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린 듯하면서도 강인한 시 정신으로 전북시단을 지켜온 백승연 시인이 신간 <빈집>(신세계문학)을 펴냈다.
1990년 <동양문학>에 시 ‘6월의 노래’와 ‘이슬’을 추천받아 문단에 데뷔한 백 시인은 이번 시집에서 혁명을 꿈꾸는 상상력의 세계를 펼쳐 보인다.
“바람이 시도 때도 없이 훑고 지나가겠지// 창문이 열리고 방문이 열리고/ 대문이 열리고/ 마침내 바람에 몽땅 털린 세간살이// 사람의 온기까지/ 트럭 채 싣고 떠나버린/ 바람 숭숭한 집//(…중략…)// 베란다 난간에/ 간신히 터 잡고 싹을 틔워/ 나팔나팔 햇살 따라/ 고개 돌리며 주인 행세를 한다”(‘빈집’ 부분)
시인의 언어는 일상의 세계를 시적 상상력을 통해서 초월하려는 욕망을 말한다. 자잘한 삶의 결을 관찰하는 시인의 시선은 비루한 일상에서 탈출을 속삭이는 거짓된 낭만이나 구원의 신기루를 바라지 않는다.
표제작 ‘빈집’ 역시 누군가 항상 살고 있지만 언젠가는 비워지고 마는, 실존의 가장 정직한 모습을 시로 담아냈다. 시인은 세상의 모든 집들은 이미 빈집일지도 모른다는 가정으로 시를 풀어낸다. 그래서 너무도 친숙하지만, 너무나 낯선 공간으로 집을 완전히 전복시키고 돌연성을 부여해 해방감을 선사한다.
시집은 한국어와 영어 번역이 나란히 실려 있다. 영어 번역에는 뜻을 설명하는 각주는 따로 달려 있지 않는다. 이는 영어 네이티브라면 즉각 해석이 가능할 테지만 영어에 익숙하지 않는 독자라면 한국어와 영어 번역의 차이에 고개를 갸웃할 수도 있다. 독해의 차이겠지만 한국어가 지닌 언어적 힘이 주는 감동과 쾌감이 묵직하다.
백승연 시인은 시인의 말에서 “어느 드라마의 늙은 주인공이 ‘내 몸뚱이가 역사랑게’하던 문장이 생각난다”라며 “살고 보니 내 몸도 역사의 중요한 순간순간을 살아온 듯하다”라고 밝혔다.
백 시인은 전북문단, 군산문학, 청사초롱, 나루 등 다양한 동인 활동을 통해 지역 문학 발전에 노력하는 인물이다. 시인은 사소하고 일상적인 사물들에서 무의식을 파고드는 정확한 이미지의 시를 쓰고 있다. 저서로는 <바람의 뒷모습> <겨울잠행> 등 다수의 시집을 발표했다.
박은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