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춘예찬] 골목문구생활 ④골목의 변화

김채람 문화기획자

 

문구점을 연 첫날, 가장 먼저 찾아온 사람은 다름 아닌 골목의 어르신이었다.

“문구점? 그걸로 먹고 살 수 있겠어?”

“요새 학교 앞 문구점도 다 문을 닫는다는데…”

걱정 섞인 물음에 ‘괜찮다’며 아무렇지 않게 웃어보였지만, 그 말에 어깨가 조금 움츠러들었던 게 사실이다.

고물자골목에는 우리보다 훨씬 먼저 자리를 잡고 살아온 어른들이 있다. 강정을 만드는 제과점, 한복을 수선하고 짓는 한복집, 골목 사이사이 주택에 살며 자리를 지켜온 이웃들. 처음 공사를 시작했을 때, 어른들은 말없이 우리를 지켜보았다. 넌지시 무얼 하는 곳이냐고 묻기도 하고, 괜스레 문구점 앞을 서성이며 산책을 하기도 하면서. 그러다 점점 말을 트고, 인사를 주고받고, 일상을 나누게 되었다.

사실 처음엔 어르신들과 관계 맺는 것이 쉽지 않았다. 어떤 거리로 말을 섞어야 할지, 얼마나 조심해야 할지 도통 알 수가 없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자 자연스럽게 반찬을 나누고, 안부를 묻고, 골목의 소소한 이야기를 전하게 되었다. 어르신들이 먼저 내민 마음에 우리도 조금씩 응답하게 된 것이다. 이제는 명절 때면 떡을 나누고, 김치를 얻어오고, 반찬 그릇을 다시 돌려드리며 인사를 나누는 일이 익숙하다.

어른들과 가까워지는 일은 골목생활에서 얻은 가장 깊은 배움 중 하나였다. 나이를 먹는 것만으로는 알 수 없었던, 삶을 대하는 단단하고 너그러운 태도 같은 것. 중요한 것은 결국 얼마나 많이 가지느냐보다, 비워내며 살아갈 수 있는 가벼운 생활이라는 것도 어른들을 보며 배웠다.

요즘 가장 자주 들르는 손님도 역시 동네 어르신들이다. 이제는 당연하듯 인사를 나누고, 오늘의 날씨와 기분에 대해 이야기하고, 가끔은 선물하겠다며 펜 하나를 사 가신다. 말없이 가게를 둘러보다 문 밖에 서서 가만히 들여다보는 그 몸짓도 이제는 다정한 안부라는 걸 잘 안다.

조용하던 거리도 조금 달라졌다. 문구점이 생기고 사람들이 찾아오면서 낯선 손님을 반갑게 맞이하는 분위기도 생겼다. 하지만 골목을 바꾼 건 우리가 아니라 어른들이 우리를 받아들이며, 스스로 조금씩 변화해온 것일지도 모르겠다. 문구점이 들어선 뒤 달라진 건 공간만이 아니었다. 함께 살아가는 사람들과의 거리, 그 마음의 간격이었다.

살아간다는 건 그렇게 서로에게 스며드는 일인지도 모르겠다. 우리는 이제 이 골목의 안부를 물을 줄 알게 되었고, 어른들은 우리에게 먼저 말을 건네며 문을 열어주었다. 조심스레 시작된 이 관계가 어느덧 서로의 일상이 되었듯, 그렇게 오늘도 이 골목은 조금씩, 다정하게 변해가고 있다.

 

김채람 문화기획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