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외상후 스트레스 장애 ‘소방공무원 심리지원' 국가가 나서야 한다

윤명숙 전북대 소방공무원 심리지원센터 사업단장·전북대 대외·취업 부총장, 사회복지학과 교수

‘위험한 곳엔 언제나 소방관이 있다.’ 익숙하지만 결코 가볍지 않은 말이다. 화재, 구조, 구급, 재난 대응까지 소방공무원들은 국민의 생명과 안전을 지키는 최전선에 서 있다. 그러나 정작 그들의 마음은 누가 지키고 있는가 ?. 

구조자가 경험하는 심리적 고통은 오랫동안 제도의 사각지대에 방치되어 왔다. 실제로 여러 연구에 따르면 소방공무원은 일반 국민보다 우울 위험이 약 3배,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PTSD) 위험은 5배 이상 높게 경험하는 것으로 나타난다. 2023년 소방청 발표에 따르면, 현직 소방관의 10명 중 3명이 외상 후 스트레스 수준의 심리적 고통을 경험하고 있으며, 자살을 생각한 적이 있다는 응답도 무려 16.9%에 달했다. 이러한 지표들은 소방공무원들의 단순한 일탈적 사례가 아니라, 조직 전반에 걸친 구조적 문제임을 시사한다.

그러나 현재 소방공무원들에 대한 심리지원 체계는 이러한 엄혹한 현실을 뒷받침하지 못하고 있다. 심리지원 프로그램에 대한 접근성 부족과 신뢰 저하로 인해 실질적 개입이 제대로 이루어지지 못했다. 심리지원 상담이 있다는 것을 몰라 신청하지 못하거나, 상담의 효과에 의문을 품고 자발적으로 참여하지 않는 경우도 많다.

결국 이는 제도의 문제이지 개인의 태만이 아니다. 문제의 본질은, 소방공무원의 고통이 단순히 ‘적응의 문제’가 아닌 ‘직무로 인한 누적 트라우마’라는 데 있다. 반복적으로 마주하는 사고 현장, 심정지 현장, 영아 사망, 동료의 순직은 단발성 스트레스가 아니라 시간이 지날수록 축적되는 심리적 외상이다. 이러한 트라우마는 개인의 의지로 극복될 수 있는 차원을 넘어선다. 트라우마가 방치될 경우 집중력 저하, 판단 오류, 감정 마비 등 실제 구조·구급 현장에서 업무 리스크로 직결될 수 있다. 심리지원이 곧 ‘국민의 생명 안전’과 직결된 문제인 이유다.

지금까지 심리지원은 대개 사후 개입 중심, 일회성 상담 중심에 머물렀다. 그러나 심리회복은 위기 이후의 치료에 그쳐서는 안 되며, 사전 예방과 지속적 관리를 포함하는 전 생애적 접근이 필요하다. 특히 전북과 같은 지역에서는 조직문화 개선, 신뢰 회복을 위한 공적 지원, 그리고 전문 심리지원 인력의 상시 배치가 시급하다. 정기적인 심리평가와 트라우마 모니터링 체계, 익명성과 신뢰를 보장하는 상담 시스템이 반드시 필요하다. 무엇보다 ‘마음의 상처’가 개인의 나약함이 아니라 국가가 책임져야 할 구조적 위험이라는 인식 전환이 선행돼야 한다. 심리적 고통을 호소하는 이들이 조직에서 불이익을 우려하거나, 동료의 시선을 의식해 침묵하는 문화를 그대로 둔다면, 그 피해는 시민들에게까지 확산될 수밖에 없다.

국가와 지방정부는 이제라도 소방공무원 심리지원사업을 단기 시범이 아닌 상설 제도로 전환해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소방청 차원의 통합 심리지원센터 설치, 심리회복 프로그램의 표준화 및 지역별 특화 모델 개발, 그리고 예산의 안정적 확보가 뒷받침되어야 한다. 전북 또한 이제는 의심과 불신의 역사를 넘어, ‘심리지원도 구조의 일부’라는 인식 전환이 절실하다. 우리는 소방공무원에게 ‘가장 위험한 곳으로 가라’고 명령할 자격이 있는가. 그 질문 앞에서, 이제는 ‘그들이 무사히 돌아올 수 있는 길’을 제도적으로 마련해야 한다. 심리적 회복 없이 구조는 없다. 국민을 지켜온 이들의 마음을 지키는 일, 이제는 국가의 차례다.

윤명숙 전북대 소방공무원 심리지원센터 사업단장·전북대 대외·취업 부총장, 사회복지학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