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징어게임’, ‘폭싹 속았수다’ 등 인기작품의 촬영지로 유명한 전주시가 글로벌 영화영상산업 도시로의 전환을 선언했다. 시는 영화영상산업 거점별 특화구역을 연결하는 펜타곤 벨트를 중심으로, 기획부터 제작, 후반까지 전 과정을 지역 안에서 완결할 수 있는 구조를 구축하기로 했다. 여기에 글로벌 스튜디오 유치, 독립영화 생태계 강화, 인재 양성 등 핵심 과제를 차근차근 실행하고 있다. 전주의 새로운 미래 먹거리가 될 영화영상산업의 비전과 실행 전략, 기대 효과에 대해 살펴본다.
촬영지에서 산업도시로…전주가 바꾸는 영화의 지도
전주는 1957년 한국 최초의 컬러영화 '선화공주'가 촬영된 이래, ‘기생충’을 비롯한 수많은 작품이 만들어진 도시다. 올해 26회를 맞이한 전주국제영화제는 독립·대안영화의 허브로 자리 잡았고, 아시아권에서 주목받는 영화제로 성장해왔다. 그러나 이 같은 명성과 인프라에도 불구하고, 전주는 그동안 주로 ‘로케이션 촬영지’로 기능해 왔다.
현재 세계 영상산업은 급속히 변화하고 있다. 글로벌 OTT의 확산, K-콘텐츠 수요 증가 등이 촉진되면서 영상산업은 ‘촬영 중심’에서 ‘기획·제작·투자까지 이어지는 종합 산업’으로 재편되고 있다.
전주시는 이런 변화에 대응하고자 지난해 10월 ‘글로벌 영화영상산업 수도’를 도시 비전으로 제시했다. 이를 위해 오는 2034년까지 총 5750억 원이 투입되며, 4대 전략, 10대 추진과제로 구성됐다. 비전의 중심엔 전주권 5개 거점별로 기능별 특화단지를 조성해 연결하는 ‘펜타곤 벨트’가 있다. 벨트의 주요 거점은 상림동, 고사동 영화의 거리, 만성동, 전주역, 전주 북부권이다.
우선 상림동에는 미래 규제에 선제적으로 대응하는 탄소중립 영화영상 촬영단지가 조성된다. 고사동 영화의 거리는 전주형 영화·관광산업 융복합 문화단지로 거듭나고, 만성동은 방송·미디어 영상콘텐츠 발굴의 중심지가 된다. 전주역 일원은 VR, XR 등 실감미디어를 활용한 콘텐츠 다양성을 확보하게 되고, 북부권에는 글로벌 블록버스터 촬영이 가능한 쿠뮤필름 아시아 제2 스튜디오가 들어설 예정이다.
이 같은 구상은 영화 제작의 전 과정을 전주 안에서 처리할 수 있도록 하는 게 목적이다. 기획, 제작, 후반, 소비가 지역 내에서 유기적으로 연결되는 구조다. 기존에는 수도권에서 기획된 영화가 전주에서 촬영만 이뤄지고, 대부분의 후반작업은 다시 서울로 이동했다. 시는 이 구조를 바꾸기로 했다. 전 과정이 한 도시에 밀집되면 콘텐츠 제작의 효율성과 지역경제 효과 모두 높일 수 있기 때문이다.
촬영부터 후반, 인재양성까지 기능별 기반시설 구축
시가 추진 중인 영화영상산업 정책의 핵심은 지역 안에서 영화의 기획부터 상영까지 전 과정을 처리할 수 있는 기반을 만드는 것이다. 이를 위해 촬영 인프라, 후반제작 시스템, 독립영화 생태계, 기술인력 양성, 콘텐츠 산업화 등 영상산업의 각 기능을 지역 내에서 실현하는 것이 기본 방향이다.
먼저 촬영 인프라 구축을 위해 상림동 전주영화종합촬영소 일원에 탄소중립 영화영상 촬영단지가 조성된다. 면적은 약 10만㎡이며, 주요 시설로는 영화영상 실증지원센터, 영상지식산업센터, 버추얼 스튜디오, 특성화 세트 등이 계획돼 있다. 시는 탄소중립 미래 규제에 선제 대응한 영화 제작 환경을 만들고 글로벌 OTT 콘텐츠 촬영이 가능한 민간스튜디오 입주 부지도 조성해 기존 촬영소와 연계할 계획이다.
전주 북부권에는 쿠뮤필름 아시아 제2 스튜디오를 유치한다. 뉴질랜드에 본사를 두고 ‘아바타’, ‘뮬란’ 등 대형 영화 촬영 경험이 있는 쿠뮤필름 스튜디오는 지난해 전주에 한국법인을 설립했고, 올해 1월부터 전주영화종합촬영소 위탁운영을 시작했다. 시는 블록버스터 영화 촬영이 가능한 대규모 스튜디오를 조성하고 쿠뮤필름의 글로벌 네트워크를 활용해 해외 영화 촬영을 적극적으로 유치할 방침이다.
후반제작 기반도 함께 강화된다. 실증지원센터는 2026년 착공을 목표로 하며, 영상 콘텐츠 기술 검토와 R&D, 디지털 테스트베드 기능을 담당하게 된다. 동시에 한국형 영화 효과음원 사운드 댐이 2026년까지 구축돼 음향 후반작업 자립도를 높인다. 전주의 주요 촬영지를 디지털 자산으로 변환하는 ‘공공 어셋 라이브러리’ 구축도 진행 중이며, 이는 버추얼 스튜디오 촬영에 활용될 예정이다.
독립영화 생태계 조성도 중요한 축이다. 고사동 영화의 거리에는 총사업비 720억 원이 투입되는 ‘전주 독립영화의 집’이 건립 중이다. 이 시설은 독립영화 전용 상영관 3개관, 색보정·음향마스터링 설비, 야외광장, 라키비움(기록·도서·전시 복합공간) 등으로 구성된다. 완공 목표는 2026년이다. 제작부터 상영까지 전 과정을 지원할 수 있는 이 시설은 독립예술영화 중심 도시로서 전주의 위상을 뒷받침할 거점 역할을 하게 된다.
전문인력 양성을 위한 교육기관도 함께 조성된다. 전주영화제작소 부지에 추진 중인 한국영화기술 아카데미는 실습과 현장 중심 교육에 특화된 기술교육기관이다. 총사업비는 400억 원이며, 첨단 영상기술과 후반제작 전문 인력 양성을 목표로 하고 있다.
콘텐츠 산업화 기반도 함께 마련되고 있다. 시는 한옥, 한복, 한지 등 전주의 자산을 소재로 한 영상기술 콘텐츠 IP를 개발하고, 해당 콘텐츠는 VR·XR 등 실감형 미디어로 제작돼 영화 이외의 영역에서도 활용될 예정이다.
영화영상이 바꾸는 전주의 산업지도
전주시가 추진 중인 영화영상산업 정책은 지역 경제 전반에 큰 영향을 미칠 것으로 예상된다. 시는 영화영상산업 비전 실현으로 2034년까지 직·간접 일자리 7000개 창출과 200개 기업 유치, 연간 지역매출 2000억 원을 달성할 수 있을 것으로 전망했다. 기반시설 구축과 기업 유치, 인력 양성, 콘텐츠 제작 등이 계획대로 작동하면 충분히 가능한 수치라는 설명이다.
제작 기반이 지역에 자리 잡으면 배우와 제작진, 후반작업 인력까지 전주에 체류하게 된다. 이를 통해 숙박, 식음료, 교통, 세트, 소품, 의상 등 다양한 분야에서 지역 경제에 직접적인 지출이 발생한다. 쿠뮤필름 스튜디오가 전주에 스튜디오를 운영하기 시작하면, 외국 영화 한 편 촬영으로만 수백 명의 고용과 수십억 원의 직접 지출이 발생할 수 있다. 부산에서 ‘블랙팬서’를 촬영하면서 9일 동안 직접 지출이 40억 원에 달하고, ‘호빗시리즈’를 찍은 뉴질랜드 호빗마을 관광객이 연간 50만 명에 달한다는 사실에서도 이런 효과를 확인할 수 있다.
전주는 이미 여러 콘텐츠 제작지로 주목받고 있다. 넷플릭스 드라마 ‘오징어게임’, ‘폭싹 속았수다’, 영화 ‘기생충’ 등이 전주에서 촬영됐으며, 전체 분량의 80% 이상을 전주에서 촬영한 드라마 ‘당신의 맛’도 최근 뜨거운 반응을 얻고 있다. 이는 도시 이미지 제고와 관광객 유입으로 이어지고 있다. 여기에 후반작업까지 전주에서 이뤄진다면 더 큰 시너지 효과를 기대할 수 있다.
또 교육 기반과 제작 기반, 유통 시스템이 연결되면 창작자들은 전주에 안정적으로 정착할 수 있게 된다. 인재가 모이고, 기술이 쌓이고, 산업이 형성되는 선순환 구조는 장기적인 도시 성장의 기반으로 이어진다.
현재 전주의 영화영상 산업은 변화의 문턱에 들어섰다. 전통과 문화유산, 독립영화제의 기반 위에 첨단기술과 원스톱 지원 체계를 덧붙이고 있다. 콘텐츠의 기획부터 유통까지 지역 안에서 이뤄질 때, 영화는 산업이 되고 지역의 지속 가능한 성장 기반이 된다.
우범기 전주시장 “영화산업으로 전주의 100년 미래 이끌겠다”
“전주는 이제 영화 촬영지에 머무르지 않고, 콘텐츠가 처음부터 끝까지 만들어지는 제작 도시로 나아갑니다. 앞으로 전주에서 기획부터 후반작업, 상영까지 영화 제작의 모든 단계가 가능해질 것입니다.”
우범기 전주시장은 전주가 영화영상산업의 중심지로 도약하기 위해 전주 곳곳을 기능별로 특화한 ‘펜타곤 벨트’ 전략을 추진 중이라고 말했다. 이를 통해 제작 인프라, 인재 양성, 상영 환경을 유기적으로 연결하고, 산업 전 과정을 지역 안에서 완결하는 선순환 생태계를 구축하겠다는 것이다.
그는 “전주의 역사와 예술성, 그리고 독립영화에 대한 정체성이 쿠뮤필름 같은 글로벌 기업을 끌어들인 가장 큰 이유”라며 “쿠뮤 아시아 제2 스튜디오가 들어서면 블록버스터 제작 환경이 전주에 자리 잡게 되고, 수많은 창작자와 배우들이 장기간 머무는 도시가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우 시장은 “전주가 콘텐츠로 먹고사는 도시, 콘텐츠로 일자리를 만드는 도시가 될 수 있도록 구체적인 실행에 속도를 내겠다”면서 “제2의 오징어게임, 제2의 기생충이 전주의 경제가 되고 문화가 되도록 강한 영상산업 생태계를 만들어 내겠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