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시는 단순한 건축물의 집합체가 아니다. 그것은 인간의 삶과 시간, 기억, 공동체 문화를 담아내는 유기적이고 복합적인 공간이다. 건축사의 시선에서 보면 도시는 단지 구조물이 아닌, 사람과 사람 사이의 관계, 그들이 걸어온 시간, 감정과 움직임이 축적된 살아 있는 생명체와 같다. 도시의 정체성은 화려한 건축물보다 그 사이의 ‘틈’, 즉 골목, 보행로, 광장 같은 비건축적 공간에서 더 뚜렷하게 드러난다.
이러한 공간들은 사람들의 발걸음을 유도하고, 관계를 형성하며, 일상 속 기억을 쌓아가는 무대가 된다. 좋은 도시공간은 과거의 흔적을 지우는 것이 아니라, 그 위에 새로운 이야기를 덧입혀 ‘시간의 연속성’을 구현한다. 서울 익선동, 전주 한옥마을처럼 전통과 현대가 공존하는 공간이 사랑받는 이유도 바로 여기에 있다. 건축은 과거와 현재를 이어주는 매개체가 되어야 하며, 지역의 역사적 맥락을 반영하면서도 미래를 암시할 수 있어야 한다.
도시공간은 누구에게나 열려 있어야 한다. 접근 가능성과 포용성은 도시공간의 기본 조건이다. 그러나 현실에서는 상업화와 사유화로 인해 공공성이 점점 약화되고 있다. 이는 도시의 자율성과 다양성을 침식시키고, 사람들로 하여금 도시로부터 소외감을 느끼게 만드는 주요 원인이 된다. 이럴 때 건축사의 역할은 공간을 설계하는 데 그치지 않고, 공간이 담아야 할 사회적 책임과 정체성을 함께 고민하는 데 있다.
“이 공간은 누구를 위한 것인가”라는 물음은 도시설계의 본질적인 출발점이 되어야 한다. 기술과 자본의 논리가 공간을 빠르게 재편하는 시대일수록, 우리는 공간의 주체가 누구이며, 그 공간이 어떤 삶을 품고 있는지를 성찰해야 한다. 건축은 그 질문에 대한 해답을 담는 실천적 도구이며, 도시공간은 그 해답이 구체화되는 사회적 실험의 장이다.
결국, 도시공간은 단지 살아가는 장소가 아니라, 우리가 함께 만들어가며 소통하는 공간이어야 한다. 그것은 현재를 살아가는 우리의 정체성을 담고, 다음 세대에게는 새로운 의미를 전하는 유산이 되어야 한다. 건축은 그 공간에 생명과 이야기를 부여하는 언어이며, 도시공간은 그 언어가 현실이 되는 무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