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전주 한옥마을에 자리한 전북도지사 관사 ‘하얀양옥집’이 53년 만에 도민의 품으로 돌아왔다. 매 분기 도민 참여형 전시가 열리며, 색다른 예술 실험으로 주목을 받아왔다.
올해 마지막 전시는 더욱 특별하다. 내년 2월 28일까지 열리는 <서툴지만 반가운, 나의 예술!>은 김제 용평마을·고창 월봉마을·완주 화정마을 어르신 23명과 전북 예술인 이랑고랑·책마을해리·쟈니컴퍼니 3팀이 함께 만들었다.
전시는 김제 용평마을(영상물), 고창 월봉마을(시), 완주 화정마을(영상물) 순서로 이어진다. 김제는 마을 사람이 목격했다는 도깨비 이야기를, 고창은 삶 속에 스며들었던 세월을, 완주는 한평생 살아온 마을을 작품에 담았다.
짧게는 한 달, 길게는 서너 달 동안 덜덜 떨리는 손을 부여 잡고, 굽은 허리를 꼿꼿이 펴고 완성한 결과물이다. 각 마을의 초고령 어르신들을 직접 만나봤다. 작품을 만들고, 이렇게 많은 사람이 오가는 공간에 전시하니 어떤지, 어떤 삶을 살았는지 물었다.
다들 “늙은이에게 이런 기회를 줘서 고맙다”고 말했지만, 그 안에는 늦은 나이에 비로소 예술을 접한 어르신들의 조용한 기쁨이 느껴졌다.
옛날 같으면 땅 속에 있었을 텐데, 시대를 잘 타고 났당게요.
김제 용평마을에 사는 ‘늦깎이 배우’ 박점순(91) 씨는 오늘도 마을회관으로 출근 도장을 찍는다. 구순을 넘긴 나이에 몸은 예전 같지 않지만, 배움에 대한 열정 하나로 길을 나서는 발걸음만큼은 누구보다 당차다.
박 씨는 “평소 걸어 다니는 게 쉽지 않다. 그래도 선생님이 왔다고 하면 지팡이 짚고, 보행 보조기 밀고, 전동차 타고 꼭 나간다. 아무것도 아닌 시골 늙은이들을 위해서 이렇게 다 해 주는데, 얼마나 고마운지 모른다”고 설명했다.
특히 최근 배우로 활동 중인 그는 “이번에는 무서운 것처럼 움찔거리는 연기를 하라고 했다. 연기라고 할 것도 없는데, 한 번에 잘했다고 했다. 선생님들이 다 준비해 왔고, 나는 가만히 앉아서 놀라는 척만 했다”면서 너스레를 떨었다. 이전에 청소년 영화제에서 대상을 수상한 작품에 참여하기도 했다.
약속된 인터뷰 시간은 이미 30분을 훌쩍 넘겼지만, 이야기를 들을수록 그의 인생이 더 궁금해졌다. 지금 살고 있는 이곳을 천당이라고 표현하면서 행복해 하는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가장 물어보고 싶었던 건 ‘팔팔 청춘’의 공통 질문인 인생 조언이었다. 박 씨는 “내가 살던 시대와 지금은 하늘과 땅 차이”라면서도 “묻지도 말고, 따지지도 말고, 착하게 살아야 한다. 남한테 피해 주지 말고, 남 눈총 받지 말고, 내 도리는 내가 해야 한다”고 삶의 원칙을 밝혔다.
하다가 귀찮으면 집에 가버려. 근데 잘하면 재미 있잖어, 안 그려?
지난달 말 눈이 내린 고창 월봉마을에서 만난 작가 최복수(89)·최영애(79) 씨의 말 한 마디 한 마디는 주옥같았다. 웃을 때는 마치 10대 소녀처럼 수줍어 보였지만, 이야기만 시작하면 단숨에 인생 선배의 얼굴로 바뀌었다.
이번 전시회를 준비하는 과정이 어땠느냐는 질문에도 예상 밖의 답이 돌아왔다.
복수·영애 씨 모두 “하다가 귀찮고, 피곤하면 집에 다녀오기도 했다. 재미 있으면 또 하고, 그랬다. 나이 앞에 장사 없다“며 ”못된 짓거리 안 하고 살고 싶은데, 그게 참 어렵다”고 입을 모았다. 몸이 성하지 않다 보니 오랜 시간 작업하는 게 힘들었던 어르신들이다.
이렇게 시행착오를 겪으며 짧은 시에 기나긴 삶을 다 담았다. 놀랍게도 작품 하나에서 그들의 삶이 다 느껴졌다. 작품을 보면서 두 어르신의 어릴 적 이야기가 궁금했다. 그래서 꿈을 물었지만, 대답은 ‘나’가 아닌 자식들에게 초점이 맞춰져 있었다.
복수 씨는 “애만 키웠다. 애들 키우고, 결혼 잘 시키는 게 꿈이었다”고, 영애 씨도 “우리 자식들 착하게 잘 크고, 잘 되는 게 내 꿈이었다”고 했다.
또 이 마을에서 결혼하고, 자식들을 키우며 살아온 두 어르신의 마을 사랑도 남달랐다.
복수 씨는 “다들 잘 지내서 큰 사고 없이 사는 것 같다. 배추도 맛있고, 대파도 맛있고, 얼마나 재미있는지 모르겠다”고, 영애 씨는 “젊은 사람들도 꽤 많이 살고 있는데, 성실하게 잘 산다. 그게 자랑이다”고 답했다.
이 나이 먹드락 안 죽고 이렇게 사니까 얼마나 재미 있어.
김제 용평마을은 배우 박점순, 고창 월봉마을은 작가 최복수·최영애가 산다면 완주 화정마을은 가수 이장순(91)이 산다. 연로한 나이에 목소리도 잘 나오지 않지만, 노래 부를 때만큼은 가수 저리 가라다.
이 씨는 “어떨 때는 말할 때도 목소리가 안 나온다. 올라가고 내려가는 것도 안 돼서 노래는 못 부르겠다고 했다. 그래도 해 보라고 해서 했는데, 잘 됐는지 모르겠다”면서 수줍게 웃었다.
노래가 잘 나왔다는 기자의 말에 누구보다 환한 미소를 지었다.
그러면서 “전북일보 기자님들이랑 노래 부르는 (쟈니컴퍼니) 선생님들이 와서 같이 해 주니까 너무 재미가 있다. 늙은이들한테 이렇게까지 해 주는데, 어떻게 안 좋을 수가 있겠느나”면서 “이것도 걸어 다닐 수 있으니까 한다. 이런 걸 할 수 있는 시대에 살고 있다는 게 참 기쁘다”고 했다.
이처럼 작은 활동에도 즐거움을 느끼는 이 씨에게도 한때 꿈은 있었다. 어린 시절 학교에 다니지 못하게 한 부모님 탓에 공부라는 것조차 제대로 알지 못했다. 그가 가슴 깊숙이 숨겨 놓은 꿈은 경찰이었다.
그는 “이제 내 꿈이 무엇이었는지 기억도 안 난다. 배우지도 못 했는데, 생각만 하는 것 말고 할 수 있는 게 없다. 그때는 다 그랬다”며 담담하게 말했다.
그러면서 요즘 사람들은 다들 꿈도 이루고 하지 않느냐며 “그냥 다들 재미있게 잘 살면 좋겠다. 지금 생각해 보면 주변 사람들과 잘 지내는 게 최고인 듯하다. 옆에 있을 때는 중요한지 몰라도, 늙으면 있을 때 잘할 걸 생각이 든다“고 조언했다.
디지털뉴스부=박현우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