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향에서] 경청(傾聽)으로 모두가 평안한 한가위를

김춘석 한국리서치 여론조사부문장

우리 민족 최대의 명절인 추석이 다가온다. 필자가 몸담고 있는 한국리서치는 추석을 앞두고 국민들의 행동과 생각을 매년 정기적으로 조사하고 있다. 2024년 8월 말 조사에 따르면, 국민의 69%는 추석에 따로 사는 가족을 만난다. 추석의 의미를 묻자 50%가 ‘가족·친지와의 화합’을 꼽아 1위를 차지했고, 36%는 ‘휴식과 재충전’을 선택하여 2위에 올랐다. 추석은 여전히 일가와 친척이 모여 공동체의 온기를 느끼면서, 살아갈 힘을 또 다시 얻는 시간임을 알 수 있다.

조사 결과에 따라 사람들을 구분해 보니, 추석을 가족과 정을 나누는 명절로 여기는 ‘가족 중심 전통주의자’가 23%, 가족은 물론 지인과의 관계를 다지는 ‘인간관계 중시자’는 13%를 차지했다. 합이 36%이다. 그리고, 휴식과 재충전에 무게를 두는 ‘휴식 추구자’는 32%로 그 다음을 차지했다. 그런데, 명절을 경제적·정신적 부담으로 느끼는 ‘명절 부담자’도 16%에 이르렀다. 5천1백만 인구의 16%면 816만명이다. 적지 않은 사람이다. 정신적 부담에 명절 대화를 빼놓을 수 없을 것이다.

언론과 정치권은 흔히 명절을 ‘민심의 변곡점’이라 말한다. 가족 친지가 모이면 정치 이야기가 활발하게 오갈 것이라 기대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다수의 사람들은 정치보다는 생활 이야기를 나누거나 휴식을 즐기려 한다. 정치나 정치인에 대한 대화는 으레 얼굴을 붉히거나 감정의 골이 패이기 십상이다. 오랜만에 만난 자리에서는 가족의 안부와 일상사를 나누며 서로의 정(情)을 확인하고 싶은 마음이 앞서는 것이다. 

그렇지만, 애정을 앞세운 말이 부지불식 간에 상처를 남길 수 있다. 나의 생각과 마음에 갇혀 마주하는 사람의 표정과 말을 세심하게 살피지 않는 일방적 대화는 부담과 불편을 야기할 수 있다. 이럴 때 필요한 것이 바로 ‘경청(傾聽)’이다. 경청은 귀뿐만 아니라 몸까지 기울여 상대의 말을 받아들이는 행위이다.

경청을 잘 하기 위해서는 ‘개시개비(皆是皆非)’의 정신이 필요하다. ‘개시(皆是)’는 모두가 옳다는 의미이다. 자신보다 이야기 상대에 방점이 있다. 누구의 어떤 이야기에도 진실이 있음을 믿고 존중한다는 자세이다. 장님 한 사람이 코끼리를 만진 후의 표현은 기둥, 벽, 동아줄, 부채 등으로 불완전할 수 있지만, 이 또한 코끼리 형상의 일부에 해당한다는 이치와 맞닿아 있다. 

이와 달리 ‘개비(皆非)’는 모두가 그를 수 있다는 의미이다. 상대보다는 나에 대해 저어하는 마음이다. 나의 생각과 주장에 잘못이 있을 수 있음을 인정하고 상대를 향해 나를 열어 두어야 한다는 뜻이다. 과학적 절차를 거쳐 많은 사람을 대상으로 보편적인 생각을 확인하는 여론조사 결과를 해석할 때도 늘 오차를 전제하듯, 제한되고 제한된 나의 생각과 말과 행동에 오류가 있을 수 있음을 염두에 두라는 경고이다. 

개시와 개비 두 마음이 함께할 때 비로소 귀와 몸이 온전히 상대방을 향할 수 있다. 경청은 소극적으로 듣는 행태가 아니라, 상대에 대한 존중과 자신에 대한 겸허를 바탕으로 한 적극적인 소통 행위이다. 그러기에 경청은 가족과 이웃, 더 넓게는 사회의 화합을 가능케 하는 출발점이다. 

다가오는 추석, 가족과 친지의 목소리에 귀와 몸을 기울이면서, 아무리 작은 것이라도 그 안에 담긴 진실을 발견하고자 노력해 보자. 나의 욕구는 입술을 살짝 깨물며 잠시 유보해 보자. 그러면 함께하는 가족과 친지뿐만 아니라, 누구보다 내가 평안해짐으로써 모두가 풍성한 한가위가 될 수 있으리라. 

김춘석 한국리서치 여론조사부문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