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머리 법칙'이라는게 있다. 러시아에서 지도자가 되는 사람은 한 대(代)를 걸러 반드시 대머리인 사람이 된다는 거다. 1917년 대머리였던 레닌이 볼셰비키 혁명으로 최고 지도자로 등극한 이래 단 한번의 예외도 없었다. 아닌게 아니라 레닌의 뒤를 이은 스탈린은 머리숱이 엄청 많았는데 다음번 흐루쇼프는 대머리였고 뒤이은 브레즈네프는 머리숱이 많았다. 이후에도 대머리로 유명한 고르바초프와 그 반대인 옐친, 그리고 또 대머리 푸틴까지 우연치고는 참으로 묘하다.
우리나라도 대머리 법칙 비슷한게 있다. 크게보면 호남권을 기반으로 한 민주당과 영남권을 토대로 한 국민의힘이 짧게는 3년, 길어봐야 10년간 집권하고 바통을 넘겼다. 87년 직선제 개헌 이후 국민들은 특정 정당이나 특정 세력의 발호를 용인하지 않았다. YS, DJ같은 거목조차도 임기초 선풍적인 인기몰이를 했으나 퇴임은 초라했다. 광복이후 줄곧 야당이었고 찬밥신세였던 전북은 지난 1998년 김대중 정권이 들어서면서 전혀 다른 세상에서 살 것으로 기대했으나, 냉엄한 현실을 깨닫는데는 많은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이명박, 박근혜, 윤석열 정권때의 차별과 멸시는 구태여 거론할 필요도 없다. 문제는 노무현, 문재인 정권을 거치면서도 보수정권 때보다 조금 나은 정도였지 실제 전북이라고 하는 함선의 규모나 성능은 별반 차이가 없었다. 중앙정부에서 낡고 성능이 뒤떨어진 배를 최신식으로 교체해주지 않았기 때문이다. 더욱이 전북호를 몰아왔던 조타수나 항해사 등의 열정과 지혜 또한 크게 부족했던게 엄연한 현실이다. 그래서 지금 전북호에 타고 있는 승객들의 처지가 이렇게 곤궁한게 아니던가. 이제 새로운 시대가 열렸다. 집권당이 바뀌고 대통령 한명 교체됐다고 천지개벽이 될 일은 없겠으나 어디에 가서 하소연 할곳조차 없었던 전북으로서는 새로운 희망을 갖기에 충분하다. 새 정부는 대한민국의 진로를 정해 선진국으로 나가야 한다. 그러하기에 지역과 관련된 부분은 사소한 것일수도 있고, 경우에 따라 전체의 이익과 부분의 이익이 충돌할 수도 있다. 하지만 지역민들은 국민으로서의 긍지와 삶의 질 향상을 기대하는 한편, 도민으로서 뭔가 다른 기대도 하고 있다. 인적자원, 물적자원의 배분이 보편타당한 논리에 근거하기를 바라는 것이다. 과거 전북인들이 집권당 대표나 총리, 대통령 비서실장, 국회의장이나 장관 등을 지낼때 큰 기대를 했으나 사실 지역발전엔 별다른 도움이 되지 못했다. 그들 개인적으로 복지와 영광이 있었는지는 몰라도 말이다. 이처럼 쓰라린 경험이 있더라도 전북인들은 뭔가 돌파구를 찾고 싶어한다. 이재명 대통령은 지난 5일 당 대표 시절 함께 했던 1·2기 지도부와 한남동 관저에서 가진 만찬에서 의미있는 발언 하나를 했다고 한다. 당시 자리에 참석한 전현희 최고위원의 전언에 따르면 “영남이나 강원처럼 약간 어려운 지역의 표심이 아무래도 이 대통령에게 그렇게 좋게 나오지 않았다. 이 부분에 대해 ‘조금 더 신경 써야 한다. 그런 지역을 좀 더 배려하고 앞으로 통합된 나라를 만들면 좋겠다’는 (이 대통령의) 말씀이 있었다”고 했다. 큰틀에서 통합과 균형발전을 향한 원론적인 발언이기는 하지만, 지역민들은 굳이 언급을 하지 않았더라도 새 정부가 전북에 대해 과거와는 전혀 다른 모습을 보여주길 기대하고 있다. 그게 오늘날 전북지역 민심이다. 단순히 전북 출신 장관이나 수석 한두명 발탁한다고 지역 민심을 얻는게 아니다. 위병기 수석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