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춘예찬] 골목문구생활 ③골목에 안부를 묻기

김채람 문화기획자

문구점을 열고나니 신기하게도 사람들이 찾아왔다. 골목을 지나다 우연히 들어오는 사람들, 먼저 방문했던 사람들의 소개로 찾아오는 사람들, 근처 식당이나 카페, 서점에 왔다가 들러주는 사람들. 열평 남짓한 작은 곳, 서 있는 자리에서 한 바퀴 빙 돌면 금세 다 둘러볼 작은 상점이다. 찾아온 사람들은 대부분 우리 문구점을 꼼꼼히 살펴보았다. 시간을 들여 머무는 사람들을 보며 우리는 이 공간이 잠시 들르는 곳일지라도, 한 장면쯤은 마음에 남기고 갈 수 있는 곳이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단지 필요한 물건을 사고 파는 상점이 아니라 골목의 풍경 안에 자연스레 스며드는 곳. 

생각 끝에 우리는 ‘띠부띠부 씰’을 만들었다. 일정 금액 이상을 구매한 손님들에게 증정하는 서비스 스티커였지만, 단순한 홍보물은 아니었다. 이 씰에 담긴 건 골목에서 만날 수 있는 작은 존재들이기 때문이다. 고물자 골목에는 작고 조용한 생명들이 함께 산다. 올해로 아홉 살이 된 코리안 숏 헤어 고양이 ‘호랑이’는 맞은편 바느질 공방에 살지만, 일정 시간이 되면 순찰하듯 골목을 거닌다. ‘호랑아’하고 부르면 무심하게 뒤를 돌아보고 다시 제 갈 길을 간다. 골목 끝 강정 맛집 ‘오성제과’에서는 호시탐탐 콩고물이 떨어지기를 기다리는 비둘기들이 있다. 특히 명절 시즌이 되면 기다렸다는 듯이 더 많은 동료들을 데리고 오는데, 사람도 차도 아랑곳하지 않는다. 우리는 이들을 ‘오구구’라 이름 붙였다. 또 오성제과 맞은편 집에는 ‘팡이’가 산다. 오렌지 족 강아지라고 별명을 붙인 ‘팡이’는 두 귀가 늘 밝은 오렌지색으로 물들어 있고 골목 주변을 혼자 배회한다. 작은 덩치에 맞지 않게 지나가는 모든 존재들에게 시비를 걸고, 반가운 마음에 이름을 부르면 심기가 불편한지 더 격하게 짖는다(자기 딴의 반가운 인사일지도…?).

손님들은 이 스티커들을 유쾌하게 받아들였다. 처음엔 단순히 ‘귀엽다’는 반응이 대부분이었지만, 시간이 지나며 뜻밖의 일이 일어났다. 

  “사장님, 저 오는 길에 오구구 봤어요!”

  “우리가 아까 만난 강아지가 팡이인가봐!”

  “오늘은 호랑이가 안 보이네요” 

스티커에 담긴 캐릭터들이 실제 골목에서 발견되고 마주치게 되면서. 골목과 문구점, 손님 사이에 작은 연결이 생긴 것이다. 특히 재미있는 포인트는 ‘오구구’이다. 사실 ‘오구구’는 그냥 가게 앞을 서성이는 비둘기일 뿐이다. 하지만 이름을 붙이고, 표정을 만들고, 캐릭터로 그려낸 순간 그 존재는 개별적인 기억이 된다. 스쳐 지나가던 골목이, 하나의 이야기로 다가오기 시작한다. 

그 작은 연결이 너무 재미있고 소중했다. 단지 소비와 판매를 넘어, 이 골목의 정서를 함께 나누고 공감하는 일. 우리가 전주의 일상 자원을 활용해 문구와 소품을 만드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언젠가 골목을 지나던 누군가가 스티커 속 ‘오구구’를 떠올리거나, 오렌지색으로 귀를 물들인 다른 강아지를 보며 ‘팡이’를 떠올리거나, 우연히 마주친 길고양이를 보고 스티커를 다시 꺼내볼지도 모른다. 그러한 일화를 떠올리며 자연스레 골목을 찾거나 문구점에 방문할지도 모른다. 그래서 오늘도 문을 열며 생각한다. 누군가 이 골목의 안부를 묻는 일로 하루를 시작하면 좋겠다고. 

김채람 문화기획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