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북일보 신춘문예 작가들이 추천하는 이 책] 기명숙 작가-정양 '나그네는 지금도'

'나그네는 지금도' 표지/사진=교보문고

낭떠러지 같은 이별을 하고 돌아와 이 글을 쓴다. 문학의 숲, 그 박질의 땅을 뚫고 뿌리내린 커다란 나무이며 평생의 스승이셨던 정양 시인(1942~2025.5.31.)이 영면에 드셨다. 

 강의실에서 처음 선생님의 시를 낭송했을 때, 벚꽃이 흐드러지게 피던 봄이었다. 그때 나에게 자의식이란 게 있었던가. 노년의 시인이 나지막한 소리로 시론을 펼칠 때 문학판 사이를 겉돌던 나는 검은 휘장처럼 무거웠으며 자의식은 빈약했다. 부조화의 세계였으나 시간의 균열과 주름 사이 늘 선생님의 존재는 확고부동했다. 공전하는 계절을 뒤로 총총히 사라진 선생님을 애도하며 수많은 저서 중 첫 번째 시선집 『나그네는 지금도』(2006,생각의 나무)를 다시 읽는다. 시인이 직접 고른 시선집은 연대기에 따라 엮어졌다. 1980년에 출간한 첫시집 『까마귀떼』로부터 『길을 잃고 싶을 때가 많았다』 등 여섯 권의 시집에서 총 90편을 추렸으니 해학과 초절정의 언어미학에 편편이 충격과 경이감이 사무쳤던 기억이 생생하다.

 미욱한 제자가 자칫 스승의 그림자라도 밟을까 두렵다. 하여 시선집에 대해 문단의 정통한 이들의 평가로 대신해야겠다. “언어적인 기교와 관념의 교감 없이 독자를 감동시킨다”라고 오세영은 평하였고 오랜 벗이었던 오하근은 “이 시대를 사는 방법과 진리를 탐구하는 방법을 제시”했다고 하였으며 박태건은 “절실한 감성과 소박한 언어 의식이 감동의 근거가 된다. 즉 직선적이고 솔직한 언어로 독자와 소통한다는 것이다. 순수한 슬픔, 그것은 개인적 차원이 아닌 큰 슬픔에서 기인한 것이기에 어렵고 현학적인 말장난이 들어갈 겨를이 없다. 심장에서 곧바로 튀어나오는, 슬픔의 최상급에서 느껴지는 극한의 아름다움을 갖는다”라고 정의했다. 

 문학의 미적 체험과 별도로 선생님과의 정서적 교류가 압도적이었던 나는 해학의 정신을 품격있게 풀어내셨던 당시를 떠올리며 새삼 곡진한 슬픔에 잠긴다. 정량화할 수 없는 그리움의 밀도를 가장 가까이 지켜봤던 김병용 소설가의 말로 갈음하고자 한다.

 “정양 시인이라는 가치중립적인 호칭을 사용할 수 없는, 정양 선생이 아니었다면 최소한 술자리의 삼 분의 일쯤은 소집되지 않았거나, 미국이나 총칼로 집권한 군인들을 덜 미워했을지도 모른다. 육회나 바지락죽의 깊은 맛도 몰랐을 것이고 이병천 형이 수도 없이 막걸리값을 치르는 일도 없었을 것이다. 늘 바쁜 안도현 형이 집에 들르지 않고 ‘새벽강’으로 달려오는 일도, 정양 선생이 안 계셨다면 정양 선생이 아니었다면...”.

 선생님은 언젠가 나와의 인터뷰에서 “한때는 시 쓰는 걸 그만두고 암실에 처박혀 지낸 적 있어요. 정치적으로 암울한 시기였는데 작고 보잘것없는 것들이 안쓰러워서 그랬던 것 같아요. 카메라를 둘러메고 참 많이도 헤매고 다녔어요. 인간의 불행과 고통을 사진 속에 담아서 그 삶의 음영들을 재현하는 일에 심취했었다고 할까요” 

 또 선생님은 “세상이 많이 변했으니 문학적 상상력도 달라지는 건 당연한 일이지요. 그래도 시인은 문제의식으로 세상을 바라봐야 하고 우리 사회를 개선하는 데 힘을 보탤 수 있어야 한다”라고 하셨다. 인터뷰가 끝날 즈음 “내가 늙어가는 것은 자연의 섭리니 아무렇지 않은데 제자들도 나처럼 늙어가는 것이 아깝고 서글퍼요” 

 이제 더는 선생님께 늙어버린 제자의 모습을 보여드리지 않아도 되니 다행이다. 그러나 자연의 섭리 속으로 들어간 선생님이 벌써 그리워 나는 한동안 환상통을 앓을 게 분명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길을 잃고 싶을 때가 많았다』는 것을 알면서도 묵묵히 우리는 선생님이 걸었던 그 길을 갈 것이다. 본디 길이란 우회와 잃음을 본질로 하지 않겠는가. 늘 그랬듯이 정양 선생님은 고독의 유배지와 다름없는 구불구불한 이 길의 배경이 돼 주실 것이라 믿는다.

기명숙 작가는

전남 목포 출신이며, 2006년 전북일보 신춘문예로 등단했다. 시집으로는 <몸 밖의 안부를 묻다>가 있다. 현재 강의와 집필에 몰두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