객석 위에서 거대한 샹들리에가 순식간에 미끄러지듯 내려온다. 황금빛 조명 사이로 금속 체인이 팽팽히 당겨지며 나오는 미세한 진동과 효과음, 그리고 관객석 앞에 멈춰 선 샹들리에를 보는 관객들은 본능적으로 몸을 뒤로 젖히며 유령의 존재를 암시하는 복선[伏線]을 경험하게 된다
뮤지컬‘오페라의 유령’의 첫 시작이다. 이런 극적 긴장감을 만들고자 어둠속에서 조명 각도를 0.1도까지 조절하고, 음향 레벨을 실시간으로 미세 조정하며, 수 톤짜리 장치의 움직임을 밀리미터 단위로 제어하는 이들이 있다. 그들이 바로 무대예술전문인이다.
공연법 제16조 2항은 객석 500석 이상 공연장은 조명, 음향, 무대기계 파트에 전문인을 의무배치 하도록 명시되어있다. 미 배치로 인한 과태료 부과기준이 150만원에서 300만원까지 횟수에 따라 부과되지만, 현실은 다르다. 대부분의 공연장이 지자체에서 직접 운영하거나 위탁 운영 방식이다 보니 사실상‘셀프 단속’이 이뤄지는 셈이다. 실제 과태료가 부과된 사례를 찾기가 쉽지않다.
2018년 9월 6일 지방의 한 문예회관에서는 리허설 도중 무대 리프트 개구부에 안전난간이 없어 조연출이 7미터 아래로 떨어져 목숨을 잃었다. 법원은 무대감독에게 업무상 과실치사죄를 인정하면서도 ‘공연장을 소유한 지자체 역시 근로자 안전 확보 의무를 다하지 못했다’고 지적했다.
또한, 수도권의 한 공연장에서는 철제 무대장치에 부딪히는 사고로 출연자가 중상을 입었다는 보도가 있었다. 이후 실시 된 감사에서 무대 상부 기계장치 결함과 안전 점검 소홀이 동시에 발견되면서, 대다수 출연자들이 불안해 하면서 작품을 만들고 있는 실정이다. 더 심각한 건 이런 일들이 우리 전북지역에도 반복될 가능성이 높다는 점이다. 일부 지자체 공연장의 경우 무대예술전문인 배치 의무를 알면서도 ‘인건비 부담과, 큰 사고는 없었으니 괜찮을 것’이라는 안이한 생각으로 채용을 미루고 있다.
무대는 겉보기와 달리 극도로 위험한 작업 현장이다. 몇 톤짜리 장치들이 수시로 이동하면서 추락의 위험이 있고, 고압 전기 설비와 높은 곳에서의 작업이 동시다발적으로 이뤄지고, 대부분 어두운 환경속에서 작업을 하다 보니 크고 작은 사고들이 발생되고 있다. 자격을 갖춘 전문인력의 부재는 단순한 인력난과 예산문제가 아니라 우리 모두의 생명과 직결된 문제다.
그동안 여러 연구에서도 이런 문제점들이 꾸준히 제기돼 왔다. 박영정(2009), 안경석(2012)의 논문을 보면, 전문인력 부족 문제와 제도 실효성 부재를 지적하며 배치 의무 강화 방안을 제시하며, 기존의 공연법 개정도 필요하다고 하였다.
이제는 근본적인 변화가 필요하다. 안전관리비와 무대예술전문인의 배치 기준인 500석에서 300석이하로 축소시키고, 문화체육관광부와 광역자치단체는 기초지자체 공연장에 대한 상급기관 교차점검을 의무화하여 과태료 수준을 현실적으로 높여야 한다. 반복 위반 시에는 운영 중단 같은 강력한 제재도 검토해볼만한 사항이다. 동시에 무대예술전문인이 현장에 안정적으로 근무할 수 있도록 별도로 안전관리자 의무 배치와 함께 전폭적인 예산 지원도 뒷받침돼야 한다.
관객이 무대 위 샹들리에에 감탄하는 순간, 그 아래서는 누군가 목숨을 걸고 일하고 있다. 어둠 속에서 빛을 설계하는 이들의 안전이 보장되지 않는다면, 그 빛은 결국 누군가의 희생 위에 세워진 허상에 불과할 것이다. 제도의 빈틈을 메우고 전문인력을 제대로 배치하는 것은 단순한 법 준수가 아니라, 예술에 대한 최소한의 양심이고, 문화주권(Culture Sovereignty)시대를 열어가는 초석이 될 것이다.
김수일 전북특별자치도립국악원 공연기획실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