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춘예찬] 골목문구생활 ⑤문구 너머의 풍경

김채람 문화기획자

문구점을 시작하며, 우리는 전주의 일상과 골목의 풍경을 담아낼 수 있는 물건을 만들고 싶었다. 우리가 만든 물건이 오래 바라보고 천천히 써 내려갈 수 있는 도구이길 바랐다. 매장을 운영하다 보면 제품이 단지 소비의 대상이 아님을 실감하게 된다. 기록의 틈새에 즐거움을 더하는 스티커, 페이지 위로 번지며 소중한 순간을 환하게 비춰주는 펜과 색연필, 책을 읽다가도 마음에 드는 문장으로 언제든 다시 돌아올 수 있도록 세워두는 작은 이정표 같은 인덱스까지. 아주 작고 가벼운 물건이지만, 읽고 쓰고 기록하는 행위는 결국 나를 돌보는 일과 닮아 있다.

우리가 기획하고 제작하는 제품들도 그러한 감정의 궤적 위에 있다. 단순히 예쁜 문구를 넘어, 지역의 일상과 장소, 정서를 함께 담아내고자 했다. 그 마음을 담은 첫 시도는 ‘클립 마이 시티(Clip my city)’였다. 덕진공원의 오리, 전주천의 버드나무, 팔복동의 이팝나무 철길 등 우리가 사랑하는 풍경들을 일러스트로 표현해 엽서로 제작했다. 계절이 지나 풍경이 바뀌어도, 누군가의 책상 위에 오래 머물며 기억을 환기시키는 물건이길 바랐다.

요즘 매장을 찾은 손님들이 특히 좋아하는 제품은 ‘링 마이 시티(Ring my city)’다. 여행자의 기억을 모아 하나의 고리에 완성하는 열쇠고리다. 전주천의 물결, 향교의 은행나무, 완산동 꽃동산의 겹벚꽃과 같은 아름다운 장면과 전주 초코파이, 콩나물국밥의 콩나물까지. 모두가 같은 도시를 여행하지만 저마다의 기억은 다르다. 이 조각들은 누구에게나 다른 형태의 ‘나만의 전주’를 완성해주는 작은 조각들이다.

곧 문을 여는 전시 「백지: 물과 바람의 시간」은 그동안 관찰하고 수집한 전주 한지를 소재로 한 작은 아카이브이다. 백 번의 손길을 거쳐 백지라고도 불리는 한지의 여정을 쫓으며, 우리의 삶과 닮아 있음을 이야기하려 한다. 대표적인 전주의 특산품을 우리 식대로 재해석하고, 그 이야기를 엽서와 노트에 담으며 우리가 경험한 조각들이 누군가의 손에서 다시 이어지길 바라는 마음에서 준비했다.

문구는 도구이자 기억이고, 또 하나의 풍경이다. 손에 쥐어지는 물건을 통해 마음속에 남는 장면. 우리가 만들고 싶은 문구는 그 너머의 이야기를 오래 간직하게 하는 무언가에 가까워지고 싶다. 아무 말 없이 엽서를 고르던 손님, 진지한 표정으로 연필과 펜을 써보며 고민하는 사람들, ‘여기가 진짜 전주 같아요’라고 말해주던 여행자. 그 순간들마다 우리는 문구를 통해 도시의 결을 느끼고 마음이 닿는 지점을 발견한다.

이따금 상상한다. 누군가의 가방에, 책상 위에, 서랍 한 켠에 오래 남아 있는 우리의 물건이 언젠가 전주의 계절 한 장면을, 골목에서 느꼈던 따뜻함을, 종이 위에 내려앉던 분위기를 떠올리게 해주기를. 그저 물건을 만들고 파는 일을 넘어, 이 도시를 조금 더 오래 기억하는 방식이 되기를. 그러니까, 문구 너머의 풍경까지도 함께 떠올릴 수 있기를.

 

김채람 문화기획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