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는 형식과 실험, 이야기가 모두 녹아있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형식과 실험적인 시도, 이야기가 혼연일체가 되어서 관객들이 완전히 빠져들어야 합니다. 그리고 이후에 학자들이나 평론가들이 (영화를) 분석했을 때 형식을 논하고, 실험적인 시도들에 대한 새로운 발견을 읽어내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3일 오전 전주 중부비전센터에서 열린 제26회 전주국제영화제 ‘배창호 특별전 : 대중성과 실험성 사이에서’ 기자회견에 참석한 배창호 감독은 ‘영화를 만들면서 대중성과 실험성 사이에서 어떤 관점에 더 비중을 두느냐'란 질문에 대해 이렇게 대답했다.
올해 전주국제영화제에서 마련한 배창호 특별전 : 대중성과 실험성 사이에서는 1980년대와 1990년대 한국영화 산업의 대중스타로 군림하면서도 다채로운 영화적 실험을 시도했던 배창호 감독을 주목하는 행사이다. 배창호 감독의 영화와 삶에 관한 다큐멘터리 <배창호의 클로즈업>을 월드프리미어로 공개하고 디지털로 복원한 장편영화 <그해 겨울은 따뜻했네>(1984) <황진이>(1986) <꿈>(1990) 등 3편을 상영한다.
문석 프로그래머는 “배창호 감독님은 1980년대 한국의 스티븐 스필버그라고 불리며 총 18편의 장편영화를 제작했다”며 “고래사냥, 깊고 푸른 밤이라는 영화를 만들었고 1986년 영화 황진이를 기점으로 영화를 통한 배창호만의 예술세계를 보여줬다. 대중영화 시스템 안에서 과감한 실험 정신을 투여해 자신의 길을 스스로 열어간 배창호 감독은 한국영화계에서는 흔치 않은 아이콘"이라며 특별전 개최 배경을 설명했다.
배창호 감독은 “영화 황진이, 그해 겨울은 따뜻했네, 꿈까지 영화 세편 모두를 디지털로 리마스터링(remastering)해서 보여주는 게 전주국제영화제가 처음”이라며 “필름은 필름대로의 장점이 있지만 디지털이라는 기술을 입혔더니 제가 보지 못했던 모습까지도 캐치할 수 있어서 매우 흡족하다"고 말했다.
특히 이번 특별전은 배창호 감독의 영화 인생 40년을 돌아보는 다큐멘터리 <배창호의 클로즈업>이 처음으로 공개돼 주목을 받았다. 영화는 감독이 연출한 18편의 영화에 등장하는 공간을 따라가며 제작 관련 비화, 감독의 예술관을 서술하는 에세이 형식의 다큐멘터리다. 감독은 이번 다큐를 제작하면서 감사했던 분들이 많이 떠올랐다고 회고했다.
그는 “영화 클로즈업 타이틀에도 감사의 말씀을 드린다는 문구를 삽입했는데 18편의 영화를 만드는 동안 가장 감사했던 분은 바로 최인호 작가이다"며 "저에게 작품의 스토리를 제공해줬고 (영화의) 대중성을 갖출 수 있도록 도움을 주셨다. 그분의 스토리가 없었다면 80년대 제작한 영화들은 나오지 못했을 것이다. 최인호 작가는 대단한 소설가이지만 엄청난 스토리텔러”라며 깊은 고마움을 드러냈다.
이날 감독은 자본이 잠식해버린 영화산업의 현실과 이러한 산업에 순응해야 하는 영화계 후배들에 대한 애정 어린 조언을 남겼다.
후배 영화인들에게 안타까움을 느끼고 있지만 어떤 조언을 해줘야할지 모르겠다던 그는 “(영화에는) 몇 백억의 자본이 투자되기 때문에 자신의 영화 세계를 펼칠 수 없을 것이다. (그렇지만) 생명력 있는 영화를 찍으려면 창작자가 직접 경험하고 가슴으로 이해한 것들을 찍어야 한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