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읍은 한국 종교사상사에 있어 독보적인 곳이다. 동학이 실현된 공간이었고 강증산과 도교의 권극중을 배출한 지역이기 때문이다. 불교와 유교가 오랫동안 지배해 온 한반도에서 19세기 말에 새로운 종교운동이 태동했다. 동학과 증산교, 원불교 등이 그것이다. 동학은 수운(水雲) 최제우(1824-1864)가 1860년 경주 용담정에서 마음이 섬뜩해지고 몸이 떨리는 가운데 허공에서 “두려워 말라. 세상 사람들이 나를 상제(上帝)라 하거늘 너는 상제를 알지 못하느냐”라는 소리가 들리는 신비 체험을 했다. 한국 종교사에서 하느님을 뵙고 문답을 나눈 최초의 사건이다. 이로부터 천주교 등 서학(西學)에 대항하는 동학이 비롯되었다. 그리고 이 동학이 사회개혁운동으로 확대된 것이 동학농민운동이다.
그러나 이 운동은 실패로 끝났고 다시 새로운 종교사상이 대두되었다. 그 주인공이 증산(甑山) 강일순(1871-1909)이다. 증산은 정읍시 덕천면 신월리(옛 고부군 우덕면 객망리)에서 태어났다. 이곳은 전봉준이 농민을 이끌고 봉기했던 말목장터와 4㎞, 첫 승리를 거둔 황토현과 1㎞ 떨어진 곳이다. 증산은 24세때 이곳에서 동학농민혁명을 접하자 첫 겨울을 맞으면 실패할 것이라 예견하고 사람들의 희생을 줄이기 위해 참여를 말렸다고 한다. 이어 증산은 당시 백성들의 고통과 참담한 현상을 보고 깊은 사상사적 고민에 빠졌다. 이러한 고민을 안고 완주군 구이면 모악산 대원사에 들어가 수도 끝에 득도에 이른다.
증산사상은 여러 각도에서 조명할 수 있지만 크게 우주의 실체를 밝힌 천하대순(天下大巡), 우주의 개조를 밝힌 천지공사(天地公事), 우주의 진화를 밝힌 후천개벽(後天開闢) 사상으로 요약할 수 있다. 또 해원(解寃)과 보은(報恩)이라는 종교적 인식도 자리한다. 이러한 사상은 여러 과정을 거쳐 보천교, 증산교, 대순진리회 등이 따르고 있다.
청하자(靑霞子) 권극중(權克中 1558-1653)은 정읍 고부에서 태어난 조선시대 도교(道敎)사상을 대표하는 인물이다. 한국 도교는 유교와 불교처럼 크게 세력을 떨치거나 교단 같은 종교조직을 갖진 않았다. 7세기 이후 중국의 영향을 크게 받았으나 환인·단군 등을 최고 신적 존재로 둔다. 비조는 최치원을 꼽고 조선시대 들어 김시습, 정렴으로 이어졌으며 권극중을 내단(內丹)사상의 대가로 친다. 권극중은 유불도 삼교 합일의 체계화된 내단사상을 수립하고자 노력했다. 마침 전북자치도가 2024년 증산의 탄생지를 ‘전북종교문화 유산 1호’로 지정했다. 또 이를 기념하는 전국학술대회가 전북대에서 열렸다. 이들 독창적인 종교사상이 더 연구되고 확산되었으면 한다.(조상진 논설고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