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정단상] 새만금은 죄가 없다 - 시련의 일대기를 넘어, 희망으로

한병도 국회의원·더불어민주당·익산시을

지난 9월 11일, 서울행정법원이 새만금 국제공항 기본계획 취소 판결을 선고했다. 조류 충돌 위험과 절차적 하자를 이유로 180만 전북도민의 염원을 외면하고 1,297명 원고의 손을 들어줬다. 전북 사회는 깊은 충격에 빠졌다. 하늘길을 향한 34년의 희망이 또다시 시험대에 올랐다.

새만금 잔혹사는 1991년 간척사업 착공과 함께 시작됐다. 환경단체의 소송, 갯벌 보전 논란, 람사르 협약 갈등이 이어졌고, 2011년에는 전북도 차원에서 국제공항 필요성이 제기됐지만 ‘경제성 부족’이라는 벽에 가로막혔다. 2019년 예비타당성 조사 면제로 다시 탄력을 받았으나, 2025년 법원의 제동이라는 또 하나의 시련을 맞았다.

대통령만 아홉 명이 바뀌었다. 정권이 바뀔 때마다 새만금은 번번이 “이제 시작”이라며 되풀이되는 약속에 갇혔다. 정책 일관성은 늘 시험대에 올랐다. 전북은 30여 년 동안 스스로 희망을 부여잡고 버텨온 땅이다. 도민의 인내와 기다림은 정책의 빈자리를 채우는 유일한 자산이었다.

2년 전 윤석열 정부의 폭거에 가까운 새만금 예산 삭감이 있었다. 정부청사 기획재정부 앞에서 삭발을 했다. ‘새만금은 죄가 없다’고 외쳤다. 새만금은 지금도 죄가 없다. 법정 다툼과 고초 속에 새만금은 땀과 눈물로 새겨진 세월을 보내왔다.

판결의 쟁점은 명확하다. 법원은 조류 충돌 위험성 평가 부실, 경제성 부족, 행정절차 하자를 들었다. 반면 국토부와 전북도는 국가균형발전 핵심 사업의 좌초를 우려한다. 문제는 이 과정에 180만 도민의 목소리가 없었다는 것이다. 행정과 환경, 법의 이름으로 말은 오갔지만, 전북도민의 현실과 간절함은 반영되지 않았다.

묻고 싶다. 새만금공항이 수도권이었다면 이런 판결이 나올 수 있었을까. 지역이 아닌 중앙이었다면, 기약 없는 기다림과 절망의 절벽에 수백만 명을 떨어뜨릴 수 있었을까. 새만금은 지역 민원이 아니라, 국가가 직접 공표한 미래 전략의 상징이다. 이대로 멈춰선다면, 국가는 스스로 세운 국가균형발전의 기둥을 무너뜨리는 셈이다.

정부는 새만금을 RE100 산단, 신재생에너지 메카, 글로벌 첨단산업의 중심지로 육성하고 있다. 새만금개발사업은 이제야 국가 전략 거점으로 발돋움할 준비를 하고 있다. 쏜살같이 내달려야 할 지금, 뒷걸음질 칠 수는 없다. 다시는 도민이 좌절을 감내하게 해서는 안 된다.

조류 충돌, 생태계 보전 문제는 과학적 판단이 필요한 사안이다. 그러나 이번 판결에는 정책적 고려가 충분히 담기지 못했다. 수정과 보완으로 충분히 해결할 수 있는 문제를 사업 존속 여부로 판단하는 것은 국가 전략의 취지를 훼손할 우려가 있다.

과제는 분명하다. 안전과 환경 대책의 정교한 보완이 우선이다. 사업의 필요성과 당위성을 국민께 설득력 있게 설명해야 한다. 무엇보다, 예비타당성 조사 면제라는 국가의 정책적 결단으로 출발한 사업임을 잊지 말아야 한다. 국가는 전북도민과 국민에게 한 약속을 끝까지 이행해야 한다.

대통령은 아홉 번 바뀌었지만 도민의 의지는 단 한 번도 바뀐 적이 없다. 그 시련이야말로 새만금 가능성을 단단히 다져온 과정이었다. 이제 180만 도민의 목소리가 국정의 우선순위가 되어야 한다. 국가가 국민에게 한 약속은 반드시 지켜져야 한다.

전북의 하늘길은 아직 닫히지 않았다. 도민들은 기다리고 있다. 국가는 기다림에 응답해야 한다. 시련을 넘어, 이제는 반드시 희망으로 나아가야 한다.

한병도 국회의원·더불어민주당·익산시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