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센인들의 애환이 서려있는 익산 왕궁이 생명의 땅으로 변신을 꾀한다.
과거에서 배움을 얻고 위기를 기회로 삼아 아픔을 딛고 자연과 인간이 공존하는 지속가능한 생태도시로 거듭나겠다는 목표다.
3일 익산시에 따르면, 왕궁 자연환경복원사업이 최근 기획재정부 재정사업평가위원회 심의에서 정부 예비타당성조사(예타) 대상사업으로 최종 선정됐다.
이는 정부가 사업의 필요성과 파급 효과를 공식적으로 검토하고 국가사업으로서 추진할 기반을 마련한다는 의미를 갖는다.
2437억 원(국비 1691억 원 포함)이 투입되는 대규모 생태계 복원 프로젝트가 예비타당성 조사를 통과하면, 오는 2033년까지 왕궁면 일대 182만㎡(축구장 255개 규모)의 훼손 지역을 새로운 모습으로 탈바꿈시킬 작업이 본격 추진된다.
왕궁면 일대는 과거 정부의 한센인 격리 정책과 축산업 집중으로 환경이 심각하게 훼손된 지역이다. 1948년부터 한센인들이 강제로 이주해 살게 됐고, 생계를 이어가기 위해 축산업이 장려되면서 악취와 수질오염, 환경 파괴가 누적됐다.
많은 시간이 흐른 뒤 2010년 정부는 부처 합동 왕궁환경개선 종합대책을 수립하고 2011년부터 축사를 하나하나 매입하며 환경 회복의 기초를 다져왔다.
긴 시간 끝에 2023년 축사 매입이 모두 완료됐고, 이제는 자연을 되살리는 복원으로 발걸음을 옮기는 단계다.
왕궁 자연환경복원사업은 크게 두 단계로 나눠 추진된다. 우선 1단계는 ‘자연 생태 복원’에 초점을 맞춘다.
고속도로로 인해 끊긴 생태축을 생태통로로 연결해 야생동물의 자유로운 이동을 가능하게 하고, 파편화된 숲을 다시 잇는 생태숲 조성도 함께 진행된다. 훼손된 생태계를 본래의 건강한 구조로 되돌리는 것이 목표다.
또 자연형 수로 복원과 계단식 논습지 조성을 통해 수질 정화 기능을 회복하고, 수달·맹꽁이·삵·독수리 등 멸종위기 야생생물이 서식할 수 있는 친환경 서식지를 마련한다.
2단계는 ‘사람과 자연이 함께하는 생태 경제 기반 구축’을 목표로 한다. 왕궁 일대를 따라 국가생태탐방로를 조성해 생태교육과 관광을 유도하고, 복원 과정을 기록·전시하는 왕궁 자연회복 기념관이 건립된다.
이와 함께 연구·교육·전시 기능을 겸비한 국립 자연환경복원센터 유치를 추진하고, 생태계서비스 지불제를 도입해 주민들이 복원·관리에 직접 참여하고 이에 대한 보상을 받을 수 있도록 한다는 계획이다.
또 국제적 생태 논의의 장이 될 세계녹색복원엑스포 유치를 통해, 왕궁 생태복원이 국내를 넘어 글로벌 사례로 확산하도록 한다.
현재 왕궁지역에는 이미 멸종위기 야생생물 1급 수달을 비롯해 삵, 맹꽁이, 독수리 등 다양한 생물이 돌아오고 있다. 이는 사람이 떠난 자리에 자연이 돌아온 것이자, 본격적인 복원사업의 가능성을 보여주는 징표다.
긍정적인 변화가 시작된 만큼, 건강한 생태계 회복에 대한 기대감도 한층 높아지고 있다.
예비타당성조사를 위한 첫 관문을 통과한 시는 내년 예타 본조사 통과까지 모든 행정 역량을 집중할 계획이다. 환경부, 전북특별자치도, 정치권 등과의 협업체계를 공고히 하고 사업의 당위성을 철저하게 입증해 최종 통과를 이끌어낸다는 방침이다.
정헌율 시장은 “수십 년 간의 아픔을 간직한 왕궁지역이 치유와 회복의 공간으로 다시 태어날 것”이라며 “익산시민 모두가 자랑스러워할 수 있는 대한민국 대표 생태복원 사업을 성공적으로 추진하겠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