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범한 인물들의 미세한 감정⋯최아현 작가가 들여다본 세계

2018년 전북일보 신춘문예로 등단한 최아현 작가 첫 소설집 ‘밍키’ 펴내 일상의 사소한 순간, 평범한 인물의 감정 세밀하게 포착한 8편의 단편 담겨 “다음 단계로 넘어가는 시작점”이라며 연작 단편집 작업에 대한 포부도

최아현 작가

꼬불거리는 짧은 머리와 동그란 안경, 화장기 없는 수수한 얼굴에는 아직 앳된 구석이 남아 있다. 갈색 코트 차림이 더해져 귀여운 인상을 주지만, 그가 걸어온 시간은 초년 작가의 경력이라 하기엔 묵직하다. 학창 시절 글쓰기 대회에서 성과를 냈고 자연스럽게 ‘글 쓰는 직장인’을 꿈꿨다는 그는 대학 막학기 교수의 한마디에 등을 떠밀리듯 신춘문예에 투고했고, 결국 등단에 이르렀다. 2018년 전북일보 신춘문예 당선자, 최아현(30·익산) 작가다.

밍키 표지/사진-교보문고

그가 첫 소설집 <밍키>(고유서가)를 펴냈다. 일상에서 스쳐 지나가는 장면들, 이름도 남지 않을 평범한 이들의 미세한 감정들이 여덟 편의 단편으로 묶였다. 20대와 30대 초입의 감각을 고스란히 담은 기록이기도 하다. “아직 실감이 잘 나지 않는다”며 그는 첫 책 견본도 받아보지 못했다며 웃었다.

등단 당시를 묻자 그는 “그저 글 쓰는 직장인이 되고 싶었다”고 했다. 역사학 전공생이던 그는 우연히 시나리오 수업을 참관했고, 담당 교수의 “한 번 해봐라”는 말에 용기를 내 투고한 작품이 등단작이 됐다. 작가는 “4~5년이면 첫 책이 나올 줄 알았는데, 이게 안 되나 싶다가 결국 나왔다”며 “드디어 다음 단계로 넘어가는 느낌”이라고 말했다.

이번 소설집에는 기존 발표작 3편과 2022년 이후 쓴 신작들이 실렸다. 주변에서는 “초기작과 최근작의 차이가 뚜렷하다”고 했지만 그는 “늘 비슷하게 마음에 안 든다”며 겸손하게 웃었다. 다만 책으로 묶어보니 공통된 결이 분명해졌다는 점은 인정했다. 엄마와 딸, 가족관계, 결정을 미루는 인물들 등 20대 시절 자신의 시선에 가까운 1인칭 이야기가 자연스럽게 녹아 있다.

표제작 ‘밍키’의 주인공은 자기 이름으로 된 것이 하나도 없는 중년 여성이다. 남편 명의의 휴대전화, 타인의 판단에 좌우되는 삶. 그는 “자기 이름으로 된 무언가를 갖고 싶어 하는 인물의 욕망을 그렸다”고 설명했다. 또 다른 작품 ‘대원의 소원’에는 “콘서트 관람과 딸 결혼식, 두 소원이 같은 날 찾아오는 바쁜 중년 남성이 등장한다”고 했다. 욕망을 품는 인물에게 특히 마음이 간다는 것이다.

최 작가의 소설은 큰 사건보다 인물의 작은 움직임과 감정을 세밀하게 포착하는 것이 특징이다. 비결을 묻자 그는 “관찰이라기보다 딴생각을 많이 한다”고 했다. “저 사람 왜 저럴까, 왜 그럴 수밖에 없을까. 그 ‘왜’를 오래 붙잡다 보면 장면이 떠오르고 이야기가 시작된다”고 말했다. 실제로 ‘밍키’는 천장에 돈을 숨기던 아주머니에게서, ‘대원의 소원’은 안예은의 음악을 조용히 듣던 택시기사에게서 출발했다.

작품 속 인물들은 종종 외로움을 말하지만 그는 “정작 나는 외로움을 잘 느끼지 않는 편”이라고 했다. 오히려 그 감정이 궁금했기에 쓰기 시작했다고 한다. 그러면서 작가는 “사람들이 왜 외롭다고 할까, 왜 가까운 관계일수록 서로에게 기대려고 할까. 내가 잘 모르는 감정을 인물에게서 탐구하는 과정이었다”고 설명했다.

전주를 배경으로 한 단편도 있다. 그는 “전주시민이라면 ‘리빙 포인트’를 재밌게 읽을 것”이라며 “전주천과 구도심 풍경이 자연스럽게 떠오를 것”이라고 했다. 남성 화자가 등장하는 유일한 작품 ‘대원의 소원’도 “유쾌한 글을 쓰고 싶어서 넣었다”고 말했다.

앞으로의 작업에 대해 그는 “갑자기 변신하려 하지 않겠다”고 했다. 단편 형식의 연작을 구상 중이라고도 귀띔했다. 그러면서 그는 “언젠가 올리브 키터리지처럼, 하나의 마을을 중심으로 이어지는 단편집을 쓰고 싶다”고 덧붙였다.

도내에서 활동하는 작가로서 지역 문학 생태에 대한 생각도 전했다. 최 작가는 “문화예술은 소비되면서도 보존해야 하는 대상이라 복합적이지만, 전주는 도서관과 독서 행사가 꾸준히 활성화된 도시라 좋은 환경이라고 생각한다”며 “문학 행사가 더 많아졌으면 한다”고 말했다.

첫 소설집 출간을 앞두고 “아직 얼떨떨하다”고 했지만, 그의 말과 문장에서는 이미 다음 이야기를 향한 추진력이 느껴졌다. 일상의 작은 균열을 포착하는 감각, ‘왜’라는 질문에서 시작하는 호기심. 그것이 최아현 작가가 구축해가는 소설 세계의 힘이었다.

전현아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