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문=전북이 ‘인공태양(핵융합 핵심 기술 개발 및 첨단 인프라 구축 사업)유치전에서 전남 나주를 상대로 고배를 마셨다.
그런데 전북에선 “정치적으로 밀렸다“라는 추정만 있을 뿐 정작 우리가 뭘 하려다 실패했는지, 저들이 어떤 무기로 이겼는지는 아무도 제대로 설명해주지 않고 있다.
공모 사업을 진행한 과학기술정보통신부와 한국연구재단은 물론 당사자인 전북도와 전북정치권도 두 자치단체의 희비를 가른 결정적 차이에 대해선 말을 아끼고 있다.
전북일보가 핵융합 연구와 관련한 각종 논문과 전문가 취재 등을 통해 내린 결론은 이 싸움은 애초에 ‘땅의 성질’ 즉 지반에서 승부가 갈렸다.
여기에 전남 나주의 준비된 서사가 있었다. 그렇다고 해서 새만금이 무리한 도전을 한 것은 아니다. 어떤 성격의 산업을 유치하고, 전략을 세울지에 대한 나침반을 이번 사태가 제공해줬기 때문이다.
도민이 패배의 이유를 알고, 전북이 다음을 준비하기 위해 알아야 할 진짜 인공태양 이야기를 풀어본다.
△도대체 인공태양이 뭐길래?…인공태양의 심장 ‘토카막(Tokamak)’
인공태양 연구사업에서 정부와 연구재단이 전남 나주를 선택한 배경을 정확히 파악하려면 핵융합 발전을 위한 장치인 토카막에 대한 이해가 필요하다.
왜 전남 나주가 농지와 묘지 등으로 이뤄진 부지를 선정해, 주민동의서를 받고 특별법 통과를 전제로 나섰는지에 관한 의문도 토카막의 구조를 보면 어느정도 해소될 수 있다.
일단 나주는 ‘화강암 지대’를 전면에 내세웠다. 여기에 지진 횟수를 거론해 안정적인 부지임을 내세웠다.
토카막이라는 장치는 ‘인공태양의 심장’으로 1억 도의 작은 태양을 담을 거대 도넛 모양의 장치다.
핵융합 발전의 핵심은 태양처럼 스스로 타오르는 에너지 덩어리다. 현재는 지구상 어떤 그릇도 이 온도를 견딜 수 없다. 그래서 강력한 자기장으로 공중에 띄워 놓아야 한다.
도넛 모양의 진공 용기 안에 1억 도의 플라즈마를 띄우는 것이 토카막의 실체다. 도넛 모양 튜브 안에 불꽃이 둥둥 떠 있는 형상이다.
이 장치는 초정밀 거대 자석 덩어리다. 수천 톤짜리 기계가 1mm의 오차도 없이, 진동 없이 버텨야 한다. 만약 지진 등으로 지반이 조금이라도 흔들리거나, 가라앉으면(침하) 수조 원짜리 기계가 멈춘다.
이 경우 다시 엄청난 전기를 끌어다 써야 하고, 뜨거운 열을 식힐 물(냉각수)이 필요하다.
인공태양 부지는 단순한 ‘발전소’나 ‘연구 시설’ 부지가 아니라 ‘가장 단단하고, 가장 조용하고, 가장 예민한 땅’이어야 한다.
실제로 새만금은 기본적으로 바다를 메운 땅인 간척지로 지반 안정성 부분에서 나주와 점수가 차이가 난 것으로 알려졌다.
△세계 주요 인공태양 연구시설은 어디에 있나
인공태양 시절 중 가장 대표적인 시설은 프랑스 카다라쉬에 있는 ITER(국제핵융합실험로)다.
이곳은 원래 프랑스 원자력청(CEA) 연구단지가 있던 곳으로 지반이 석회암 암반으로 매우 단단하고 지난 수백 년간 지진 피해가 거의 없던 곳으로 평가된다.
그 다음으로 참고할만한 곳은 일본 이바라키현 나카시에 있는 JT-60SA다.
유독 지진이 잦은 일본은 일본 원자력연구개발기구(JAEA)가 있던 부지 중에서도 가장 지반이 단단한 홍적대지(단단한 흙층)를 골라 내진 설계를 보강했다.
대전 유성구의 KSTAR 역시 마찬가지다. 대덕연구단지 한국핵융합에너지연구원 내에 위치한다. 대덕연구단지는 산과 구릉을 낀 내륙 분지형 지형이다.
즉 기존 연구단지 안에서 인프라를 공유하고, 검증된 단단한 지반을 선호한다는 게 인공태양 부지의 일반론이다.
전남은 광주의 2011년 사례에서 힌트를 얻었다.
당시 이들은 이명박 정부의 역점 사업이던 중이온가속기 유치 경쟁에서 대전 대덕연구단지에 패배했는데 주요 실패 원인에 지반 안전성 격차가 명시됐다.
△화강암 방패와 완성형 서사 앞세운 나주의 치명적 결함
나주는 “우리는 지하가 단단한 화강암 통반석이다“, ”지난 50년 동안 지진 피해가 없었다“는 점을 집요하게 파고들었다.
여기에 한국전력 본사가 있고, 한국에너지공과대학교(켄텍)등 에너지 밸리가 있다고 곁들였다.
부지 확보에 대해선 주민 서명을 받고, 유치위원회를 돌리며 ”우리는 반대 민원 없다“는 걸 어필했다. 이 점은 전북이 인정해야 할 요인이다.
그러나 이번 공모 과정에서 절차적 하자는 반드시 짚고 넘어가야 한다.
공고문에는 분명 “소유권 확보가 쉬운 땅을 우대한다”고 했다. 이 원칙대로라면 새만금이 이겨야 했다. 이 ‘룰 파괴’에 대해서는 전북정치권이 끝까지 따져 물어야 한다.
이제 전남도와 나주시는 특별법 제정을 위한 시간과의 싸움에 돌입했다.
이들에게 베스트 시나리오는 민주당 주도로 특별법 신속 통과시켜 묘지와 농지 조기 정리해 계획대로 착공에 들어가는 것이다.
그러나 남원 공공의대의 사례처럼 법안 통과는 국회의 몫으로 톱니바퀴 하나가 어긋나면 하염없는 기다림이 불가피하다.
또 실제 세부 조정 과정이나 땅을 엎는 작업에 시간이 더 소요되고 갈등이 있을 수도 있다.
서울=김윤정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