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도 어김없이 전국 곳곳에서 119구급대원들이 국민의 생명을 지키기 위해 하루 수십 건의 현장을 오가고 있다. 갑작스러운 사고와 예기치 못한 위급 상황 속에서 가장 먼저 달려가 손을 내미는 사람들이 바로 이들이다. 하지만 도움의 손길을 내미는 순간, 감사가 아닌 폭언과 폭행이 되돌아오는 현실은 여전히 반복되고 있다.
소방청 통계에 따르면 최근 3년간(2022년~2024년) 전국에서 구급대원 폭행 피해는 799건에 달했다. 이 중 85%가 술에 취한 상태에서 발생했는데, ‘이송 병원이 불만족스럽다.’, ‘구급차가 늦게 왔다.’는 등 사소한 이유로 분노를 표출하며 구급대원을 위협하는 일이 빈번하다. 성희롱이나 기물 파손과 같은 2차 피해까지 이어지며, 구급대원들은 극심한 정신적 스트레스와 불안에 시달린다.
문제는 폭력이 단순한 일탈행위로 끝나지 않는다는 점이다. 폭행이 발생하는 순간 응급처치는 중단되고, 이는 곧 환자의 생명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친다. 실제로 단 몇 분의 지연이 골든타임을 놓치게 만들 수 있고, 또 다른 시민의 생명을 위태롭게 할 수 있다. 나아가 폭력을 경험한 구급대원은 심리적 위축과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PTSD)에 시달리며 현장 출동 자체를 두려워하게 되는 경우도 있다.
현행 법령에는 구급대원에 대한 폭행을 엄격하게 처벌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소방기본법과 119구조·구급에 관한 법률에 따르면 구급활동을 방해한 경우 최대 5년 이하의 징역 또는 5천만원 이하의 벌금형까지 선고될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실제 현장에서의 처벌은 대부분 벌금형이나 기소유예에 그치며, 폭력 억제 효과를 기대하기 어려운 실정이다. 낮은 처벌 강도는 결국 또 다른 폭력을 부르는 악순환을 만들고 있다.
전북소방본부는 이러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구급차 내 CCTV 설치, 폭행상황 대비 구급차 자동 경고·신고 장치 보급, 웨어러블 캠 및 다기능 조끼 보급, 경찰과의 공동 대응 강화 등 다양한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또한 ‘올바른 119구급차’ 이용 문화 확산을 위한 단계별 홍보를 지속하며 국민 공감대 형성을 위해 힘쓰고 있다. 하지만 이러한 제도적 장치만으로는 모든 문제를 해결하기 어렵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전북특별자치도 한 사람 한 사람의 성숙한 시민 의식과 배려이다.
특히 최근 고령 인구 증가와 복합재난의 빈번화로 구급현장은 더욱 복잡해지고 있다. 현장의 위험요소가 다양해지는 만큼, 구급대원에 대한 폭력 방지와 안전 확보는 선택이 아닌 필수적 과제가 됐다. 구급대원들이 마음 편히 현장에 집중할 수 있는 환경이 마련되어야만, 우리 사회 전체의 대응 역량 역시 한 단계 더 강화될 수 있다.
구급대원들은 단 한 사람의 생명을 살리기 위해 잠시도 주저하지 않는다. 이들이 안전하게 임무를 수행할 수 있을 때 비로소 국민의 생명도 온전히 지켜진다. 구급대원에 대한 폭행은 결국 우리 사회 전체의 안전망을 무너뜨리는 위험한 행동임을 다시 한 번 기억해야 한다.
구급대원이 국민에게 내미는 손이 두려움이 아닌 신뢰와 존중의 손길이 될 수 있도록, 우리 모두가 한 마음으로 힘을 모아 주길 바란다. 폭행 없는 안전한 현장, 존중이 있는 대한민국이 될 때, 우리는 더 건강한 사회로 나아갈 수 있을 것이다. 더 나아가 이러한 문화가 일상 전반으로 퍼져 서로를 배려하는 공동체 의식이 자리 잡는다면, 재난과 위기 상황에서도 더욱 단단한 사회적 연대가 형성될 것이다. 작은 인식의 변화가 한 생명을 살리고, 더 나은 공동체를 만드는 출발점이 될 수 있다. /김선화 (변호사·전북소방본부 법률고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