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 번을 거절한 끝에 나는 남편과 캠핑을 같이 가기로 했다. 그의 갑작스런 캠핑에 대한 열정, 자연인에 대한 열광에 감응해서는 아니었다. 당신은 그냥 가만히 맥주나 마시고 놀다가 밥 해주면 먹고 경치 감상만 하면 돼, 일은 내가 다 할게, 라는 말을 액면 그대로 믿어서도 아니었다. 한 번쯤 양보해줄 때가 되었다는 생각이었다. 어차피 남편은 내가 캠핑을 좋아하지 않는다는 걸 받아들이지 못했다. 공기 좋은 곳에서 아름다운 자연을 벗 삼아 하루를 지내는 것, 바비큐를 하고 맥주를 마시고, 보이스카웃 놀이를 하는 것이 싫을 수 있음을 이해하지 못하는 것이다. 그렇지 않고서야, 주기적으로 내게 캠핑을 가자 할 리 없지.
당신도 가보면 좋아할 거라니까.
나보다 자기가 더 나를 잘 알 거라 단정하는 성격도 참 바뀌지 않는다.
어쨌든 가기로 결정을 하고 나자 오히려 마음이 편했다. 며칠 전 교재용 자료를 검토하다가 한 장의 흑백사진을 발견하기 전까지는. 전쟁으로 폐허가 된 거리가 찍힌 그 사진을 보고 나는 나도 모르게 작가의 이름을 확인했다. 자말리 오닐. 자말리? 불쑥 손짓한 12년 전의 시간 속에서 나는 남이섬을 기억해냈다. 그때는 이번에 가기로 한 캠핑장이 들어서기 전이었지만 확실히 같은 장소였다. 잠시 당혹스러웠지만 이제 와서 어렵게 잡은 일정을 취소할 수는 없었다.
그때가 몇 살 때였는지는 정확히 기억나지 않는다. 초등학교 일이학년쯤이었을 것이다. 방 안에 들어오는 햇살을 어머니의 손거울로 비춰 동생의 눈에 되쏘는 장난을 치고 있었다. 그러다 우연히 손거울을 벽에 걸린 큰 거울에 비추었다. 내가 든 손거울에, 큰 거울에 비친 내 모습이 비쳤고, 그 거울 속의 나는 손거울을 들고 있으므로 그 손거울에는 내 모습이 되비쳤다. 그런 식으로 무한히 반복되어, 거울 안에서 수십, 수백 명의 내가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광학적 원리를 동원할 것도 없는 그 단순한 현상은 어린 나의 상상력을 사로잡았다. 거울 속에서 마법의 세계를 발견한 것 같았다. 그 시절 유행하던 TV 만화영화의 영향일 터였지만, 나는 여러 개의 내가 있는 세계가 어딘가에 있다고 남몰래 믿었다. 그 스펙터클을 엄마에게 보여주었을 때 심드렁한 반응 때문에 더는 아무에게도 말하지 않았지만, 나의 믿음—혹은 바람—은 나중에 거울이 단순히 투명한 유리 뒷면에 수은이나 은을 칠한 것에 불과하다는 사실을 알게 된 이후로도 한동안 계속되었다. 혼자 심심할 때면 거울 놀이를 하면서 거울 속의 나, ‘나들’이 조금씩 다른 사람이지 않을까 상상하기도 했다. 어린 시절 나의 상상은 이렇다.
여기 거울 밖에 선 나는 거울에 비칠 때 조금 달라진다. 세상의 어떤 거울도 100퍼센트 그 사람을 똑같이 전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조금 달라진 내가 두 번째로 거울에 비칠 때는 다시 또 조금 달라진다. 그리고 그 내가 다시 세 번째로 거울에 비칠 때는 또 조금. 이런 식으로 무한히 반복되다 보면 나중에 저 거울 앞에 서 있는 사람은 나와 닮았지만 내가 아닌, 나라고도 할 수 있고, 아니라고도 할 수 있는 어떤 사람이 된다고. 언제부터 거울 놀이를 하지 않게 되었는지는 모른다. 그것은 처음에 왔을 때처럼 그저 사라졌고, 한때 그토록 열중했던 놀이가 어느새 잊히듯이 나도 모르게 잊혔다.
어른이 된 후 몇 번인가 그 이야기를 꺼내놓았고— 대개는 마음이 말랑해진 술자리에서— 처음 맞장구를 쳐준 사람이 자말리였다. 결혼 전 다니던 직장의 동료 재이의 소개로 만난 자말리는 자메이카 출신의 유엔 직원으로 서울에서 파견 근무를 하고 있었다. 재이의 미국인 남자친구까지 넷이 함께했던 자리에서였다. 어, 너도? 어린 시절의 사소한 비밀과 경탄을 나누었다는 사실은 우리를 급속하게 가까워지게 했다. 하지만, 결국 지금 내 옆에 있는 사람은 자말리가 아니다. 나를 결혼에 이르게 한 것은 비밀스러운 마법이 아니라 현실적 고려였다. 이른바 결혼 적령기가 넘친 나이와 비슷한 사회적 경제적 위치, 그리고 둘 다 젊은 날 품기 마련인 낭만적 사랑에 대한 기대를 이미 접고 있었다는 사실 같은 것들. 지금의 나는 퇴직 후 본격적으로 사들인 어마어마한 캠핑 장비를 챙기며 들떠있는 남편을 보며 속으로 작게 한숨을 쉬고 있다.
생각보다 안 막히네.
내가 뭐래, 일요일이 더 안 막힌다니까.
자기 주장이 맞았음을 증명하게 되어 기분이 좋아진 남편은 말이 많아진다.
그러니까 말야. 인간의 몸은 몇 조 개의 세포로 되어 있고 오늘 살아 있는 세포는 내일은 전혀 같은 게 아니란 말이지.
그렇다. 그래서 7년마다 신체의 모든 세포가 새로운 세포로 바뀐다. 즉 7년 주기로 다른 몸이 된다는 것. 흥미로운 이야기다. 문제는, 내가 이 얘기를 아흔아홉 번은 들었다는 사실이다. 다른 책이나 유튜브 등을 통해 들은 것을 빼더라도. 전공은 남북관계사이지만 원래 과학— 나는 잡학이라고 생각하지만—에 관심이 많은 데다 마흔 중반을 넘기면서 부쩍 말이 많아진 남편은 한 말을 하고 또 하고, 매번 할 때마다 새롭게 신이 나서 떠들었다. 기억력도 조금씩 감퇴하는 모양이었다. 이제 신체의 장기나 부위마다 교체 속도가 달라서, 예를 들어, 피부나 장 세포는 수개월마다 새로워지며 간 조직은 3년이 걸린다는 얘기로 이어질 것이다. 아니면 뇌세포는, 불행히도, 거의 교체되지 않는다는 대목으로 건너뛸지도 모른다. 남편이 직장을 다닐 때는 상관없었지만 지난 연말 이른 퇴직을 한 이후 사정은 크게 달라졌다. 몇 년 전부터 재택근무를 하는 나와 같이 보내는 시간이 갑자기 많아졌기 때문이다. 각자의 독립적인 시간과 공간을 확보하는 것이 큰 숙제가 되었다. 나는 남편의 도돌이표 대화를 견뎌내기 위해 건성으로 듣기 기술을 발전시켰다. 적당한 간격으로 그러게, 어머, 응 하면서 머릿속으로는 점심 메뉴 같은 걸 생각했다. 그러거나 말거나 남편은 혼자서도 잘 떠들었다. 그래도, 운전할 때는 좀 운전에 집중하지. 나는 가방 속에 든 노이즈캔슬링 헤드셋에 생각이 미쳤지만 꺼내지는 않았다.
먼저 결혼한 친구들이 남편과 싸우고 홧김에 가방을 샀느니 할 때는 내심 유치하다 생각했지만 실제로 그런 책략은 꽤 효과가 있었다. 사소한 갈등이 있을 때는 남편에게 작은 승리를 만끽하게 해주고 대신 값비싼 물건을 하나씩 사서 몸에 지니거나, 그가 야근하는 날 한우 살치살 같은 걸 혼자 구워 고급 와인과 함께 먹었다. 딱히 고기를 좋아하지도 않으면서 단지 그가 살치살을 좋아한다는 이유로. 감정의 수지를 맞춰가는 산술게임을 통해 나는 겉으로 평온한 결혼 생활을 이어갔다. 그렇게 싸움을 중단하거나 우회하는 것은 지혜나 관용이라 부르기는 열적었고, 그저 감정적 에너지를 낭비하지 않기 위한 합리적 생존 전략이라고 믿었다.
휴게소 잠깐 들를게.
또?
나는 그냥 갔으면 했지만 더는 말하지 않았다. 남편은 나이 탓인지 밤에도 한두 차례 깨어 화장실에 갔고, 잠이 얕아진 나도 덩달아 깼다. 하지만, 남자들이 신체 일부의 기능에 과도하게 자존심을 연결시키곤 한다는 생각에 모르는 체했다. 그가 연구원을 그만두겠다고 선언했을 때도 그랬다. 머릿속에 이른 퇴직의 댓가, 포기해야 할 지위와 안락함 같은 것들이 맴돌았으나, ‘그동안 구라는 칠 만큼 쳤어,’라고 말하며 지었던 자조적 표정을 보자 더 이상 반대할 수 없었다. 아이가 없는 우리는 이미 안정된 경제력을 갖추었고 서로의 자존심은 지켜주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나는 캠핑 사이트에 딸린 테이블에 앉아 캔맥주를 마시며 남편이 텐트를 펼치고 폴대를 하나하나 끼우는 모습을 다소 삐딱하게 지켜보았다. 대단한 캠핑 애호가처럼 굴지만 태생이 백면서생인 남편은 몸을 쓰는 일에 약하다. 캠핑에 대한 전문성은 주로 좋은 장비를 비교하고 사들이는 데에 발휘되었고, 막상 캠핑장에서는 반(反)캠핑주의자인 나보다 크게 나아보이지 않았다. 물론 나는 하도 원해서 한번 와주었다는 시혜자의 포지션을 고수했으며 적극적으로 나서 도울 생각은 전혀 없었다. 애초에 사서 고생을 하고 싶어 온 것 아닌가. 나는 다 마신 맥주캔을 구겨놓고 화장실에 다녀오겠다고 일어섰다. 휴가철이 지나 캠핑장은 한적했고, 텐트를 걷는 사람들의 어깨 위로 초가을 오후의 햇살이 떨어지고 있었다. 누군가 틀어놓은 음악이 들려왔다. 제목은 떠오르지 않았지만 귀에 익은 멜로디는 어슴푸레한 향수를 불러일으켰다.
재이는 내가 일하던 압구정동의 한 토플 전문 어학원 강사였다. 같은 팀에 배정되어 나는 리딩 파트를, 재이는 리스닝 파트를 가르쳤는데 우리는 처음부터 죽이 잘 맞았다. 나이대가 비슷한 여자이며 국내파라는 공통점 때문이기도 했을 것이다. 유학을 전제로 하는 토플 학원에서는 해외파를 선호하는 풍조가 강해, 말 그대로 국내에서만 영어를 공부한 국내파는 어학 실력과 교수 스킬이나 경험 등이 우세해도 밀리는 분위기였다. 특히, 방학 때면 학비를 벌기 위해 미 명문대 재학생들이 단기 아르바이트를 하러 귀국하곤 했는데 그들은 프린스턴이나 컬럼비아 출신이라는 이름만으로도 수강생과 학부형들에게 인기가 높았다. 엄밀히 말하면 재이는 순수 국내파는 아니었다. 혼자 힘으로 워싱턴 DC 소재의 대학에 다니는 중으로, 당시 학비를 벌기 위해 휴학을 하고 있었으니까. 나는 재이의 부드러운 강인함에 끌렸고, 나보다 두세 살 어린데도 언니처럼 의지했다. 나중에 그녀가 교육 사업에 꿈을 품고 있으며 그 꿈을 이루기 위해 애쓰고 있음을 알았을 때는 존경하는 마음까지 품게 되었다. 온화하고 성실한 재이를 누구나 좋아했다. 재이 옆에 있으면 나는 좀 부족한 사람, 심지어 경박하고 이기적인 사람처럼 느껴지기도 했지만, 그런 감정을 쉽게 뛰어넘을 정도로 나는 재이가 좋았다. 우리는 수업이 끝난 후에도 곧잘 어울려 술을 마셨고, 때때로 늦어지면 학원 근처 재이의 오피스텔에서 밤을 새우고 바로 출근하기도 했다.
재이에게는 에릭이라는 미국인 남자 친구가 있었다. 어떤 사람이냐는 내 말에 재이는 그가 기버(giver)라고 대답했다. 나는 말의 내용보다는 그 말을 할 때 재이의 얼굴에 번지던 따뜻한 웃음 때문에 그가 좋은 사람일 거라고 확신했다. 재이는 에릭의 어릴적 친구가 일 때문에 서울에 오게 되었다며 같이 만나자고 했다.
카페에 들어서자 재이 일행이 보였다. 외국인이나 독특한 차림의 젊은이들로 넘쳐나는 홍대 앞에서도 단연 눈에 띄는 두 남자 중 안경을 쓴 지적인 타입이 에릭, 건장한 쪽이 그의 친구인 자말리였다. 에릭은 프로그래머로 글로벌기업의 한국지사에서 일했고 자말리는 유엔 직원으로 한국에서 3개월 정도 파견 근무를 하게 되었다고 했다.
자말리의 첫인상은 압도적이었다. 190센티미터는 되어 보이는 키에 두툼한 흉곽, 살짝 붉은 기운이 도는 갈색 피부의 그는 스파르타의 전사처럼 보였다. 자말리가 걷는 주위로는 작게 물결이 갈라지듯 미묘한 공간이 생기고 그곳이 조용한 찬탄, 약간의 호기심과 어쩌면 두려움—내가 그에게 느낀 감흥의 다양한 변주—의 눈길로 채워졌다. 40대 후반으로 보이는 한 아저씨는 사진을 찍어도 되냐고 청하기까지 했다. 자말리는 선선히 그러라 했는데, 불쾌할 수 있는 제안을 언짢아하지 않으면서, 도를 넘지 않는 친절로 받아주는 그의 태도에 나는 얼마간 매료되었다. 위압적인 외모와 달리 자말리는 조용하고 수줍은 데가 있어, 거기서 오는 부조화가 그에게 모종의 사랑스러움을 주었다. 그날 이후 우리 넷은 종종 함께 어울렸고, 어느 때부턴가 자말리와 내가 따로 만나기 시작했다.
자말리는 시간이 날 때면 카메라를 매고 낯선 도시의 골목을 헤매기를 즐겼다. 나도 여러 차례 동행하여 삼십여 년 동안 모르고 살았던 도시의 아름다움을 발견했고 때로는 열정적인 아마추어 작가의 피사체가 되어주었다. 종일 걸어서 피곤해지면 그가 묵고 있던 레지던스에 가기도 했다. 서울에 파견 나온 유엔 직원을 위한 임시 숙소로 쓰이던 그곳은 직원 세 명이 함께 사용했지만, 출장과 지역 행사 등으로 자말리가 혼자 쓸 때도 많았다. 숙소는 구도심 한가운데 있었지만, 거리의 소음은 그가 묵는 15층까지 도달하지 않았다. 마스터베드룸의 창으로는 제법 큰 나무들이 우거진 오래된 학교 교정이 내려다보였다. 자말리는 숙소에 딸린 널따란 주방에서 이국적인 요리들을 만들곤 했다.
그런 날 중의 하루였다. 자말리가 주방에서 치킨타진을 끓이는 동안, 나는 거실에서 자말리가 찍은 사진들을 뒤적이고 있었다. 흑백의 화면에 잡힌, 거미줄처럼 얽힌 골목, 세월이 내려앉은 기와집, 이가 맞지 않고 변색한 보도블록, 촘촘하게 자리한 노포의 간판들. 공기 중에는 매캐하고 향긋한 냄새가 떠돌았다. 이윽고 자말리가 나를 부르더니, 타진 남비—모로코 출신 직원이 두고 갔다고 했다—를 식탁에 내려놓고 과장된 동작으로 뚜껑을 열었다.
많이 드세요.
자말리가 한국어로 말했다. 한국어를 막 배우기 시작한 자말리는 어설픈 표현으로 나를 즐겁게 하곤 했다. 맛있게가 아니라 많이 먹으라니, 한국식 인사법은 이상하다고 내가 말하자, 자말리는 너는 많이 먹어야 한다고 엄마처럼 말했다. 항상 식사를 조절하는 내가 마음에 걸린 모양이었다.
나의 이십 대와 삼십 대는 완벽한 육체에 대한 강박에 사로잡혀 있었다. 현대인의 만트라가 되어버린 듯한 다이어트의 차원을 넘어, 야생동물처럼 강인하고 효율적인 신체라는 이상은 상당히 오랜 기간 나를 지배하였다. 당시 인기 작가 무라카미 하루키의 소설 <1Q84>에서 주인공이 한 ‘육체야말로 인간의 신전’이라는 말에 깊이 공감한 나는 다양한 식단 조절과 수련—온갖 종목의 스포츠와 댄스—에 변덕스럽게 몰두했으나, 모든 이상이 그러하듯이 영원히 가 닿을 수 없어 현실에서 예정된 좌절이 폭음이나 폭식으로 보상되기 일쑤였다. 수면 아래서 이루어지는 이런 싸움과 실패를 어찌어찌 감출 수 있던 나는 주변인들에게 자기 관리를 잘하는 사람쯤으로 여겨졌다. 하지만, 자말리는 달랐다. 자말리는 몸이 관리의 대상이라는 것을 이해하지 못했다.
몸은 맞서 싸울 상대가 아니야. 내 편이지.
그렇지만, 너무 제멋대로 굴게 두면 사고를 치잖아.
자말리는 고개를 가볍게 저으며 닭고기 한 덩이를 내 접시에 놓아주었다. 그는 몸은 자기 편이며 무엇보다 즐거움의 원천이라고 했다. 연중 온화한 카리브해의 태양 아래 자라난 사람의 몸에 대한 감각은 다를 거라고 나는 멋대로 짐작하였다.
함께 시간을 보내는 동안 나는 자말리에 대해 조금씩 더 알게 되었다. 자메이카에 있는 형이 육상 국가대표 출신이라는 것, 어릴 때 부모가 이혼하고 어머니와 함께 미국에 왔다는 것 등. 여러 곳을 돌아다니며 사람들을 돕는 게 좋아서 지금의 일을 선택했지만, 정말 하고 싶은 것은 사진을 찍는 거라고도 했다. 기회가 닿는다면 직업 사진작가로 세계를 돌아다니며 사진을 찍고 싶다고 했다. 그 말을 할 때 자말리가 눈을 빛내는 것이 나는 부러웠다.
너는, 너는 뭘 하고 싶어?
나?
머릿속으로 막연하게 품었던 어린 시절부터의 꿈들이 차르르 지나갔다. 꿈의 광휘와 스케일은 차츰 줄었지만, 대학원을 다닐 때까지도 공부를 더 하고 싶다거나, 국제기구에서 일하고 싶다는 생각을 했었다.
나는 지금이 좋아. 만족해.
거짓말이었다. 거짓말을 한 것이 걸려서 나는 덧붙였다.
너의 꿈은 멋지다. 네가 부러워.
이건 진심이었다. 자말리는 한참 나를 보더니 어색한 한국어로 또박또박 말했다.
나 부럽지 않아. 너는 젊고 스마트해. 아무것 할 수 있어.
나는 웃음을 터뜨리고 말았다. 자말리는 어리둥절했다가 따라 웃었다. 나는 결국 눈물이 날 때까지 웃고 말았는데 그 눈물 중 일부는 진짜였다. 생경한 단어의 조합에도 불구하고, 어쩌면 생경함 때문에 더더욱, 그의 진심이 느껴졌기 때문이다.
내게 외국어는 생계 수단이기에 앞서 낯선 세계로 향한 창이었고, 나와 다른 모국어를 가진 남자를 사랑하는 것은 두 언어 간의 유격을 유영하며 거기 환상을 채워 넣는 일이기도 했다. 모국어에서 이음매 없이 달라붙어 있던 존재와 언어가 헐거워지고서야 온전한 의미를 드러내는 말들이 있었다. 더께처럼 얹힌 상투성을 벗은 그 말들은 제 색깔로 찬연히 빛났다.
나는 언제부터 꿈을 꾸지 않게 되었을까 생각하면서 엉뚱하게도 다른 것을 물었다.
거울 놀이를 안 하게 된 건 언제부터야?
글쎄. 언제부턴가 거울 속 얼굴 중 하나가 문득 말을 걸어오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거든.
좀 무서운데.
그렇지.
거울을 마주 보게 세워놓았을 때 생기는 무한 공간을 부르는 말이 있다는 것도 그때 들었다. 프레임 안의 프레임이 반복되는 미장아빔(mise en abîme). 심연에 놓인다는 뜻. 나는 비로소 어릴 적 거울 놀이에서 느꼈던 매혹을 이해했다. 그것은 존재의 심연을 들여다본 자의 현기증이었다.
어느덧 자말리가 서울을 떠날 때가 다가왔다. 우리는 재이 커플과 함께 송별회를 겸한 주말 여행을 가기로 하고 토요일 낮에 남이섬으로 향했다. 남이섬은 당시 이미 인기 있는 근교 여행지로 여기저기 펜션이 들어서 있었다.
예약한 숙소는 복층구조의 독립채로 아래층에 침실, 주방과 널찍한 거실이, 윗층에는 욕실이 딸린 작은 방이 있었다. 펜션 주인은 두 사람의 흑인 남자와 두 사람의 한국인 여자 일행을 곱지 않은 눈길로 바라보았으나 나는 이미 그런 눈길을 여유롭게 맞받을 수 있었다. 주변을 산책한 우리는 맥주와 안줏거리를 잔뜩 사서 숙소로 돌아왔다.
자말리가 랩탑을 꺼내 아이튠의 플레이리스트를 열었다. 레게를 클럽 풍으로 연주하는 하우스 레게와 또 다른 라틴 음악들이 주르르 떴다. 살사 댄스를 배웠던 나는 재이에게 기본 스텝을 가르쳐주었고, 에릭과 자말리는 그런 걸 배워야 하는가 하는 반응이었다. 재이가 에릭을 상대로 서툰 스텝을 연습하는 동안, 자말리와 살사를 추면서 나는 그들을 바로 이해했다. 그의 춤은 걸음을 걷는 것처럼 자연스러워 리듬이 몸에 내장되어 있는 것 같았다. 교본에 그려진 스텝을 외워 머릿속으로 숫자를 세며 밟는 그런 춤과는 달랐다. 춤을 추다 지치면 맥주를 마시며 이야기를 하고, 다시 마음에 드는 음악이 나오면 춤을 추고, 그러기를 얼마나 했을까. 취기와 피로감으로 몽롱한 상태로 보니 어느새 재이와 에릭은 소파에 앉아서 키스를 하고 있었다. 자말리와 나는 마주 보고 웃으며 조용히 춤을 추었다. 자말리가 몸을 붙여오자 열대 과일의 농밀하고 달콤한 냄새가 났다. 그의 손이 나의 티셔츠와 반바지 사이에 살짝 드러난 맨살을 부드럽게 스쳤다. 재이와 에릭의 모습이 아득해지고 음악 소리가 멀리서 들려오는 것 같았다. 자말리는 내 눈을 들여다보며 몸은 여전히 리듬을 타는 채로 귓가에 속삭였다.
Wanna go upstairs (이층으로 갈래)?
이제 남편은 새로 산 매트를 자랑하는 중이다. 빨리 들어가서 한번 누워보라고 성화다. 버튼만 누르면 자동 충전되어 바로 호텔 침구의 쾌적함을 선사한다고 홈쇼핑에서 떠들던 그 에어매트일 것이다. 굳이 야외로 나와 텐트를 친 다음 쾌적함을 찾는 아이러니는 그렇다 치더라도, 운동하다 허리를 한번 삐긋한 이후로 잠자리에 까다로워진 나는 최고급 독일제라는 그 물건이 영 미덥지 않았다.
응, 이따가 잘 때. 그때 들어가지 뭐.
한번 들어가 보라니까.
뭘 자꾸 들어가 보래. 힘들게.
왜, 어디 아퍼? 아까 밥도 거의 안 먹고.
걱정 속에 숨겨진 작은 비난을 나는 놓치지 않는다. 내가 함께 즐겨주기를, 자기와 함께 있는 시간을, 자기가 좋아하는 활동을 진심으로 좋아하기를 바라는 마음이 읽혔다. 캠핑을 따라오는 것과 좋아하는 것—잡다한 장비를 챙기고 텐트를 치고 걷는 부산함, 찬 기운이 도는 거친 잠자리, 공동으로 사용하는 낯선 샤워실을 무릅쓸 만큼—은 다른 문제다.
남편이 특히 이해 못 하는 건 내가 숯불 바비큐를 좋아하지 않는다는 사실이었다. 고기가 왜 싫어? 몇 번이고 물었다. 나는 결국 그냥 외워, 라고 말했다. 이렇게 농담 속에 든 뼈로 찌르고 찔린 자잘한 상처 역시 결혼 생활의 일부였다. 그리고, 농담이나 성급한 화해, 지속적인 타협으로 덮지 못하는 문제들이 있었다. 이야기되지 않는 문제들. 조심스럽게 닫혀 있는 영역. 자말리의 기억이 밀어넣어져 있던 곳이기도 했다. 흑백으로 차분하게 가라앉은 미궁같은 골목의 이미지들 위로 퍼지던 타진 냄새와 함께. 나는 결혼 후에도 한동안 날아온 자말리의 이메일에 대해서도, 며칠 전 보게 된 그의 사진에 대해서도 남편에게 말하지 않았다. 자말리가 내게 프로포즈를 했었다는 사실과 마찬가지로 모두 이제는 닫힌 문 저편의 일이었다.
펜션에서 하룻밤을 보낸 우리는 다음날 배를 타고 어딘가로 들어갔다가 다시 배를 타고 나왔다. 그때의 기억은 가벼운 숙취가 비지엠처럼 깔리는 가운데 색채의 물결로 넘실거리던 사람들과 공기 중에 떠돌던 모호한 관능의 분위기가 뒤섞이고, 그 위에 무해한 농담과 웃음이 흩뿌려진 추상화 같은 것으로 남아있다.
나에게 자말리와 보낸 시간은 불순물—일테면 미래에 대한 약속 같은—이 섞이지 않은 완결된 경험으로 여겨졌고, 따라서 그걸로 끝나는 것이 합당하게 느껴졌다. 완벽한 상태로 고정되어, 가끔 꺼내볼 수 있는 사진첩 갈피 속 사진 같은 것이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또한, 자말리와 나의 끌림은 다른 대륙을 탐험하는 호기심 같은 것이어서, 지속되는 사랑과는 다르다고 여겼다. (호기심이야말로 사랑을 지속시키는 엔진이라는 사실을 깨달은 것은 한참 후, 정확하게는 결혼 후였다.) 그래서 그가 함께하는 미래를 암시하는 제안을 했을 때, 그리고 나의 거절에 상처 입은 표정을 했을 때는 다소 의외였다. 하지만 이어진 이별은 예의 바르고 따뜻하게 표현된 아쉬움과 함께였고, 그는 드문드문 내게 안부를 묻는 이메일을 보내왔다.
그의 이메일은 흔히 이렇게 시작되었다.
아직 서울에 있어요?
세계의 여러 도시들을 돌아다니는 것이 당연하기라도 한 듯이. 유엔에서 주어지는 임무에 따라 세계를 여행하는 자신의 삶이 기준이 된 거겠지만 내게는 넌 아직 그렇게 살고있냐는 채근으로 읽히기도 했다. 왜 너를 서울에, 강남의 한 학원에 묶어두고 있냐는. 때로 그는 휴가를 받았다며 나를 마드리드나 방콕 같은 도시로 부르기도 했다. 처음 그런 이메일을 받았을 때 나는 항공편에 몸을 싣고 떠나는 나를 상상했다. 이런저런 이유가 발목을 잡지 않는다면, 어쩌면. 강의를 며칠 누군가에게 맡길 수 있다면. 그 후 회사에 들어갔을 때는 갑자기 휴가를 일주일쯤 쓸 수 있다면. 남자 친구가 없었다면. 자말리를 만난 다음 해에는 이미 나에게 남자 친구가 있었다. 몇 개월마다 다른 도시로 옮겨가지도, 사람들이 돌아보지도 않는 평범한 외모를 가진. 나중에는 내 남편이 되어, 상대적으로 평범한 내 삶의 축을 이루게 되는.
남편을 만났을 때 나는 서른다섯이었고, 현실은 보이지 않는 적을 상대로 벌이는 질 수밖에 없는 싸움 같았다. 체력의 한계를 느꼈지만, 그게 다는 아니었다. 어학원 강사는 일종의 승자독식 구조로, 유학파 출신의 젊은 강사들이 하루가 다르게 치고 올라오는 치열한 판이었다. 나는 강의를 줄이면서 학습 콘텐츠 개발로 방향을 틀어 장기적인 활로를 찾으려 했다. 그때 남편은 대학에 자리 얻기를 포기하고 연구소에 들어간 참이었다. 그렇게 남편과 나는 마흔을 바라보는 사람들에게 걸맞는 제 몫의 열패감과 은밀한 자부심, 안정에 대한 갈망을 갖고 만났고, 이러한 균형은 꽤 괜찮은 결혼 생활의 열쇠로 보였다. 그에 더해, 각자 몇 번의 실패한 연애에서 얻은 교훈이 있었다. 둘 다 입 밖에 내지는 않았지만 우리의 관계는 사랑보다 우정에 가깝다는, 그것이야말로 결혼이라는 쉽지 않은 여정의 든든한 토대가 되어주리라는 암묵적 합의가 있었다. 나는 흔히 낭만적 사랑의 징표로 알고 있는, 눈이 멀도록 부신 빛을 뿜어내는 설렘과 열에 들뜬 도취 상태가 지속될 수는 없으며, 지속되어서도 안 된다는 신념에 도달해 있었다. 실패한, 정확히는 방해받은, 사랑만이 영원하다는. 어차피 다른 무엇으로 변질될 감정이라면 처음부터 그것으로 출발하면 안 될 이유가 있을까. 우정이든, 동지애든, 책임감이든, 낭만적 사랑에 비해 폄하될 이유가 전혀 없는 대체물로.
해가 가면서 자말리의 존재는 현실감을 잃어갔고, 그가 차츰 뜸하게 보내오는 이메일은 마치 내가 선택하지 않은 세상, 혹은 오래전에 지나가 버린 다른 시간에서 온 전령 같았다. 그것은 내가 잃어버린 것, 누릴 수도 있었던 무엇에 대한 그리움을 환기시켰다. 나는 비행기를 타고 날아오르는 대신 지상으로 안착시키는 중력을 선택했다. 나는 더 이상 지난번 메일을 받을 때는 마드리드에, 이번에는 방콕에 있는 그런 삶을 상상하지 않았고, 자말리는 나에게 하나의 기호로 남았다. 내 삶의 어느 순간 불현듯 소환되어 새로운 의미로 해석될 과거의 여러 기호들과 함께.
나중에 생각해 보면 의미심장한 침묵이 한동안 흘렀다. 캠프파이어와 둘 사이에 내려앉은 낯익은 권태와 이상한 평안과 주저, 그토록 다채로운 침묵의 베일을 먼저 찢은 것은 남편이었다.
부스럭부스럭 그가 품에서 뭔가를 꺼낸다. 실은, 하면서 어렵게 나에게 들이민 것을 받아들면서 나는 어리둥절하다. 이혼 서류라도 되나. 하지만 들여다본 그 종이쪽은 이혼 서류가 아니다. 하물며 낭만적인 손 편지는 더더욱 아니다. 미학적 배려 따위는 개입할 여지가 없다는 듯 건조한 활자로 내용을 전하고 있는 그 서류는 진단서다.
전립선암이래. 2기.
평온을 가장한 남편의 목소리를 듣고서야 나는 서서히 활자의 내용을 이해한다. 아니, 이해하지 못 한다. 누군가가 전립선암은 순한 암이고, 2기는 생존율이 80퍼센트라고, 아니 99퍼센트라고 떠들어주기를 기다린다. 하지만, 평온을 가장할 뿐인, 정말 평온하지는 않은 남편은 말을 잊었다.
그때 조명이 훅 어두워진다. 우리는 흠칫하지만 곧 랜턴이 제대로 작동하지 않아 대신 켜두었던 자동차 헤드라이트가 꺼졌음을 깨닫는다. 배터리가 방전되었을 것이지만 그건 지금 아주 작은 문제로 보인다. 캠프파이어 불꽃만이 주변을 밝히는 어슴푸레함 속에서 그가 이건 조직검사 결과라며 다음 주에 CT와 MRI가 예정되어 있다고 말한다. 뼈에 전이되었는지를 검사한다는 말을 할 때 그의 목소리는 울먹이는 것 같다. 나도 어둠 속에서 조금 운다.
새벽이 오고 있었고 차가 막히기 전에 출발하기로 했다. 남편이 혹시나 자동차의 시동을 걸어보지만 말을 듣지 않는다. 그는 다시 거칠게 브레이크 페달을 밟지만 여전히 시동이 걸리지 않는다. 랜턴 하나 제대로 못 챙기면서 캠핑 전문가는 무슨. 서비스를 불러야 하나, 중얼거리더니 남편은 주머니에서 휴대전화를 꺼낸다. 그러나 생각이 바뀌었는지 자동차의 보닛을 열고 한참을 들여다본다.
보면 뭐 알아? 그냥 서비스 불러.
남편이 비켜봐, 하면서 내 팔을 툭 치는데 뭔가가 엔진룸으로 달칵 떨어진다.
진짜, 그냥 서비스 부르면 될 걸 가지고. 저걸 어떻게 꺼낼 거야?
어쩔 수 없이 포기한 캠핑 전문가는 서비스를 부르기로 하고 내 전화를 찾는다. 전화만 하면 15분이면 와. 그렇다, 전화를 할 수 있다면. 바꿀 때가 지난 내 전화기가 야외의 찬 공기 속에서 이미 오래전에 꺼져버리지 않았다면 말이다. 우리는 더 이상 휴대전화를 진즉 바꾸지 뭐했냐, 충전 케이블은 왜 안 챙겨 왔냐 등의 말로 싸우는 대신 닥친 문제를 해결하기로 암묵적으로 합의한다. 새벽이 어느새 조금씩 다가와 푸른 어둠이 어스름해지기 시작한다. 캠핑 관리사무소까지 걸어가서 도움을 청하는 수밖에 없을 것 같다. 24시간 대기 중인 누군가가 있을 것이다. 혼자 있기 무서워 나는 남편을 따라나선다. 우리는 화난 사람들처럼 입을 꾹 다문 채 조금 떨어져서 걷는다. 뭐 한다고 이렇게 깊이 들어와 자리를 잡아 가지고.
텅 비어 괴괴한 캠핑 사이트를 지나, 새벽 달빛이 미끄러지는 강가를 지나, 저만큼 관리사무소 불빛이 보인다. 힘을 내 걸어갔지만 아무도 없다. 비상시 000-0000-0000로 연락하라는 안내문만 보인다. 텐트로 돌아가 아침이 밝을 때까지 기다리는 수밖에 없다. 돌아가는 길은 멀다. 쉬었다 가. 힘들어. 나는 대답을 기다리지 않고 강가에 놓인 벤치에 털썩 주저앉는다.
남편은 나를 흘끗 보고 멈춰서더니 강가를 서성거리다 잘그락잘그락 돌을 고르기 시작한다. 하나를 주워 강을 향해 수면을 비껴가게 던진다.
뭐해.
내 목소리에 짜증이 실린다. 지금 물수제비뜨기 할 때야. 하지만 남편은 들은 척 만 척 연이어 돌을 던진다. 새벽의 흐린 달빛 비추는 강의 수면 위로 미끄러지도록. 어이없어하면서 나는 그를 바라본다.
하나, 둘, 셋.
돌멩이는 담방담방 튀더니 세 번 만에 물속으로 맥없이 들어간다.
이번에는 하나, 둘, 셋, 넷, 다섯.
그는 점점 신을 낸다. 주의 깊게 돌을 찾고—납작하고 평평하며 적당한 무게감이 있는 것으로—다시 물가에 서서 강을 향해 팔매질한다. 이게 힘으로 하는 게 아니야, 손목 스냅을 이용하는 거라고. 물수제비를 뜰 때마다 하는 그 말도 잊은 채 집중한다. 나도 어느새 그가 하는 양을 지켜본다. 우리는 이제 뭐 하던 중인지 잊었고, 그것이 더 이상 중요하지 않은 사람들처럼 군다. 오로지 손을 떠난 돌멩이가 그리는 파문에 집중한다.
하나, 둘, 셋, 넷, 다섯, 여섯, 스팟 스팟 습 습 습...
남편은 봤어, 하는 듯이 내 쪽으로 고개를 돌린다.
나는 보았다. 날렵한 돌이 수면을 미끄러지다시피 하며 점점 작아지는 원을 무한대로 그리는 것을. 돌의 무게와 속도, 수면에 대한 입사각이 완벽하게 맞아떨어질 때 일어난다는 드문 순간이다. 평소의 그라면 물론, 무한대라는 건 운동에너지가 다할 때까지를 말하는 거라고, 현실 세계에서는 마찰력이나 다른 장애물 때문에 결국 돌이 멈추게 된다고 토를 달았을 것이다. 하지만, 지금 그는 말없이 내 옆에 자리를 잡고 앉는다. 살짝 가쁜 숨을 쉬고 있다.
순수한 놀이의 기쁨이, 연한 어둠 속에 부드럽게 뭉개놓은 목탄화 윤곽처럼 보이는 얼굴을 물들였다. 나는 관자놀이께가 희어지기 시작한, 제 안에 자라고 있는 이물과의 싸움을 앞둔 남편의 옆얼굴에서 처음 만났을 때의 미숙한 청년을 본다. 그리고, 그 전의 풋풋한 대학생을, 여리고 영민했을 소년을. 무한대로 이어지는 거울 상 앞에 선 그를. 그리고 나를. 나는 과거로부터 밀려온 파문 끝에 선 한 남자와 여자를 바라보며, 어린 시절 거울 앞에 섰을 때와 같은 현기증을 느낀다. 너무 늦게 도달한 하나의 문장이 내 안에서 머뭇거린다.