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지금 전북 사람으로 산다는 것이⋯

이흥래 전 언론인

최근 서울행정법원이 새만금 공항 건설계획 취소 판결을 내린 후 전북에 살고 있는 많은 사람들이 속을 끊이고 있다. 국토의 중심 개발축에서 밀려 애초부터 크게 발전할 것이라고는 생각하지 않았지만, 어떻게 전북은 하는 일마다 이렇게 꼬이고 막힐 수 있느냐며 가슴을 치고 있다. 이미 다른 곳들은 많게는 수 십년 전부터 다 누려온 시설이고 혜택들인데 뒤늦게 전북도 누려보고 혜택 좀 보자는데 이게 그렇게 힘들고 잘못된 일이냐며 밤잠을 설치는 사람들이 늘어나고 있다.

며칠 전 서울에서 만난 고교 동기들이 이번 판결을 어찌 생각하느냐고 묻길래 서울 사람의 입장에서는 당연한 판단일 것이나 전북 사람들은 정말 억울한 판결일 수 있다고 말한 적이 있다. 그도 그럴것이 미국의 한 주만도 못한 면적에 이미 수십 개의 공항이 있는데 환경 파괴니 적자운영이니 하는 논란을 자초하며 구태여 또 공항을 만들 필요가 있느냐는 이번 판결은 이미 누릴 것 다 누리는 수도권에서 보면 지극히 당연하고 합목적적인 결정일 수 있다. 그러다보니 결과를 반신반의하던 환경단체는 물론이고 진보나 보수를 가리지 않고 언론들도 근래에 보기드문 명판결이라며 반기었다고 한다. 사실 새만금공항 바로 옆에는 우리 마음대로 쓸 수는 없지만 그래도 군산공항이 있고, 직선거리로 백 몇십 km 남짓이면 광주, 무안, 청주 공항 등 많은 공항이 있다는 건 이미 잘 알고 있다. 그럼에도 전북사람들이 새만금 공항을 짓자고 하는 것은 우리가 필요할 때 손쉽게 이용할 수 있는 공항이 있어야 공장 지으러 오는 사람들도 쉽게 오가고, 우리도 가까운 공항에서 외국 좀 나가보자고 해서인데.

법원의 취소 판결이 내려오자 감사원은 뒤늦게 새로 신설될 지방공항들의 운영에 따른 적자 보전 대책을 세우지 않았다고 국토부를 윽박지르는 모양이다. 감사원은 새만금공항 역시 매년 200억원의 운영적자를 보전할 계획을 세우라고 요구했다고 한다. 하지만 자세히 따져보자. 현재 전국에는 열 몇 개의 지방공항이 있는데 아직까지도 흑자를 내는 공항은 한 군데도 없다고 한다. 과거 정부들도 이들 공항이 적자가 날 것을 다 알고 있었지만 그럴듯하게 꾸며논 보고서를 핑계 삼아 공항을 만들었고 지금까지 적자를 메워주며 다들 운영해 오고 있지 않은가. 그런데도 새만금공항에만 보전대책을 세우라고 윽박지르는건 너무 가혹한 잣대가 아닐 수 없다. 또한 이번 판결에서는 조류충돌의 위험성을 지극히 강조하고 있지만 우리나라 해변치고 겨울철에 철새가 날아오지 않는 곳이 어디에 있는가. 갯벌이 발달되고 온대성 기후로서 다양한 생물이 분포돼 있는 우리나라 서해안은 겨울철 철새들이 날아오기에 아주 좋은 조건을 지녔지만 그럼에도 우리는 그 갯벌을 메워가며 인천공항을 비롯한 많은 공항을 지어 운영하고 있는 중이다. 물론 환경의 중요성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다. 그러나 환경을 보존하면서 인간과 공존하는 개발이 중요하다는 점도 간과해서는 안될 것이다.  

이번 행정법원의 판결이 환경 안전요소를 실질적으로 평가하지 않을 경우 제동을 걸 수 있고조류충돌의 위험성을 법적 쟁점화 했다는 중요한 선례가 될 수 있다고 한다. 하지만 국민주권정부의 국가 균형발전이라는 국정과제도, 지역간 형평성도 반드시 존중받아야 될 것이다. 그런면에서 새만금공항과 부산 가덕도 신공항은 다같은 신공항 건설인데도 얼마나 차별적으로 진행되고 있는지를 단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임진왜란 당시 삼도수군통제사에 오른 원균이 일본 수군에 패해 이순신이 남겨줬던 수많은 함선을 모조리 수장시킨 가덕도 앞바다는 수심이 깊고 파도가 높아 현재 공사를 맡았던 업체조차 철수한 상황인데도 여야는 예산을 못줘서 안달이라고 한다. 유럽의 전문기관조차 현 김해공항을 확장하는 것이 최적의 방안이라고 평가했다지만 과거 정부나 현 정부 모두 천문학적인 예산을 쏟아 부어서라도 기어이 공항을 짓겠다고 하는 모양이다. 정부도, 법원도, 환경단체들도 어느 곳엔 후하고 전북에는 왜 그리 야박한지. 그래서 지금 전북에 사는게 참 힘이 든다. 그래서 더 화가 난다.

이흥래 전 언론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