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화제가 된 공연이 있다. 이란의 여성 바이올리니스트 파니즈 파르유세피가 지휘한 테헤란심포니오케스트라의 무대다. 지난 11월 13일, 테헤란의 바다트홀에서 열린 연주회에서 파르유세피는 머리에 검은색 히잡을 쓰고 손목과 발목을 완전히 가린 검은색 옷을 입고 지휘봉을 잡았다. 테헤란심포니는 이란에서 가장 오래되고 규모가 큰 오케스트라지만, 여성 지휘자가 공연을 이끈 것은 처음이었다.
이란은 1979년 이슬람혁명 이후 공공장소에서 여성의 히잡 착용을 법적으로 의무화하고 여성의 공적 활동을 까다롭게 규제해 왔다. 음악과 공연 예술 분야도 예외가 아니었다. 특히 오케스트라 지휘는 남성의 영역이어서 대형 콘서트에서 여성이 지휘자로 무대에 서는 것은 상상하기조차 어려운 일이었다. 더욱이 테헤란심포니는 여성 단원이 있긴 하지만, 국가 공식 행사에서는 남성 단원만 연주에 참여시킬 정도로 보수적인 오케스트라다. 파르유세피의 테헤란심포니 지휘에 세계적 관심이 쏠린 이유가 여기에 있다.
이란의 히잡 문화는 이슬람 이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고대 페르시아 제국의 귀족 여성들이 착용했던 히잡이 시작인데, 이때의 히잡은 종교적 규범보다는 신분과 품위를 상징하는 의미가 강했다. 이후 이슬람이 확산되면서 히잡 문화도 널리 자리 잡았지만, 20세기 초 팔라비 왕조 시대에는 근대화를 앞세워 오히려 히잡을 금지하기도 했다. 이러한 히잡이 여성의 공적 규범으로 의무화된 것은 이슬람혁명 이후다. 히잡은 이때부터 단순히 종교 규범이 아니라 이슬람 체제의 정체성을 상징하는 법적 장치로 기능했다. 공공장소에서 여성의 히잡 의무화는 체제 정체성을 공고히 하는 수단이었고, 여성의 공적 활동을 규제하는 핵심 도구였다. 그러나 1990년대 이후 여성들의 히잡 의무화에 대한 저항 운동이 시작되면서 히잡은 이란 사회의 주요 정치 이슈이자 저항의 상징이 됐다.
사실 여성의 공적 활동이 제한되어 있는 이란에서뿐 아니라 세계적으로도 여성 지휘자는 여전히 소수다. 갈수록 여성 지휘자들이 늘고 있지만, 세계적인 오케스트라 지휘자로 이름을 올린 지휘자는 10% 남짓에 불과하다. 예술적 역량과 성취에도 불구하고 오케스트라 무대가 여성 지휘자들에게 여전히 높은 벽이라는 증거다.
이런 상황에서 여성의 공적 활동에 가장 보수적인 이란의 첫 여성 지휘자가 된 파르유세피의 등장은 의미가 크다. 파르유세피는 그날 연주를 여성 작곡가들의 작품으로 꾸렸다. 여성들의 가능성과 잠재력을 보여주려는 선택이었을 것이다. 그는 “내 경험이 다른 음악가들에게 새로운 길을 열어준다면 좋겠다”고 말했다. 음악을 넘어 사회와 시대를 향한 선언, 그 울림이 깊다.
김은정 선임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