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향에서] 미국 트럼프 행정부의 조세정책과 우리 기업의 대응

김명준(법무법인 태평양 고문, 前 서울지방국세청장)

트럼프 2기 행정부의 조세정책은 한마디로 ‘감세를 통한 국익우선’이다. 미국 제조업의 부활과 국내 일자리 확대를 목표로 세제를 산업정책의 도구로 적극 활용하고 있다. 단순한 감세가 아니라, “어디서 생산하느냐에 따라 세금이 달라지는” 구조적 신호를 던지고 있는 것이다.

대표적인 예가 GILTI(Global Intangible Low-Taxed Income)와 FDDEI(Foreign-Derived Deduction Eligible Income) 제도다. GILTI는 해외 자회사가 저세율 국가에서 벌어들인 소득을 본사 차원에서 과세하는 장치로, 트럼프 2기에서는 과세범위를 확대하는 한편 외국납부세액공제를 90%까지 허용했다. 반면 미국 내에서 생산·수출하는 기업에는 FDDEI 공제를 통해 법인세율(21%)보다 낮은 최대 14%의 실효세율을 적용한다. 즉, “미국에 공장을 세우면 세금이 줄고, 해외에 두면 세금이 늘어난다.”는 명확한 신호다. 여기에 청정에너지 세액공제(IRA)나 리쇼어링 투자공제 등 각종 인센티브가 더해지면서, 미국에 생산거점을 둔 기업은 실제로 법인세 부담이 10%대 중반까지 낮아지는 반면, 해외생산 기업은 GILTI나 BEAT(세원잠식방지세제)로 인해 20%대 세율을 부담해야 한다.

이른바 ‘세율을 통한 산업정책’이다. 예컨대, 한 국내 전자부품 기업은 그간 동남아 공장에서 생산해 미국 완성차업체에 납품해 왔으나, 트럼프 2기 정부 들어 FDDEI 혜택과 상호관세 부과가 동시에 적용되자 미국 현지 조립공장 설립을 검토하고 있다. 세제와 관세가 맞물려 기업의 공급망 구조 자체를 바꾸는 셈이다.

문제는 우리 기업의 대응이 아직 충분히 체계적이지 않다는 점이다. 미국의 제도는 OECD가 주도한 ‘글로벌 최저한세’와 방향이 다르다. 미국은 글로벌 최저한세를 공식적으로 수용하지 않고, GILTI·FDDEI·BEAT 등 자국형 제도를 유지하고 있다. 따라서 한국 기업이 단순히 OECD 기준인 ‘15% 실효세율’만 맞추는 것으로는 부족하다. 계산방식과 과세기준 자체가 다르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어떻게 대응해야 할까. 첫째, 국가별 실효세율(ETR) 시뮬레이션 시스템을 구축해야 한다. 한국·미국·베트남 등 주요 생산거점별로 실제 세부담을 실시간 비교할 수 있어야 한다. 둘째, 세액공제 제도의 국제적 정합성을 점검할 필요가 있다. OECD는 ‘환급가능 세액공제(QRTC)’만을 실효세율 산정시 우호적으로 인정한다. 따라서 정부는 비환급형 R&D 공제나 투자세액공제를 QRTC형으로 전환해 세제 인센티브의 실효성을 높여야 한다. 셋째, 이전가격(Transfer Pricing) 정책의 재설계가 필요하다. 미국 내 기능확대에 맞춰 이익배분 기준을 다시 정비하고 세무당국과의 사전합의(APA)를 통해 리스크를 줄여야 한다.

결국 트럼프 2기 정부의 조세정책은 단순한 감세정책이 아니라, 세금으로 설계된 산업정책이다. 조세가 통상과 외교, 산업전략의 핵심 수단으로 작동하는 시대다. 우리 기업이 이 변화의 파고를 기회로 바꾸려면, 국가별 세제·관세·공급망을 통합 관리하는 글로벌 세무전략 체계를 구축해야 한다. 이제 조세는 단순한 비용이 아니라, 기업 경쟁력을 결정짓는 또 하나의 자본이 되었다.

김명준(법무법인 태평양 고문, 前 서울지방국세청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