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주제 다가서기
얼굴을 스치는 바람이 쌀쌀하게 느껴지던 11월의 어느 날, 진안 마이산 탑사와 진안군 자원봉사센터가 어르신들을 초청해 생신 잔치를 개최했다는 소식을 듣고 마음이 데워졌다. 벌써 14년째를 맞이한 이 행사에 올해 95세를 맞은 어르신을 비롯해 지역 어르신들이 함께했다. 케이크와 노래, 식사와 겨울 이불을 선물받으신 그분들은 “이 나이에 생일상을 받을 줄 몰랐다.”라며 환하게 웃으셨다.
그러나 오늘날, 이러한 장면은 드물다. AI와 로봇, 전기차 등 첨단 문물에 대한 찬사로 점철된 매체 속에서 노인은 폭염과 혹한, 고독의 그림자를 뒤집어쓴 무력한 존재로 그려진다. 가족이 없어도, 있어도 외로운 그들은 빈곤과 고독사의 위험에 노출돼 있다. 이것은 결코 나이 듦에 따라 응당 받아들여야 하는 소멸의 단계가 아니라, ‘돌봄의 윤리’가 퇴색한 자리에 드리워진 상처다. 노인을 향한 시선에 냉랭함이 차오르는 순간, 한 세대의 기억이 흐르는 강물이 마르고, 지혜와 연륜의 씨앗은 다음 세대로 건너가지 못한 채 생명력을 잃는다.
노인은 오랜 가치를 품어 온 증인이자, 세대를 잇는 다리다. 독일의 ‘세대 간 공동주거’ 모델에서는 노인과 청년이 함께 살며 서로의 삶을 지탱한다. 미국의 ‘StoryCorps’는 노인의 생애를 기록해 세대 간 소통에 기여하고 공동체의 역사를 쌓는다. 조선 인조 때 범재 심대부는 명절에 노인들에게 쌀과 고기를 보내 주었으며, 영종 때에는 수령이 양로하는 것을 연례로 삼았다. 나라와 시대가 달라도, 노인을 향한 존중은 이렇듯 공동체의 품격을 지켜낸다.
우리나라 노인 자살률은 OECD 평균의 2.3배로, 원인은 빈곤과 고립, 우울증 등이다. 문명이 급속도로 발달할수록 노인의 소외감은 깊어진다. 이런 시대일수록 어르신에 대한 관심과 애정은 우리 삶의 튼튼한 받침대가 된다. 돌봄은 이웃집 어르신을 위한 헌신이 아니라 우리가 안심하고 평화롭게 맞이할 노년의 풍경을 미리 그려 가는 일이자, 다음 세대가 머무를 삶의 자리를 함께 가꾸는 일이다.
이번 토론 활동에서는 우리나라 노인 문제의 현주소를 짚어 보고 노인 복지 정책을 탄탄히 세우기 위한 방안을 논의해 보도록 한다.
2. 주제 관련 2022 교육과정 성취기준
·[12사문04-03] 복지 국가의 발전 과정에 대한 이해를 바탕으로 사회 복지 제도의 유형과 특징을 비교하고, 현대 사회에서 나타나고 있는 사회 복지를 둘러싼 쟁점을 토론한다.
·[12기가03-04] 후반기 인생 설계의 중요성과 웰다잉의 의미 탐색을 위하여 노년기의 발달 특성을 이해하며 노년기 삶의 존중 및 나이듦에 대한 긍정적 인식을 함양하고, 유니버설디자인의 배경과 맥락을 파악하여 노년기 생활에 적용할 수 있는 방안을 탐구한다.
3. 주제 관련 기사 읽기
·[기사1] 탑골의 노인(국민일보 2025-11-29)
·[기사2] 돌봄복지국가, 마을에 달려 있다(경향신문 2025-10-29)
·[기사3] ‘고령친화도시’, 정부가 공인해준다…지역정책에 노인 참여 가능해야(한겨레 2025-12-01)
4. 동기유발 질문
여러분이 75세가 되었을 때, 어떤 마을과 어떤 사람들이 여러분 곁에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하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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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기사 읽고 활동하기
[기사1]
[창] 탑골의 노인
“내용은 뭐 없어요. 그냥 생각나는 대로 지껄이다 가는 거예요.” 김 씨 할아버지는 멋쩍다는 듯 말했다. 옆 사람과 방금까지 무슨 이야기를 나눴는지 묻자 나온 대답이다. 올해 여든일곱이라는 그는 아침 댓바람부터 줄곧 서울 종로구 탑골공원 정자 계단에 앉아 있었다. 가을 끝자락이라 제법 바람이 찼다. 돌계단이 시리진 않냐는 질문에 깔고 앉은 스티로폼 포장지를 가리켰다. 집에서 직접 들고 온 모양이었다.
김 씨가 탑골공원을 찾기 시작한 건 지난 봄이다. 가을쯤 아내가 치매에 걸려 요양원에 가고 몇 달이 지난 뒤였다. 아내 없이 빈방에서 우두커니 TV만 바라보고 있노라니 견딜 수 없었다고 했다. 출가한 자식들이 동네 복지센터라도 가보라고 했지만 가서 모르는 사람들과 새로 관계를 맺는 일이 부담스러웠다. 그는 오전 6시 20분에 버스를 타고 집을 나서 저녁까지 내내 공원 정자에 머물다 일과를 마친다.
비단 외로움 때문만은 아니다. 손에 쥔 구깃한 무료급식 대기표 역시 새벽같이 집을 나서는 이유다. 오전 7시에 공원에 도착해 받은 그 종이에는 3번째 줄 13번째를 뜻하는 숫자가 적혔다. 100명씩 5줄을 서는 중에 절반 안쪽이니 그래도 나쁘지 않은 번호다. 100번대 순번을 받으려면 새벽 4시 반 내지는 5시부터 와 있어야 한다. 버스도 안 다니는 그 시간에 올 수 있는 건 공원 근처 고시원에 사는 노인들뿐이라고 했다.
오전 11시쯤 김 씨는 자리를 털고 일어났다. 아니나 다를까 공원에 앉아 있던 다른 이들도 하나둘 정문 쪽으로 향하고 있었다. 수백 명 노인과 노숙인, 전동휠체어에 탄 장애인이 공원 정문 앞에 도열해 도시락을 기다리는 모습은 아는 사람은 익숙한 진풍경이다. 발걸음이 잰 이들은 먼저 도시락을 받아 근처 다른 급식소로 뜀박질한다. 한 노인은 도시락 5개를 챙겨 2000원씩 팔아먹는 젊은이도 있더라며 얼굴을 붉혔다.
노인들이 오는 곳은 다양하다. 무료 버스와 지하철을 타고 가깝게는 서울시내부터 멀게는 인천, 더 멀게는 충남 천안에서도 온다. 일흔을 갓 넘긴 비교적 젊은 노인부터 100세도 넘은 1920년대생 노인까지 나이대도 제각각이다. 이들은 종종 말을 섞지만 이름은 좀체 묻지 않는다. 앞서 적었듯 관계맺기가 부담스러워서다. 익명이 보장된 채로 외로움을 달래는, 이를테면 그들 나름의 오프라인 랜덤채팅방인 셈이다.
그들이 탑골공원에 모이는 건 어찌 보면 필연적이다. 오래 앉지 못하게 벤치 등받이를 없애고, 모일 곳을 없애려 녹지 공간을 억지로 늘려 놨지만 그걸로 노인들을 공원 밖으로 흩어놓진 못한다. 돈을 지불 않고선 온전히 쉴 자격조차 얻을 수 없는 이 사회에서 그들이 머무를 곳은 여기뿐이다. 10분만 걸으면 빌딩 숲속 직장인과 관광객이 오가는 번드르르한 카페와 식당이 수두룩하지만 그들에겐 닿지 않는 세상이다.
공원의 노인들은 종종 천덕꾸러기 취급을 받는다. 지난 8월 공원 북문 바깥에서 장기 두던 이들이 쫓겨난 것도 그랬다. 사실 처음 있는 일도 아니다. 예전에도 노인들은 공원 안에 모여 장기를 뒀지만 2002년 월드컵을 앞두고 공원 담벼락 바깥으로 쫓겨나다시피 했다. 어찌 됐든 이번 조치 뒤 장기판 주변에 모여들던 만취한 노숙인과 노상방뇨 무리가 상당수 사라졌단 소식에 사람들은 박수부터 보냈다.
그러나 냄새나는 것을 덮는다 해서 문제를 해결할 수는 없다. 노인들의 장기판을 엎어 버리는 것으로는 사실 본질적으로 달라지는 게 없다는 얘기다. 오늘날 대책 없이 빈곤에 내몰리고, 외로움을 달랠 공동체조차 해체된 이들은 공원 너머에도 넘치게 많기 때문이다. 우울한 표정으로 탑골공원에 앉아 있는 노인들의 풍경은 얼핏 낯설고 이질적일지 모르지만, 사실 우리 사회가 감당 못한 여러 모순을 민낯으로 드러내고 있다.
탑골공원에서 종로3가역 쪽으로 걷다 보면 종묘공원이 나온다. 탑골공원에서 장기 두던 20~30명은 이곳으로 옮겨왔다. 무료급식을 받느라 하루 두어 번 이상 노인의 느린 걸음으로 탑골공원 쪽을 오가야 하지만 개의치 않는다. 장기말과 바둑알이 번갈아 ‘딱, 딱’ 소리를 내며 분주한 사이 서로 어깨를 툭툭 치며 아는 척을 하고 웃음도 짓는다. 적어도 이곳에서만큼은 그들의 일상 역시 우리와 그리 다르지 않았다. 그 미소를 보며 어쩌면 해답이 먼 데 있지는 않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발췌: 국민일보 2025-11-29, 조효석 기자)
1-1. 탑골공원에 모인 노인들의 모습을 통해 드러나는 노인 빈곤과 고립의 원인이 무엇인지 생각해 봅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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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 노인들의 특정한 공간 의존 현상을 ‘개인의 선택’으로 볼 것인지, 아니면 ‘사회가 만들어 낸 조건’으로 볼 것인지 자신의 관점을 밝히고 이유를 제시해 봅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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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세대·지역·정부의 역할을 구체적으로 제안해 봅시다. (예: 지역 커뮤니티 모델, 공공 공간 설계, 복지 서비스 접근성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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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2]
돌봄복지국가, 마을에 달려 있다
(전략) 돌봄을 생각하면 다른 사람의 보살핌을 받는 평안함보다는 걱정과 두려움이 먼저 떠오르는 게 현실이다. 돌봄이 요구되는 처지는 절박하나 우리 사회 대응은 더디고 부실한 탓이다. 대표적 사례가 요양 돌봄이다. 누구든 노인이 되고 돌봄이 필요한 긴 노년을 맞아야 하건만, 우리의 요양 체제는 모두의 마음을 무겁게 만든다. 가족이 병원에 입원하면 의료비보다 간병비가 더 부담이고, 거동이 불편해 요양시설에 의존할 경우 부모와 자식 모두 세상에서 헤어짐을 준비하듯 마음이 착잡하다.
진정 모두가 평안할 수 있는 돌봄복지국가로 갈 수 있을까? 이 길을 가려면 반드시 갖추어야 할 토대가 바로 ‘마을’이다. 돌봄은 ‘내가 사는 곳에서 요양·의료·주거·생활 등을 통합적으로 누리는 것’을 의미한다. 이는 현금이나 물품을 제공하는 복지와 달리 함께 사는 공간에서 사람들을 통해서만 구현될 수 있다. 돌봄에 필요한 제도·시설·예산 모두 사는 곳에서 작동하기에, 지역공동체로서 마을이 존재해야 하는 것이다. 내년 통합돌봄을 계기로 앞으로 돌봄복지국가를 향한 모든 정책과 활동이 ‘마을 만들기’와 결합해야 한다.
마을 만들기! 물론 어려운 과제다. 마을은 읍면동 행정구역이 아니라 주민들이 서로 어우러져 사는 지역공동체다. 위로부터 설계되거나 조성될 수 없는 풀뿌리 생활 공간이다. 아래로부터 주민들의 돈독한 관계망을 가진 마을을 만들기 위해 두 가지를 제안한다.
우선, 내년 통합돌봄 체계를 구축하면서 사회연대경제를 대대적으로 육성하자. 기존 사회적경제가 사회적기업, 협동조합, 마을기업, 자활기업 등을 포괄하면서 사회적 가치를 주로 강조했다면, 사회연대경제는 여기에 주민들의 연대성과 호혜성, 지역공동체 연계성을 중시하면서 다양한 풀뿌리 활동을 포괄한다. 근래 유엔도 사회적경제보다 사회연대경제 개념을 사용하고 있으며 국내 단체들도 그러하다. 이를 위해서는 중앙정부 차원에서 사회연대경제 육성을 위한 종합계획이 필요하며, 지자체 역시 통합돌봄 추진에서 사회연대경제를 중심에 두어야 한다. 경기 광명시는 통합돌봄 조례의 제1조(목적)에 ‘돌봄의 사회화를 위한 사회적경제조직의 육성 및 참여’를 명시했다. 용어는 아직 예전 방식이지만, 통합돌봄의 나아갈 방향을 명확하게 담고 있는 모델 사례다.
또 하나는 마을 주민자치의 실질화다. 주민자치는 ‘자신이 살고 있는 지역사회의 주요 사안에 대한 자기 의사결정과 책임’을 의미한다. 통합돌봄이 누구보다 이웃끼리 상호 의존해야 하기에 지역사회 일상을 주관하는 주민자치는 통합돌봄의 기반이 될 수 있다. 현재 전국 읍면동에 설치된 주민자치회의 활동은 대부분이 몇개 프로그램을 운영하는 수준에 머물고 있다. 주민자치회 역량의 한계도 있지만 더 큰 문제는 제도적 제약이다. 앞으로 주민자치회가 읍면동 행정에서 주민 생활과 밀접한 사안에 대해 협의권을 행사하고, 일부는 주민참여 방식으로 직접 위탁 운영하도록 해야 한다. 나아가 읍면동장도 공무원이 잠시 머물러 가는 직책이 아니라 주민 추천 혹은 공모제로 지역 주민들에게 개방되어야 한다. 이렇게 ‘얼굴이 보이는 지역사회’에서 주민참여가 구현될 때 돌봄의 관계망도 튼튼해질 것이다.
장수가 축복이 아니라 걱정인 세상이다. 무엇보다 ‘돌봄 불안’ 때문이다. 현재 노인도, 노인이 될 중장년도 모두 이 두려움에서 살고 있다. 상황이 절박한 만큼, 이제는 길을 찾자. 마을을 만들자.
(발췌: 경향신문 2025-10-29, 오건호 기자)
2-1. 가족 기반 돌봄이 한계에 부딪히는 구체적 사례(간병비 부담, 요양시설 이용의 감정적 갈등 등)를 찾아 이야기해 봅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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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 주민자치회·사회연대경제·지역 공동체가 약한 지역에서는 어떤 문제가 발생할지 생각해 봅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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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 여러분이 살고 있는 지역에서 가능한 ‘마을 기반 돌봄 모델’을 구상해 봅시다. (예: 청소년–노인 교류 프로그램, 마을 돌봄 거점 공간, 주민 자치 기반 활동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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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3]
‘고령친화도시’, 정부가 공인해준다…지역정책에 노인 참여 가능해야
정부가 노인을 위한 돌봄과 안전 인프라 확보 등 정부 공인 ‘고령친화도시’의 기준을 마련한다. 앞으로는 지방자치단체에서 우후죽순 ‘고령친화’란 표어를 내걸기는 어려울 전망이다.
보건복지부는 1일 이런 내용의 ‘노인복지법 시행령’ 일부 개정령안을 지난달 20일부터 이달 29일까지 입법예고 한다고 밝혔다. ‘고령친화도시’의 기준을 제시하고, 정부가 이를 직접 인증해 지원하겠다는 취지다. 개정령안이 시행되면, ‘고령친화도시’란 표어는 정부의 심사를 통과해야 쓸 수 있는 국가 공인 타이틀로 바뀐다.
개정령안을 보면, 고령친화도시로 지정되기 위해서는 지역 정책 등에 노인이 능동적으로 참여할 수 있어야 하고, 노인의 역량을 강화할 수 있는 환경이 마련돼야 한다. 노인을 위한 돌봄과 안전 인프라도 확충해야 한다. 아울러 건강증진 등 활력 있는 노후 생활을 구현할 수 있는 정책 운영 실적도 심사 기준이 된다. 단순히 노인에게 필요한 돌봄과 안전을 확보해야할 뿐 아니라, 고령친화도시에서는 노인이 주체성과 능동성을 발휘할 수 있어야 한다는 취지다.
지자체가 고령친화도시로 지정받기 위해서는 고령친화도시 조성 계획과 지정 기준을 충족했다는 내용의 서류를 복지부에 내야 한다. 복지부는 이를 심사해 기준을 충족하고, 수행할 능력이 있는 곳을 지정한다. 고령친화도시로 지정되면 복지부 누리집에 게재되고, 관련 교육과 자문 협력체계 구축, 홍보 등을 복지부가 지원한다. 다만, 고령친화도시로 한번 지정됐다고 해서 인증이 영구적으로 계속되는 것은 아니다. 개정령안은 고령친화도시 인증의 유효기간을 5년으로 규정한다. 인증을 받았더라도 5년 뒤에는 재심사를 받아야 한다. 처음 인증을 받을 때만 바싹 고령 친화 환경을 구축하고, 관리를 소홀히 하는 경우를 차단하겠다는 의지다. 또 부정한 방법으로 고령친화도시 인증을 따내거나, 지정 당시 제출한 조성계획 등을 지키지 않으면, 중간에라도 고령친화도시 지정이 취소된다.
(발췌: 한겨레 2025-12-01, 손지민 기자)
3-1. ‘제대로 된 고령친화도시’가 갖추어야 할 핵심 요건에 대해 생각해 봅시다. (예: 실제 노인 참여 정도, 이동권·안전 인프라, 돌봄 접근성, 문화·사회 활동 기회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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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2. 노인이 정책 과정에 참여하지 못하면 구체적으로 어떤 문제가 발생할 것인지 생각해 봅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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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3. 여러분이 살고 있는 지역에서 노인들이 실제로 참여할 수 있는 지역 정책 구조(주민회의, 정책 제안단, 마을 의사결정 과정 등)를 제안해 봅시다.
/ 산서고등학교 이혜영 교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