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깊은 슬픔과 함께 우리 동지 페페 무히카의 서거를 알린다.” 야만두 오르시 우루과이 대통령이 지난 13일, 소셜미디어 엑스를 통해 ‘너무나 그리울 것'이라는 '오랜 친구’와의 이별을 알렸다. ‘세상에서 가장 가난한 대통령’으로 불린 호세 알베르토 무히카 코르다노 전 대통령(1935~2025)의 별세 소식이었다.
무히카 대통령은 우루과이 국민뿐 아니라 전 세계 사람들로부터 존경과 신망을 받았던 정치인이다. 특히 두 번씩이나 대통령을 탄핵한 불운한(?) 역사를 가진 우리나라 국민에게 청빈한 리더십의 표상이었던 무히카 대통령은 신망과 부러움의 대상이었다.
고등학교 졸업장도 없는 도시 게릴라 전사에서 대통령이 되기까지 그의 삶은 특별했다.
가난한 어린 시절을 보냈던 무히카는 1960~70년대, 도시 게릴라 단체 ‘투파마로스(국민해방운동)’ 대원으로 반정부 활동을 하며 군사독재에 맞섰다. 13년 동안 독방에 갇히는 등 숱한 고초를 당했던 그는 1985년 국제사면위원회(앰네스티)의 도움을 받아 석방된 이후 좌파 정치조직에 들어가면서 정치 활동을 시작했다. 1994년, 도시 게릴라로는 처음 하원의원이 된 그는 상원의원과 농축수산부 장관을 거치면서 진보적 정치인으로 성장했다. 대통령이 된 것은 2010년이다. 좌파 연합 후보로 우루과이 40대 대통령에 선출됐던 당시 그의 재산은 몬테비데오 변두리에 있던 오래된 농장과 20년이나 지난 낡은 자동차 한 대가 전부였다.
그는 늘 쉬운 말로 대중들을 설득했고, 그 과정에서 남긴 어록들은 세상을 일깨웠다. 2012년 6월 브라질 리우데자네이루에서 열린 유엔의 지속가능발전 정상회의에서는 세계를 지배하고 있는 자본주의의 문제점을 통렬하게 비판한 연설로 세계 언론의 뜨거운 반향을 불렀다.
대통령이 된 후에도 그의 삶은 달라지지 않았다. 대통령궁을 노숙자들에게 개방하고 수행원도 없이 자신의 오래된 농장에서 출퇴근하며 일했다. 월급의 90%를 기부했던 그가 가장 적극적으로 추진했던 정책은 가난한 국민을 위한 부의 재분배였다. 그는 현실적이고 실용적인 철학으로 진보적 정책을 주도하며 우루과이의 안정과 성장을 이끌면서도 동성결혼을 합법화하고 세계 최초로 마리화나 흡연을 합법화하는 등 진보적 가치를 지켰다.
‘나는 조금 더 떳떳한, 조금 더 부끄럽지 않은 나라를 갖고 싶다’던 무히카를 국민은 ‘페페(할아버지)’라고 부르며 존경과 사랑을 보냈다. 2015년, 그가 퇴임할 때 그들이 보낸 지지율도 당선 때(52%) 보다 더 높은 65%였다.
대통령 탄핵이 가져온 조기 대선이 13일 남았다. 국민을 기만하지 않는 대통령, 부끄럽지 않은 대통령을 가질 수 있는 기회가 우리 앞에 놓여 있다./김은정 선임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