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엄사 각황전 모퉁이가 붉다 붉다 검네요. 매화는 설중매(雪中梅)와 납월매(臘月梅)를 꼽는다지요. 무심한 듯 가지 끝에 몇 송이 피웠다 사그라들어 다시 또 피워 올리는, 눈 속에 피고 싯다르타가 깨달음 얻은 섣달에 피는 꽃이 으뜸이라지요. 순천 금둔사 홍매(紅梅)가 널리 자자하다지만 구례 화엄사 흑매(黑梅)도 소문이 높지요. 차례 매기기 좋아하는 이들이 꼽은 4대 매화는 오죽헌 율곡매, 화엄사 화엄매, 선암사 선암매, 백양사 고불매라지만 어디 빈집 빈 뜰의 매화라고 그 뜻이 없을까요.
열매를 얻으려면 매실 꽃이요, 꽃을 보려면 매화랍니다. 사군자 중 하나로 은둔 선비들이 많이 가꾸었다지요. 엄동에 꽃피기만을 시를 지으며 책을 읽으며 기다렸겠지요. 홍매, 백매, 흑매, 청매, 비매, 오색매, 능수홍매, 운용매……, 매화 향기는 귀로 듣는다고 하던가요? 코를 찌르는 향기 아니라 은근히, 아득히 퍼지는 암향(暗香)이랍니다. 코로 맡는 게 아니라 귀로 듣는 문향(聞香)이랍니다. 그러니 번잡한 저자가 아닌 천년고찰이나 선비 고택에 서 있는 것이겠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