엊그제 이재명 대통령이 서울ㆍ수도권보다 지방에 더 많은 인센티브를 주는 정책 기조를 유지하겠다는 뜻을 다시금 밝혔다. 서울 용산 대통령실에서 주재한 전국 시ㆍ도지사 간담회 자리였다. 이 대통령은 “수도권보다 지방에 더 인센티브를 지급하면 더 많은 지원의 효율성, 균형을 조금이라도 유지할 수 있다는 생각을 이번 정책으로 나름 실현해봤다”고 했다. 여기서 말하는 이번 정책은 알다시피 ‘민생회복 소비쿠폰’이다. 비수도권 주민에겐 3만 원을, 농어촌 인구감소지역 주민에겐 5만 원을 더 주기로 했다.
앞으로 국가 정책이나 예산 배분에서 이런 원칙을 강화해나가겠다는 뜻도 밝혔다. 불리한 이들에게 더 많은 힘을 실어주는 이른바 ‘어퍼머티브 액션’(적극적 우대조치)이다. 서울ㆍ수도권보다 여러모로 불리한 여건에 놓인 우리들에겐 반가운 일이다. 하지만 쓸 돈이 많아지는 만큼 앞으로 그 돈을 어떻게 잘 쓸 것인지도 더 깊이 생각해봐야 한다. 더불어 지금까지 어떻게 써왔는지도.
가령, 2022년 문재인 정부는 앞으로 10년 동안 해마다 1조 원에 달하는 ‘지방소멸대응기금’을 마련해 지방자치단체에 나눠주겠다고 했다. 10년이라는 긴 시간 동안 정부 기금을 나눠주겠다던 전에 없던 이 대담한 사업이 어느덧 올해로 4년째를 맞았다. 여러 평가들이 있지만, ‘또 건물 짓는 데만 쓴다’거나, ‘어디에 써야 할지 몰라 쌓여만 간다’거나, ‘문화ㆍ관광 분야에만 쓰다 보니 주민에게 돌아가는 몫이 적다’는 등 아직도 넘어야 할 산이 많다. 무엇보다 안타까운 건 ‘지방 재량으로 써야 하는데 그러질 못해 ‘공모사업’으로 변질돼 버렸다’는 나라살림연구소의 지적이다.
지역의 제법 규모 있는 공모사업들은 대개 서울의 덩치 큰 업체들 차지가 된 지 벌써 오래다. 지자체 담당자들이 보기에 몸집에서 밀리는 지역 업체들은 아무래도 믿음이 가지 않는다는 게 가장 큰 이유다. 서울 업체가 지역 업체나 사람들을 끼고 같이 들어오는 일도 있지만 대부분은 들러리만 서다 끝나고 만다. 그나마 지역에 도움이 되는 결과로만 이어진다면야 굳이 시비 걸 일도 아니지만, 지역도 모르고 딱히 애정도 있을 리 없는 서울 업체들이 짧은 시간 지역을 깊이 이해하고 지역에 어울리는 해법을 내올 순 없다. 최근 전주시와 군산시가 이름 짜한 서울의 ㄱ업체와 ㄷ업체에 잇따라 뒤통수를 맞아 논란이 일지 않았던가. 정말 그런 정도의 일을 할 만한 지역의 기획자와 업체들이 없었을까. 공들여 찾아보기나 했는지 궁금하다.
사람들의 발길이 끊기다시피 한 지방 중소도시와 농산어촌에 다시금 활기를 불어넣으려면 물론 돈이 필요하다. 하지만 그것보다 더 중요한 건 오랜 시간 애정을 가지고 그 일에 매달릴 의지와 역량을 갖춘 사람들이다. 당장 사람이 보이지 않는다고 서울만 쳐다봐서야 지역에 정말 필요한 지역 일꾼은 절대 길러질 수 없다.
문형배 전 헌법재판관은 퇴임 뒤인 지난 5월, 후원자인 김장하 선생을 만난 자리에서 “지금 이 사회의 가장 큰 문제 중 하나가 지역이 소외되고 있다는 것이라 생각한다... 그런데 이 문제조차도 서울 사람들이 논의하고 있다”고 꼬집었다. 우리 지역을 살리는 일을 서울 사람들에게 맡기는 것도 우스꽝스럽긴 마찬가지다. ‘우리가 돈이 없지, 가오가 없냐’고 큰소리치던 누군가의 패기가 아쉽다. 우리에게 필요한 건 돈보다 가오다. 우리 스스로 우리 길을 헤쳐갈 수 있다는 자신감 말이다.
윤찬영 북카페 기찻길옆골목책방 대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