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평소 온화하고 신중하던 지인이 어두운 표정으로 찾아왔다. 조심스레 이유를 묻자 한숨 섞인 답이 돌아왔다. “오랜 세월 존경하던 선배에게 실망했습니다.”
그는 오랜 인연의 선배가 금전적 어려움을 호소했을 때 기꺼이 도왔다고 했다. 당시 선배는 간곡히 부탁했고, 그는 어려운 상황에서도 믿음으로 손을 내밀었다. 하지만 선배는 일이 잘 풀리자 태도를 바꿨다. 감사는커녕 도움받은 일조차 잊은 듯 행동했다. 지인의 표정엔 분노보다 허탈함이 짙었다.
나이가 들면 저절로 현명해지고 성숙해질 거라 믿는다. 하지만 현실은 다르다. 세월은 누구에게나 흘러가지만, 그 시간이 모두에게 지혜를 남기진 않는다. 오히려 어떤 이들은 세월 속에서 배은망덕(背恩忘德)을 합리화하고 자기 이익만 좇는다. “그땐 어쩔 수 없었다”는 말 한마디로 신의를 덮고 관계를 계산으로 바꿔버린다.
오래전 한 선배의 말이 떠올랐다. “나이 먹는다고 다 현명해지는 건 아니야. 오히려 비합리적으로 변하는 사람도 있지.” 그땐 과장처럼 들렸지만, 지금은 그 의미가 또렷하다.
우리 사회는 연륜을 존중한다. 나이가 곧 경험이고, 경험이 곧 지혜라 여긴다. 유교 문화의 영향으로 연장자를 공경하는 미풍양속이 뿌리 깊다. 하지만 경험이 반드시 지혜로 이어지는 건 아니다. 세월은 얼굴에 주름을 남기지만, 마음에는 반드시 깊이를 새기지 않는다. 품격은 시간으로 쌓이는 게 아니라 매 순간의 선택으로 만들어진다.
진정한 성숙은 나이를 먹는 일이 아니라 스스로를 돌아보며 부끄럽지 않게 사는 일이다. 은혜를 잊지 않고 약속을 지키는 태도. 그 단단한 마음이 사람의 품격을 결정한다. 누군가는 30년을 살아도 여전히 자기중심적이고, 누군가는 30년을 살며 타인의 아픔을 헤아릴 줄 아는 사람이 된다. 차이는 시간이 아니라 그 시간 동안 무엇을 배우고 어떻게 변화했느냐에 있다.
최근 사회 곳곳에서 원로라 불리는 이들의 민낯이 드러나는 사례를 본다. 지위를 이용한 갑질, 후배에 대한 무례, 공과 사의 혼동. 나이와 경력은 높지만 존경받지 못하는 어른들이다. 세월은 그들에게 권위를 주었지만 품격은 주지 않았다. 그들은 나이를 방패 삼아 자기 행동을 정당화하지만, 주변은 이미 그 허상을 꿰뚫어 본다.
반대로 젊은 나이에도 깊은 품격을 지닌 이들이 있다. 어려운 상황에서도 원칙을 지키고, 작은 은혜도 잊지 않으며, 자신보다 약한 이를 배려하는 사람들. 이들에게선 나이를 뛰어넘는 무게가 느껴진다. 그들은 나이가 아니라 태도로 존중받는다.
결국 중요한 건 살아온 시간이 아니라 그 시간을 어떻게 채웠느냐다. 매일 조금씩 자신을 돌아보고, 잘못을 인정하며, 타인에 대한 예의를 잃지 않으려 애쓰는 사람. 그가 진짜 어른이다. 나이 듦은 자연스러운 현상이지만, 성숙은 의식적인 선택이다.
세월불대인(歲月不待人), 세월은 사람을 기다려주지 않는다. 그 무심한 시간 속에서도 진심을 잃지 않으려면 스스로 마음을 다스릴 줄 알아야 한다. 수기치인(修己治人), 남을 탓하기보다 먼저 자신을 닦는 일. 그것이 품격의 시작이다.
지인과 헤어지며 생각했다. 겉의 나이는 어쩔 수 없지만, 마음만큼은 언제나 곧고 따뜻하게 지키고 싶다. 그리고 언젠가 누군가가 나를 떠올릴 때, 나이가 아니라 사람됨으로 기억되길 바란다. 세월이 깊다고 마음까지 깊은 건 아니지만, 마음을 곧게 지키는 사람은 어느 나이에도 존경받을 것이다.
왕미양 한국여성변호사회 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