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향에서] 공론화를 통해 전주·완주 통합의 길을 찾자

김춘석 한국리서치 여론조사 부문장

타지에서 살고 있는 시간이 길어지고 있지만, 고향 전북에 대한 애정은 되려 깊어가고 있다. 자연스레 숱한 뉴스 중에서도 전북 관련 소식에 귀를 기울이게 된다, 요즘은 전주와 완주의 행정통합 논란에 눈길이 자주 간다. 그런데, 관련 소식을 접하면서 기대감보다는 안타까움이 앞선다. 지역 발전을 위한 논의가 정작 지역민의 피로와 분열을 키우고, 또 다시 좌절을 안기는 결과를 초래할 수 있다는 우려를 감출 수 없다.

행정통합은 단순히 행정구역 재조정 문제에 그치지 않는다. 지역의 정체성과 재정 구조, 주민들 일상의 삶, 공직자의 일자리, 나아가 공동체의 미래에 영향을 주는 중대한 변화다. 이러한 사안을 결정함에 있어 주민의 생각과 입장을 정확히 확인하고 충실히 반영해야 하는 일은 민주적 자치 행정의 필수 요건이다. 완주와 전주가 통합을 하든 하지 않든, 시민과 군민이 행정통합과 관련한 다양한 쟁점을 이해하고, 논의 과정에 능동적으로 참여할 수 있어야 한다. 그래야만 과정의 정당성이 확보되고, 결과에 대한 수용성이 높아진다. 

지금까지 행정통합 관련 민심을 파악하는 방식은 주로 여론조사였고, 현재도 여론조사 방식이 거론되고 있다. 최근에 완주군에서는 복수의 여론조사 결과를 근거로 통합 반대 여론을 형성하는데 주력하고 있다. 여론조사는 단순 쟁점에 대한 다수의 의견을 빠르게 파악하는 데 유용하지만, 깊이 있는 판단을 담기에는 한계가 있다. 정보가 부족하거나 관심이 없는 사람들이 즉흥적으로 답하는 경우가 있고, 왜곡된 정보나 유도성 설문에 기반한 응답 결과도 적지 않다. 여론조사는 순간의 반응을 수치로 보여주는 것이지, 사실관계와 그의 여파에 대한 진지한 숙고를 반영하는 방법은 아니다. 

1997년 첫 시도 이후 벌써 네 번째 추진되는 전주·완주 행정통합처럼 갈등이 누적되고 쟁점이 다양한 난제일수록 단순 여론이 아닌 ‘공론’을 확인할 필요가 있다. 공론은 전문가가 제공하는 정보를 일반 시민이 충분히 학습하고, 서로 입장이 다른 사람들과 질서정연하게 토의하고 숙고하며, 스스로 입장을 정돈하는 숙의 과정을 통해 형성된 정제된 여론이다. 공론이 형성되는 과정을 공론화라 하는 바, 공론화를 통해 생각의 변화와 공감의 확장까지 결합된 깊이 있는 대화가 가능하다. 우리는 공론화의 모범적인 사례를 2017년 신고리 5·6호기 공론화를 통해 확인할 수 있었다. 

완주와 전주 행정통합 공론화를 시행할 경우, 공론화의 목적은 통합 여부를 결정하는 데 있지 않고 정제된 여론인 공론을 확인하는데 있다. 행정절차상 통합 여부는 주민투표나 의회 의결을 통해 최종 결정한다. 하지만, 행정통합 문제에 대한 주민투표나 의회 의결 여부 판단 및 해당 결과에 대한 사회적 수용성을 높이기 위해서는 숙고한 시민의 목소리를 확인하는 절차를 거칠 필요가 있다. 이는 자치 단체장이나 의회 의원이 중심인 대의민주주의의 한계를 보완하기 위한 숙의민주주의를 구현하는 방편이기도 하다.

전주와 완주의 행정통합은 지역 공동체의 미래를 다시 그리는 일이다. 시민과 군민이 그 의미와 영향을 충분히 이해하고 스스로 판단할 수 있도록 공론의 장을 마련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그래야 통합 여부와 상관없이 논의 과정 자체가 완주와 전주를 넘어 전북 공동체를 더 성숙하게 할 것이다. 

김춘석 한국리서치 여론조사 부문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