잊혔던 옛이야기, 우물 속에서 다시 피어나다

김란희 작가, 지혜와 인간의 따뜻한 마음 되살린 그림책 ‘우물이야기’ 발간
과거와 현재 잇는 ‘우물’의 상징 통해 민심·천심·동심 어우러진 인생의 깊이 전해

우물이야기 표지/사진-교보문고

할머니의 따뜻한 목소리가 오래된 추억 속으로 독자를 이끈다. 김란희 작가의 신작 <우물이야기>(도서출판 비공, 그림 전현경)는 단순한 과거 회상이 아닌, 인간의 마음과 세상의 이치를 담은 깊은 이야기로 삶의 본질을 되묻는 작품이다.

책은 담백하고 정갈한 문체 속에 ‘인심에 따라 우물에서 단물과 짠물이 나온다’는 전래동화의 지혜와 신비를 품고 있다. 작가는 오랜 세월 마을의 중심이자 생명의 근원이 되어온 ‘우물’을 상징으로 삼아, 인심(人心)과 천심(天心), 그리고 순수한 동심(童心)이 어우러진 세계를 그려낸다. 우물은 물을 길어 올리는 장소이자 기억을 길어 올리는 공간으로, 세대와 세대를 잇는 매개이자 과거와 현재를 연결하는 통로로 등장한다.

작품은 할머니가 들려주는 구수한 이야기로 시작된다. 잊혔던 옛날이야기가 다시금 우물 속에서 살아 숨 쉬듯 피어나며, 김 작가는 사라져가는 말과 정서, 옛 어른들의 따뜻한 시선을 우리 고유의 언어로 복원한다. 단순한 향수에 머무르지 않고, 인간과 삶을 성찰하는 깊은 울림을 담아낸다.

어린이를 위한 그림책이지만, 우물에 대한 향수를 품은 어른 독자들에게도 권할 만하다. 작품은 빠르게 흘러가는 시대 속에서 잊혀가는 ‘이야기의 힘’을 일깨우며, 메마른 일상에 ‘다시 물을 긷는 마음’을 건넨다. 한 장 한 장을 넘길 때마다 독자는 오래된 우물가의 물소리처럼 잔잔한 회상과 사색 속으로 스며든다.

원종찬 아동문학평론가는 “민심, 천심, 동심이 한데 어우러진 인상 깊은 작품”이라 평하며 “단순히 과거를 회상하는 데 그치지 않고, 오늘의 독자들에게 삶의 근원적 물음을 던진다”고 말했다. 그는 또 “현실의 건조함 속에서도 인간의 따뜻한 본성을 잊지 않게 해주는 귀한 이야기”라고 덧붙였다.

그림을 맡은 전현경 작가는 김란희의 글에 따뜻한 색감과 부드러운 붓터치를 더해 이야기에 깊은 여운을 더했다. 우물가의 물결, 마을 사람들의 정겨운 표정, 별빛이 스며드는 밤하늘은 모두 할머니의 품처럼 포근하고 정겹다. 글과 그림이 어우러져 한 폭의 수채화처럼 감각적인 조화를 이루며, 독자에게 시각적 위안과 정서적 울림을 전한다.

김 작가는 “가난한 집 셋째 딸로 태어나 벗들과 책이 있어 깜냥껏 컸다”며 “글과 책이 좋아 가난한 시인의 아내가 꿈이던 적도 있었다. 세월이 흘러 원고지를 보면 여전히 뛰는 가슴을 발견하고 묵묵히 글을 썼다”고 말했다.

이어 “살아생전 책 한 권 낼 수 있을까 싶던 때, 우연히 좋은 기회를 만나 이렇게 책을 내게 돼 행복하다”며 “제 글에는 외국인 아내, 폐지 줍는 어르신, 시민 활동가, 외로운 아이 등 우리 사회에서 쉽게 마주치는 결핍을 품어줄 따뜻한 마음을 담고자 했다. 앞으로도 일가 보면 따뜻해지고 푸근해져서 안심하고 세상을 살아도 되겠다는 안도감을 줄 수 있는 글 쓰기에 노력할 것”이라고 밝혔다. 

전주 출신인 김 작가는 현재 나고 자란 전주에서 문화해설사로 손님을 맞고 있으며, 전주서학예술마을에서 다양한 예술을 일상에서 누리며 살고 있다. 그는 1991년 8.15범민족대회 청년통일문학상공모전에서 동화<까치와 까마귀>로 통일상을 수상했고, 2005년 창비어린이 9호에 <외삼촌과 누렁이>로 등단했다. 저서로는 동화집 <금딱지와 다닥이>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