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종표의 모눈노트] 민선 지방자치 30년, 지역의 주인은 누구였나

묻지마 투표, 일당독식 구도 여전
선거권을 특정 정당에 맡기는 꼴
주민이 주인이 되는 지방자치를

                                 김종표 논설위원

10월 29일, ‘지방자치의 날’이다. 지역주권 실현과 풀뿌리 민주주의의 가치를 되새기자는 취지의 법정 기념일이다. 주민이 지역의 주인임을 확인하는 날이기도 하다. 올해는 의미가 더 특별하다. 민선 지방자치 30주년을 맞았다. 1995년 제1회 전국동시지방선거 이후 강산이 3번이나 바뀌었다. 그동안 진정한 지방자치 실현을 위한 사회적 논의와 제도 개선 노력이 이어졌다. 주민주권 강화·실질적 자치권 확대를 골자로 전부 개정된 지방자치법도 2021년부터 시행되고 있다. 이같은 노력을 통해 주민이 지역사회의 진정한 주인이 됐을까? 그렇지 않다. 30년이나 흘렀지만 항상 성과보다는 과제가 먼저 부각된다. 

지방자치의 핵심은 주민참여고, 이는 선거를 통해 실현된다. 그렇다면 전북지역 30년 지방선거 결과는 어땠을까? ‘일당독식 구도’에 흔들림이 없었다. 집행부와 지방의회가 민주당 일색으로 짜여지면서 지방의회의 견제·감시 기능은 기대할 수 없게 됐다.

‘민주당 공천이 곧 당선’인 선거구도에서 지자체장과 지방의원 입지자들은 유권자의 표심보다 당의 선택을 받는 데 더 몰두했다. 물론 당의 공천 과정에서 주민 여론을 반영하기도 했지만, 역시 민심(民心)보다는 당심(黨心)이 결정적 역할을 하면서 지역사회 민주당원이 넘쳐나게 됐다. 경선 후보들의 사활을 건 경쟁 덕분에 주변 연결고리에 얽혀 자기도 모르게 당원이 되기도 했다.

지방선거 입지자와 현역 단체장·지방의원들의 발길은 투표권을 가진 지역주민보다 공천권을 쥔 중앙당과 지역구 국회의원에게 먼저 향했다. 그렇게 지방정치는 중앙정치에 예속되고, 일당 독주체제도 탄탄해졌다. 또 내편·네편을 나누는 대립과 반목의 정치로 국민이 극단적으로 분열되면서 민주당은 지역사회에서 성역이 됐다. 지역사회 정치적 소수 견해와 집권세력에 대한 비판은 ‘다름이 아닌 틀림’으로 매도돼 설 자리를 잃었다.

우리 속담에 ‘잡아놓은 물고기에는 먹이를 주지 않는다’고 했다. 전북의 이런 정치구도, 선거행태가 지역발전에도 보탬이 되지 않는다는 사실을 수없이 확인했다. 낚싯대를 펴기도 전에 어망에 들어가 있는 물고기에 밑밥을 주며 신경 쓸 낚시꾼은 없다. 물고기를 더 잡아야 하는 어망의 주인도 마찬가지다. 이런 지역에서 변화와 혁신을 기대하기 어렵다.

내년 6월로 예정된 제9회 전국동시지방선거가 7개월여 앞으로 다가왔다. 물밑에서는 이미 선거 레이스가 시작됐다. 지방의원들의 볼썽사나운 줄서기 충성경쟁이 반복되고 있다. 지방정치는 실종되고, 지역 패거리 정치만 횡행하고 있다는 비판의 목소리가 다시 나온다. ‘민주당 공천은 곧 당선’이라는 공식을 만들어 낸 유권자들의 책임이 크다. 입지자들이 지역주민보다 정당과 국회의원 눈치보기·줄서기에 매달리는 것도 바로 이런 정치구도 때문이다. 소중한 국민의 권리를 특정 정당에 통째로 맡겨 놓고서 그들의 줄서기, 줄 세우기 행태를 나무랄 수는 없지 않겠는가.

탄핵정국 이후 우리 사회 분열과 대립, 갈등의 골이 더 깊어졌다. 후보자의 자질이나 공약은 흘려버리고 오로지 정당만 보고 선택하는 ‘묻지마 투표’ 양상이 더 심하게 나타날까 걱정이다. 우리 지역 시장·군수, 지방의원을 사실상 지역주민이 아닌 특정 정당, 지역정치인이 선택하는 비정상적인 선거행태를 이제는 끝내야 한다. 풀뿌리 민주주의의 난맥상을 질타하는 목소리가 여전히 높다. 지역주민이, 유권자가 먼저 바뀌어야 한다. 민주주의에 성역은 없다. 주인의식을 갖고 철저하게 묻고 따져야 한다. 편견을 내려놓고, 다양한 시각과 함께 ‘내가 틀렸을 수 있다’는 생각을 열어두는 자세도 필요하다.

/ 김종표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