 것도 똑같았습니다.

왕복 10분이면 이동하는 거리를 노인의 몸으로 한 시간이나 걸려 다녀왔습니다. 체험을 마치고 돌아오는 길, 마을에서 박복순(88) 어르신을 만났습니다.

"여기는 버스가 와도 못 탄다니께. 버스도 몇 대 없고 나갈라면 시간 맞춰야 하니께 여간 힘든 게 아녀! 그냥 비싸도 택시 타지 어쩌겄어. 한 번 나가는 게 일이여. 다른 데는 마을 버스도 있고 500원 택시도 있담서."

복순 어르신이 말하는 버스는 완주군에서 운영하는 공영제 마을버스 '부름부릉'입니다. 이는 교통 취약 지역과 읍면을 연결하는 마을버스로 현재 이서·소양·구이·상관·삼례 등 5개 읍면서 운행 중입니다. 화정마을이 있는 고산면은 아직 운행되지 않고 있죠.

"인쟈 버스 안 탄 지가 벌써 10년이 됐네? 타고 싶어도 못 타능 게 슬프지."

복순 어르신의 바람은 언젠가 혼자 힘으로 버스를 타고 마을을 벗어나 읍내로 향하는 것입니다. 어르신들의 불편을 온몸으로 경험한 우리는 그 작은 소망이 이뤄지는 날이 오기를 간절히 바라봅니다.

디지털뉴스부=문채연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