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진왜란 당시 충무공 이순신 장군 만큼의 공적을 세웠으나 후손들에게 크게 기억되지 못하고 있는 남원 출신 황진 장군을 재조명하는 세미나가 22일 국회에서 열렸다.
이날 더불어민주당 박희승·안호영·황명선·황정하·황희 의원 등은 이날 역사바로알기 연구소 황현필 소장을 강사로 초청해 ‘임난 육전에는 황진, 해전에는 이순신’을 주제로 한 특별강연회를 주최했다. 또 장수황씨 호안공파와 장수황씨남원대중종, 진주문화원 등은 이 행사를 주관했다.
황진 장군은 전라도를 사수하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하면서 결국 조선을 지킨 인물로 손꼽힌다.
황 소장의 이날 강연에 따르면 황 장군은 1592년 4월 임진왜란이 마침내 발발하자, 동복현감이으로서 자신이 훈련시킨 부대원들을 데리고 참전했다. 7월, 전주성 인근의 안덕원에서 야영 중이던 6000여명 규모의 일본군 안코쿠지 부대를 기습해 타격을 입혔고, 이어서 이치전투에선 2000여명의 조선군을 이끌고 1만5000명 규모의 일본군 제6진 고바야카와군의 공격을 물리쳐 호남지역을 지켜내는 공을 세웠다. 이듬해 3월에는 일본군의 주요 보급로상에 위치한 경기도 안성의 죽주산성을 지략을 써서 빼앗아 일본군 보급에 타격을 가하기도 했다.
1593년 6월, 적장 가토 기요마사(加藤淸正)가 1년 전 진주성 싸움에서 패한 것을 보복하기 위해 대군을 동원해 진주성을 공략하자 창의사 김천일, 절도사 최경회 등과 함께 성사수에 나선 것은 유명한 일화다.
순찰사 이상신과 백사 이항복이 '공이 살아 있을 때 성이 보존되고, 죽으니 성이 함락되었다', '수성(守城)에 대해서는 황진이 천하의 으뜸"이라고 칭했을 만큼 지략과 무예를 함께 갖춘 장군으로 평가받고 있다.
황 소장은 “일본군을 육지에 쓸어버리면서면 이순신 장군을 지켜준 게 바로 황진 장군”이라며 “그는 육지에서 가장 많이 왜군을 격퇴했고, 임진왜란사 최대 승전을 기록하기도 했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우리가 이순신 장군을 기억하듯 황진 장군 역시 제대로 기억해야 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