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주한옥마을을 찾은 관광객들은 해가 지면 남부시장 야시장으로 몰려왔다. 합리적인 가격에 다양한 소품과 먹거리를 구입하고 즐길 수 있는 곳. 남부시장 야시장은 새로운 문화가 피어나는 공간이었다. 나는 운 좋게도 활기 넘치는 시장의 한편에서 그림엽서와 작은 그림 액자를 펼쳐보일 수 있었다. 사람들은 관광 기념으로 또는 가족과 친구들에게 선물한다며 그림엽서를 골랐다. 내 작품을 사랑해준 사람들 중에는 외국인 친구들을 빼놓을 수 없다. 내 그림들을 흥미롭게 살펴보고는 함께 기념사진을 찍자는 요청도 이어졌다. 어느 날은 지역 방송국에서 인터뷰를 요청해 촬영까지 진행했다. 꽃이 피는 봄과 함께, 내 주말도 활짝 피어났다. 이 시기를 계기로 본격적으로 SNS를 시작했다. 꾸준히 그림을 게시하면서 그리는 것을 게을리하지 않는 루틴도 만들어졌다.
야시장을 오가는 나의 상황은 장밋빛이었다고 추억한다. 그러면서도 한편으로 안정적인 공간에 대한 꾸준한 갈증을 불러일으켰다. 계절을 넘나들면서 나의 그림에 대한 가능성이 뚜렷해질 때 즈음, 그 욕구는 더욱 확실해져갔다. 여름엔 시원하고 겨울엔 따스한 공간이 절실했다.
그렇게 시간은 흘러, 남부시장 청년몰에서 새로운 입주자 모집 공고가 떴다. 나는 망설임 없이 지원했고, 야시장에서 내 작품을 눈여겨본 담당자는 ‘작은 공간밖에 없는데 괜찮겠냐?’고 물었다. 그렇게 나는 4평 남짓한, 누군가에게는 너무도 작지만 나에게는 너무나 충분한 공간을 얻었다.
새해가 밝고, 동장군이 매섭게 기승을 부릴 때, 나는 작업실 공사를 시작했다.
사람들에게 그림이 필요한 순간은 언제일까? 어떤 그림이 사람들의 관심을 받고 구매로 이어지는 것일까? 나의 그림과 공간은 이곳을 찾은 모두에게 어떤 모습으로 다가가면 좋을까? 수많은 고민과 즐거운 상상속에서 작은 공간이지만 내 첫 작업실이자 가게는 천천히 모습을 갖춰갔다. 벽과 천장을 깨끗하게 정리하고, 전기와 바닥 공사까지 직접 했다. 설렘으로 가득 찬 마음 덕분에 추위도 느껴지지 않았다.
작업실 오픈과 함께 맞이한 설 연휴 동안 찾은 사람들로 가게는 붐볐고, 나의 공간과 그림들은 드디어 빛을 보았다. 내 그림엽서가 그렇게나 불티나게 팔린 적이 있었을까? 봄방학이 되자 대학생 여행객들이 찾아왔고, 봄꽃이 필때부터는 가족과 연인들이 몰려들었다. 여름이 가까워질 즈음에는 외국인 관광객들이 많아졌고, 단풍으로 풍성한 가을에는 우정을 기념하는 친구들의 발길이 이어졌다. 새로운 사람들과의 만남이 반가웠고, 외주작업도 꾸준히 들어왔다. 큰돈을 번 것은 아니었지만, 내 그림이 사랑받는다는 사실만으로도 말로 다 할 수 없이 기뻤다.
그러던 어느 날, 한 공기업에서 일러스트 시리즈 제작을 의뢰해왔다. 몇 개월 동안 정성을 다해 작업했고, 그 결과 목돈도 손에 쥘 수 있었다. 남부시장 청년몰의 작은 공간에서 나는 끊임없이 그림을 그리고, 기회를 잡아 나갔다.
하지만 행복한 비명은 오래가지 않았다. 점차 청년몰의 방문객은 줄어가기 시작했다. 서울의 경리단길을 시작으로 전국적으로 유행한 ‘리단길’ 트렌드가 청년몰에도 영향을 미쳤다. 관광객과 젊은이들로 가득했던 공간에는 사람들의 발길이 점점 끊겨갔고, 전주 객사 인근의 깨끗하고 고급진 음식점과 샵들이 조성되기 시작하는 객리단길에 집중되기 시작했다. 설상가상으로, 코로나19 팬데믹이 터지면서 모든 것이 멈춰버렸다.
박성민 작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