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면 정 가운데 돼지 한 마리가 물끄러미 누군가를 쳐다본다. 그 위로 ‘Welcome To MY World’라는 문구가 적혀있다.
다음 화면에는 정체를 알 수 없는 낯선 선과 색의 조합이 두드러진 그림이 나타난다. 이어서 어두운 배경 위로 도끼 그림과 TOOL이 새겨진 그림이 보여진다. 정확한 의미를 알 수 없는 그림들의 연속이지만, 색채와 분위기만으로 강렬한 인상을 준다.
한국 현대미술에서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는 김춘선(62) 작가의 개인전 ‘THE SERIES OF OMNIVOROUS’가 유휴열 미술관(완주군 구이면 신뱅이길 55)에서 1일부터 열린다. 월요일 휴관.
1980년대 작품 활동을 시작해 민중미술이 지배하던 시기, 자신만의 독립적인 작품 세계를 구축하며 국내외 찬사를 받아 온 작가는 개인전만 9회째가 됐을 정도로 왕성한 작품 활동을 하고 있다.
2016~2017년 단편적인 소품을 한데 모아 병렬 배치하는 작업을 선보여 온 작가는 회화적 효과가 크다는 사실을 깨달았고, 몇 개의 연작을 시도하기에 이른다. 이후 서로 조형적 연관성이 없는 작업일수록 ‘회화적 은유’가 풍부하다는 것을 확인하게 됐다. 서로 다른 것들을 이어 붙여 대립의 요소를 회화적으로 표현해내는 작업에 몰두하게 됐다.
이번 전시에서는 단추, 옷핀, 브로치, 기묘한 상표 등 작가가 호기심 왕성했던 어린 시절 집안 장롱 서랍에서 찾아낸 것들을 길게 늘어트린 작품 30여점이 소개된다. 주제 없이 일상에서 마주한 소재로 완성한 작품은 어딘지 일관성이 없고 때로는 혼란스러워 보이기도 한다.
하지만 작품 안에는 작가의 개인적 경험에서 나온 필연적 사유가 담겨 있고, 색과 형태, 생각의 충돌을 통해 만든 새로운 미적 질서를 창출해 작품으로 완성시켰다.
김 작가는 "이번 전시에 소개되는 옴니버스 시리즈는 나의 어릴 적 습성이 되살아난 게 아닐까 생각한다"며 "색과 색의 충돌, 형상과 형상의 충돌, 생각과 생각의 충돌 등 이런 대립 요소를 발견하고, 즐기게 되었다”고 작가노트를 통해 밝혔다. 전시는 4월 27일까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