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복지공동모금회-전북일보 공동 기획] “작은 마음이 큰 변화를 만든다”…남매의 17년 기부와 아이들의 예술 나눔

사랑의열매, 세대와 방식을 잇다 (상) 17년 ‘지속 기부’ 남매와 ‘창의 나눔’ 오감로니

 

 

연말연시를 맞아 우리 주변의 어려운 이웃을 향한 따뜻한 나눔이 이어지고 있다. 이에 전북일보와 전북사회복지공동모금회는 지역 곳곳에서 피어나는 작은 기부와 선행의 이야기를 조명하고, 나눔 문화를 확산하기 위한 연말 기획을 준비했다. 일상의 작은 실천으로 지역사회를 밝히는 이들의 발걸음을 통해 나눔의 가치를 전하고자 한다.

 

“17년째 이어진 남매의 기부… 성인이 되어도 변하지 않는 마음”

남매가 각각 9살, 6살이던 해였다. 당시 글쓰기·그림그리기 대회 부상으로 받은 문화상품권을 어떻게 써야 할지 고민하던 류민준(26‧당시 9세) 씨는 “게임을 안 하기도 하고 쓸 데가 없으니까, 상품권을 기부해 누군가에게 보탬이 되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그렇게 현물 기부를 받는 기관을 찾던 중 전북 사회복지공동모금회(사랑의열매)를 만나게 된 것이 기부의 시작이었다. 6살이던 류채영(23) 씨는 오빠를 따라 자연스레 기부에 동참했고, 그렇게 만들어진 남매의 연말 기부 루틴은 17년째 이어지고 있다.

이후 남매는 매년 학창 시절 동안 방학이 되면 전북 사랑의열매 사무실을 찾았다. 시작은 문화상품권 몇 장이었고, 중·고교생 시절엔 용돈을 차곡차곡 모아 기부했다.

민준 씨는 대학생이 되고도 아르바이트 수입 중 일정 금액을 모아서 연말에 사랑의열매 사무실에 전했고, 류채영 씨는 받은 성적장학금의 일부를 기부했다.

그는 “매달 5만 원씩 조금씩 모으면 1년에 60만 원 정도 기부 금액이 모인다”며 “올해는 대학원 준비 때문에 일을 쉬었지만, 대신 투자 수익을 모아 기부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이렇듯 남매가 꾸준한 기부를 해온 것에는 부모님의 영향도 컸다.

류민준·류채영 남매/전북사랑의열매

남매는 어린 시절 어머니를 따라 아름다운가게 봉사활동‧바자회에 나가며 ‘누군가를 돕는 일’의 가치를 자연스럽게 배웠다. 명절엔 나눔 보따리 행사에 직접 참여해 보기도 했다.

채영 씨는 “적은 금액이라도 누군가에게는 충분히 도움이 된다”며 “금액의 크기보다 마음이 더 중요하다는 걸 어릴 때 경험을 통해 배웠다”고 말했다.

이제 남매에게 연말 기부는 지난 1년의 결산 같은 의미가 됐다.

민준 씨는 “사무실에서 기부금을 전달하고 객사 쪽으로 내려올 때의 기분이 너무 좋아서 매년 오프라인으로 직접 방문해 기부하고 있다”고 했다.

온라인 송금으로 끝나는 ‘기부’와는 확연히 다른 감정이라는 것이다. 17년째 “올해도 왔구나”라는 말로 웃으며 맞아주는 담당 직원 역시 남매에게는 큰 동기부여가 되고 있다.

남매는 앞으로도 기부와 봉사를 평생의 습관으로 이어가겠다는 계획을 밝혔다.

대학원 진학을 준비하고 있는 류민준 씨는 “어떤 직업을 갖든, 기부는 제 삶의 일부가 돼 있을 것”이라고 했다.

한의학과에 진학한 류채영 씨는 “앞으로 의료봉사 등 전문성을 살린 나눔도 더 하고 싶다”고 말했다.

끝으로 경제적 여건 악화로 기부 문화가 전반적으로 위축된 요즘, 남매는 작은 걸음부터 기부를 시작하면 좋겠다고 강조했다.

채영 씨는 “처음엔 문화상품권 몇 장으로 기부를 시작했다”며 “중요한 건 기부 금액이 아니라 마음과 꾸준함”이라고 웃었다.

전주 ‘오감로니’ 어린이 플리마켓, 기부 문화로 확산

홍은경 오감로니 관장/ 조현욱 기자

전주에서 운영되고 있는 어린이 예술교육 공간 ‘오감로니’가 아이들 작품 판매 수익을 기부로 연결하며 새로운 지역 나눔 문화를 만들어 나가고 있다.

단순한 플리마켓을 넘어, 아이들이 직접 기획·제작·판매 과정에 참여하고 그 수익을 어려운 이웃에게 전달하는 방식은 그들이 세상을 바라보는 시각을 바꿨다.

행사를 기획한 홍은경 오감로니 관장은 두 아이를 키운 경험이 플리마켓 운영의 계기가 됐다고 설명했다.

그는 “외국처럼 어린이들이 직접 만든 그림을 판매하는 플리마켓을 보면서 우리도 해보자고 생각했다”며 “돈을 기부하는 개념보다, 아이가 만든 예술 작품으로도 충분히 나눌 수 있다는 걸 보여주고 싶었다”고 말했다.

오감로니 어린이 플리마켓에는 회차마다 20~30여 명의 아이들이 참여한다. 아이들은 자신이 만든 작품에 대한 기획서를 작성하고, 가격도 스스로 책정한다.

홍 관장은 “아이들이 유행하는 작품을 그대로 따라 만들지 않도록, 각자만의 색을 살려보라고 조언한다”며 “그렇게 스스로 기획·준비한 물건이 누군가에게 팔리는 경험을 하면서 책임감과 성취감을 배운다”고 말했다.

아이들이 만든 작품의 개성은 다양하다. 어떤 아이는 큰 상자에 뽑기 기계를 만들어 작은 예술품을 넣어 판매했고, 또 다른 아이는 직접 그린 그림을 액자 형태로 꾸며 선보였다. 방문객들은 천 원짜리 뽑기나 간단한 미술품을 구매하면서 “아이들만이 할 수 있는 기발한 발상”이라며 호응했다.

오감로니 플리마켓에 참여하고 있는 어린이들/전북사랑의 열매

홍 관장은 “어디에 기부금이 쓰였는지 아이들에게 꼭 알려준다”며 “그러자 아이들이 다음 플리마켓은 언제 하냐며 스스로 찾아올 정도”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금액이 많지 않아도 취지가 변하지 않는 것이 중요하다”고 덧붙였다.

이렇게 예술을 체험하는 동시에 기부에도 참여한 아이들이 친구를 데려오며, 플리마켓의 규모는 해마다 늘고 있다. 행사 뒤에는 “도움이 필요한 친구들을 돕고 싶다”는 아이들의 목소리가 자연스럽게 나온다. 

그는 “아이들이 세상을 바라보는 시각이 달라졌다”며 “만들었던 작품을 집에서도 이어 하고, 기부의 의미를 스스로 이해하는 모습을 보면 더 오래 이어가야겠다는 확신이 든다”고 말했다.

홍 관장은 어린이·어르신이 함께 참여하는 컬러링북 제작, 전시 연계 기부 등 새로운 방식도 고민 중이다.

그는 “예술은 사람을 웃게 하고 편안하게 만든다”며 “아이들이 예술로 세상과 따뜻하게 관계 맺는 경험을 앞으로도 이어가고 싶다”고 앞으로의 계획을 밝혔다.

김문경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