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세기를 건너온 삶, 고창의 노래가 되다

어르신 12인의 기억을 담은 구술생애사 『살아온 날이 다 노래다』 발간

 “동냥질을 해서라도 자식은 가르쳐야 한다”는 103세 박화순 어르신. /사진작가 박유자 제공

고창 어르신들의 삶과 기억을 구술로 기록한 인생 기록집 『살아온 날이 다 노래다』가 발간됐다. 이 책은 초고령 사회로 접어든 오늘, 한 세기를 건너온 어르신들의 생애를 개인의 회고를 넘어 지역 공동체의 역사이자 문화유산으로 남기기 위해 제작된 기록물이다.

고창문화관광재단이 주관하고 고창 무장이 고향인 정명혜 광주남부대학교 교수와 박유자 사진작가가 협업해 집필한 이 책에는 만 90세 이상 어르신 12명의 생애가 구술체로 담겼다. 

“노인 한 분의 기억은 박물관 하나와 같다”는 문제의식에서 출발한 이번 작업은, 기록되지 않으면 함께 사라질 수밖에 없는 공동체의 기억을 남기기 위한 시도다. 제작진은 어르신들의 말투와 사투리, 호흡까지 최대한 살려 기록했으며, 특정한 해석이나 평가를 덧붙이기보다 ‘말 그대로의 기억’을 존중하는 방식을 택했다.

책에 담긴 열두 명의 삶은 크게 네 갈래의 서사로 읽힌다. 가난 속에서도 자녀 교육을 포기하지 않았던 어머니들의 삶, 교육·의료·정치·기록 활동으로 지역을 이끌어온 인물들의 생애, 한지·목공·국악 등 장인정신으로 문화를 이어온 사람들, 그리고 전쟁과 빈곤을 건너오며 공동체를 지켜낸 여성들의 치열한 삶이다.

103세 박화순 어르신은 “동냥질을 해서라도 자식은 가르쳐야 한다”는 말로 자신의 삶을 요약한다. 반상진 어르신은 의료와 교육으로 지역을 섬긴 삶을 살아왔고, 이갑술 어르신은 사라져가는 고창 한지의 마지막 기억을 몸으로 간직한 장인이었다. 

이들의 이야기는 개인사를 넘어 고창이라는 지역의 현대사를 입체적으로 구성한다. 학교와 병원이 세워지고, 마을이 형성되고, 산업이 들어서며 공동체가 변화하는 과정이 한 사람 한 사람의 삶을 통해 자연스럽게 드러난다.

정명혜 교수는 “기록은 자료를 모으는 일이 아니라 사람을 존중하는 데서 시작된다”며 “어르신들의 말씨와 숨결을 그대로 옮긴 이유는 그 안에 한 세대의 지혜와 공동체의 정서가 담겨 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한편 『살아온 날이 다 노래다』 출판기념회는 오는 12월 29일 오후 1시 10분, 고창문화의전당 1층에서 열리며, 책에 수록된 어르신들의 삶을 담은 사진과 영상 전시도 함께 진행될 예정이다.

한 세기를 건너온 삶은 저마다 달랐지만, 그 모든 시간은 하나의 노래처럼 이어지고 있었다. 『살아온 날이 다 노래다』는 그 노래를 잊히지 않게 남긴, 고창의 조용하고 깊은 문화 기록이다.

고창=박현표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