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 4. 4. 오전 11시 22분, 대통령 윤석열이 헌정 사상 초유의 탄핵 사태로 파면됐다. 정치적 혼란의 소용돌이 한복판에서, 지난 3년 동안 전북이 어떤 대우를 받아왔는지 되돌아볼 필요가 있다. 지난 3년 동안 전북은 조용히, 그러나 뚜렷하게 후퇴하고 있었다. 잘 보이지 않는 통계 속에서 이 지역의 기회와 미래는 점점 사라지고 있었다. ‘균형발전’을 국정과제로 내세운 정부 아래서 벌어진 일이었다.
윤 정부는 ‘어디서나 살기 좋은 지방시대’를 표방했다. 하지만 전북에서 체감한건 ‘어디에도 속하지 못한 소외의 시대’였다. 겉으로는 지역 발전과 균형을 외쳤지만, 실제 국정 운영은 수도권과 특정 권역 중심으로 쏠렸다. 그 결과 전북은 예산, 사업, 정책 모두에서 점차 배제됐다.
지역 경제는 이미 경고음을 내고 있었다. 통계청에 따르면 2023년 전북의 지역내총생산(GRDP)은 전년 대비 0.2% 감소했다. 같은 기간 전국 평균은 1.4% 증가했다. 산업 재편 정책에서 전북이 사실상 배제된 결과다. 새만금 해상풍력, 전북 스마트팜 클러스터, 완주 국가첨단산단 조성 등 핵심 사업은 줄줄이 지연되거나 예비타당성 조사조차 통과하지 못했다. 2024년에도 관련 국비 예산은 기대에 크게 미치지 못했다. 이는 단순한 숫자의 문제가 아니다. 국책사업이 좌초되고 전략 투자가 빠진다는 것은, 미래 산업 생태계에서 지역이 배제된다는 뜻이다. 전북이 성장할 수 있는 경로 자체가 차단된 상태다.
청년의 삶은 더욱 팍팍해졌다. 2023년 2분기 기준 전북 청년 실업률은 11.4%에 달했다. 전국 평균 6.6%보다 훨씬 높았다. 지역에서 일자리를 찾지 못한 청년들은 결국 떠났다. 2024년 기준 전북은 전입보다 전출이 6천 명 이상 많았고, 그중 70% 이상이 10-30대였다. 전주시의 순 유출 인구만 해도 7,500명을 넘었다. 이탈은 선택이 아니라 생존이었다. 청년의 이탈은 곧 소비 감소, 세수 축소, 공동체 약화로 이어진다. 지역 대학은 정원 미달로 고사 위기에 처했고, 자영업자들은 줄어든 손님 앞에 무릎 끓었다. 버스 노선은 사라지고, 산부인과는 줄어들고 있다. 전북이 겪고 있는 후퇴는 경제 지표에만 머무르지 않는다. 일상과 생활 속 모든 지점에 조용히 스며들고 있다.
정책적 배제로 인한 ‘후퇴 비용’을 정확히 계산하긴 어렵지만, 회귀분석과 통계 모델링을 적용하면 GRDP 성장 저하, 청년 실업, 인구 유출 등으로 인해 전북이 지난 3년간 잃은 기회비용은 연간 수천억 원에 이를 수 있다는 추정이 가능하다. 이는 단지 예산 몇 줄이 빠졌다는 문제가 아니다. 전북이 미래로 나아갈 수 있었던 경로 자체가 사라졌다는 점에서 더 심각하다. 기업 유치는 늦어지고, 투자자는 관심을 끊고, 정부 지원은 공모사업조차 탈락을 반복했다. 지방은 자생을 강요당하고, 경쟁은 수도권 중심으로 설계됐다.
더 심각한 건, 이 손실이 매년 반복되고 있다는 사실이다. 국가가 특정 지역을 선택하면, 선택받지 못한 지역은 결국 국가를 포기하게 된다. 전북은 지금, 정책에서 밀려나고 있다. 그리고 그렇게 대한민국의 미래에서도 멀어지고 있다. 진정한 균형발전을 말하려면, 구호가 아닌 재정과 제도의 배분에서부터 출발했어야 했다. 지금 전북에서 벌어지고 있는 건 단순한 정체가 아니다. 조용한 후퇴이며, 구조적 포기다.
이제는 달라져야 한다. 차기 정부는 이 질문에 반드시 답해야 한다. 수천억 원의 예산보다 더 무서운 것은, 전북이 대한민국의 미래 지도에서 지워지고 있다는 사실을.
지용승 우석대 경영학부 교수·ESG국가정책연구소 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